종교

남북 문제, 정치·외교로는 못 풀어…민간 트랙이 효과적

tkaudeotk 2013. 4. 10. 14:01


문현진 GPF(글로벌피스파운데이션)재단 세계의장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졸업생(1995년)의 이력은 빛을 발했다. 

두 시간 반의 인터뷰 동안 그는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사상을 오갔다.
5000년 전 단군이 설파한 홍익인간의 이념은 230여 년 전 미국 독립선언문에 적시된 
자유·인권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다.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3남인 문현진(44)
GPF(글로벌피스파운데이션)재단 세계의장 겸 UCI 그룹 회장 얘기다. 
문 의장을 지난달 26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통일교와 통일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통일재단이 4남 문국진(43) 통일그룹 회장을 전격 해임하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 지 이틀 만이다.
문 회장의 해임은 지난해 9월 문 총재의 빈소를 찾았다 
조문도 못하고 돌아간 뒤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으로 여겨진 문 의장에겐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후계구도와 관련한 집요한 질문에 문 의장은
“세속적인 싸움은 내 관심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어 했다. 
부지불식간에 대화는 그 두 개의 원점(홍익인간과 미국 독립정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통일교의 창시자가 아닌 통일운동의 개척자이며, 
통일운동은 종교의 틀에서 벗어난 평화운동”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문현진 GPF재단 세계의장이 지난달 26일 미국 시애틀의 한 호텔에서 
통일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GPF재단]

- 동생이 해임됐다. 문 의장에게 좋은 일 아닌가.

 “나는 후계자 논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기업체 주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나를 완전히 오해한 거다. 
통일교회 내에서 아직도 그 틀 안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지도자가 있긴 하다. 
그건 어느 종교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래선 안 된다. 종교적 지도자보다는 영적 지도자가 돼야 한다. 
자기 종교의 틀에서 나와야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할 수 있다.”

 - 쉽게 설명한다면.

 “만약 마하트마 간디가 단지 힌두교만을 대표했다면 힌두교·회교도·이슬람교도 등으로 구성된 인도의 국민적 운동을 이끌지 못했을 거다. 
그는 자신이 속한 종교보다 더 위대한 뭔가를 열망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단지 남침례교만을 대표해 설파했다면 비폭력 인권운동을 끌어낼 수 없었을 거다. 
모든 신앙인들이 믿는 보편적 가치와 원칙의 80~85%는 종교에 상관없이 같다고 본다.”

 - 형제 간 갈등에 대한 전망은.

 “내가 형제 간 다툼이 아니라고 수도 없이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통일교회를 마치 재벌 같은 조직체로 보는 전제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영적 운동 안에서 지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도덕적 권위가 제일 중요하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조직 내 정치적 놀음엔 흥미없다.
신앙인으로서의 사명이 소중하다. 
‘인내하는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들이 찾아온다’는 격언을 믿는다.
”(실제로 2조4000억원대 서울 여의도 파크원 빌딩 공사를 둘러싼 문현진 의장과 문국진 전 회장 측 법적 분쟁은 대법원 최종 판결로 마무리된다.
1·2심은 문 의장 측이 승소했다.)

 - 문 의장이 생각하는 가치는 뭔가.

 “남북 통일이다. 고조선 건국신화와 홍익인간 철학을 연구해 보면 
그 안에 1776년 미국 건국 당시 내걸었던 기본 인권과 자유 옹호라는 장점들이 내포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대 철학이 아니다. 
5000년 전의 건국 사상이라는 게 놀랍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남북한 사람들을 함께 엮을 수 있는 끈이기도 하다. 
한국의 통일은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리더십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속이 좁고 작게 생각하는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도덕적 권위에서 나온다.”



- 남북 통일에 대한 신념이 남다른 것 같다.


 “나는 선친 덕에 관찰자가 되는 독특한 기회를 가졌다. 사람도 많이 만났다. 
지위가 높건 낮건, 국적·인종과도 무관했다. 욕 잘하는 사람들과도 얘기할 수 있고 
지식인들과도 고상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북한과 교류의 물꼬를 튼 선친 곁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정부 간 대화나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는 ‘트랙1’ 외교보다 효과적인 건 
민간 차원의 평화 교류인 ‘트랙2’ 정책이다. 그게 GPF의 접근법이다.”

 - 북한 최고통치자인 김정은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며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외교와 지정학적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된 지역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말해 달라.
간디와 킹 목사에게서 보듯 영적인 대각성이 키 포인트다. 
두 선각자는 그 가치로 국민과 국가를 움직여 흑인과 소수민족의 인권을 보장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 북한을 방문한 적은.

 “아직 없다. 내 아들은 북한에서 봉사활동을 했지만…. 
간다 해도 사진을 찍기 위해 가지는 않는다. 
지난해 GPF는 북한 어린이들의 기아 해소를 위해 빵공장을 세웠다. 
하루 5000개씩 생산된 빵을 인근 유치원과 소학교 어린이들에게 점심으로 제공한다.
밀가루 대신 유통기한이 짧은 빵을 만들어 북한 군부로 식량이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지역에 빛을 주는 ‘올라이트(Alllights) 프로젝트’도 북한에서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현재 통일운동은 어떻게 하나.

 “통일을 실천하는 사 람들(통일천사·Korea United)이란 단체 아래 비정부기구(NGO)들을 모두 묶고 있다.
지금 400여 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보수·진보와 기독교·불교 단체들이 망라돼 있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의 실책은 민간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북한과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원조가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한국인이 통일 과정에 크든 작든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 종교적 신념보다 통일에 대한 신념이 더 강한 것 같다.

 “독일 통일을 가능케 했던 건 동·서독의 범국민 운동이었다. 
남북 통일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국민을 움직여야 한다. 범국민적 풀뿌리 운동이 해답이다.”

 
- 바람직한 지도자상과 리더십의 기준은.

 “리더십의 기준은 도덕성과 혁신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미국적 자본주의를 성공하게 만들었던 
도덕과 윤리적 토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정치적 집단이 결과적으로 미국 주택시장을 붕괴시킨 경제정책을 입법화했기 때문이다.”

 - 세상을 변화시킨 실례가 있나.

 “두 가지를 들겠다. 몽골 정부 관료들이 최근 워싱턴DC에서 미국 최고위급 인사들과 회담을 할 때 우리가 중간에서 도왔다.
몽골은 6자회담의 일곱 번째 멤버가 되길 원했다.
이는 내가 2011년 몽골 측과 공유한 아이디어가 기반이다. 
이런 비전이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최근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혈사태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었던 건 GPF재단이 새 헌법 제정을 도운 게 한몫했다. 
유엔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 NGO들이 해내고 있다.”

 -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답변하지 않겠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많이 사색하고 최고의 교훈을 얻는다.
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사과를 오렌지로, 아니면 오렌지를 사과로 바꿀 수는 없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

 - 요즘도 승마를 하나(문 의장은 1988년과 92년 올림픽 한국 국가대표 승마선수 출신이다).

 “경기는 못하지만 여가 활동으로 가끔 탄다. 나는 시골이 좋고 자연과 동물이 좋다. 
정말로 ‘세상의 소금’처럼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랐다. 
선친은 고기잡이를 좋아했다. 매년 여름이면 낚시를 가곤 했으니 어부나 사냥꾼과 함께 자란 셈이다.”

 - 40대인데 흰머리가 많다. 손자도 있다는데.

 “내가 살아왔던 배경 때문에 나는 남보다 빨리 성장했어야만 했다. 빨리 어른이 돼야 했다. 
나는 스무살 때 결혼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 40대에 손자를 보는 게 비정상적이지 않다. 
지금은 매우 이상하게 보이지만(웃음). 나는 진짜 전통적인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많이 변했지만 나는 미국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모델을 지키며 살고 있다.”

 - 9남매의 아버지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나.

 “아내에게 빚을 많이 졌다. 9명의 아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아이들로 키워냈다.
장남은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나왔고 차남은 재학 중이다. 
아내는 줄리아드음대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피아노 연주자로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개인적 야망들을 포기했다.”

 - 몇 년 전 손자를 봤는데 그 때 기분이 어땠나.

 “좋았다….”

시애틀=조강수 기자 

GPF(Global Peace Foundation)재단=

2007년 ‘지구촌 한가족’이라는 기치 아래 
국가·지역 간 불균형 타파와 지구촌 평화 실현을 목표로 설립된 비영리 국제 민간기구. 23개국에 지부가 있다. 
전기가 없는 국가에 친환경 태양광 랜턴을 보급하고, 
황폐해진 케냐 나이로비강과 네팔 바그마티강 재건 사업을 지원하는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