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on Blondes / ‘What's up?’
1980년대 후반. 정확히 89년 샌프란시스코. 가난한 여성 뮤지션 둘이 만났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돈도 없이, 세상의 멸시를 받는 여성 동성애자들은 룸메이트가 되었고, 매일매일 기타를 두들기며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은 기타리스트/보컬리스트 린다 페리(Linda Perry), 그리고 베이시스트 크리스타 힐하우스(Christa Hillhouse)였다.
페리와 힐하우스는 역시 동성애자인 기타리스트 쇼나 힐(Shaunna Hill), 드러머 완다 데이(Wanda Day)와 함께 연주활동을 시작했지만 레코드 계약을 따내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멀어보였다. 네 명의 여성들은 열심히 연주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
어느 날 밴드 멤버들은 공원에서 차가운 피자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었다. 한 금발(blonde) 소년이 나타나 새에게 던져주기 위해 어느 누군가가 먹다 남기고 간 피자조각을 집어 들었다. 꽤 부유해 보이는 소년의 부모들은 네 여성들을 힐끗 보며 더러운 사람들이 만진 피자에 손을 대지 말라며 소년을 꾸중했다. 자세히 보니 가족 모두가 금발이었다.
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란 그룹 이름이 탄생했다. 부유한 금발 백인들의 선민의식은 여성이며 동성애자로 미국사회 가장 밑바닥으로 취급되던 그들을 구토하게 만들었다. 순수한 꼬마소년도 그 부모 밑에서 성장한다면 비슷한 부류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네 여성은 그룹명을 '네 명의 금발이 아닌 사람들', 혹은 '금발이 아닌 사람들을 위하여'란 뜻으로 포 넌 블론즈라 정했다.
포 넌 블론즈의 초기 멤버 중 군계일학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인 인물은 페리였다. 그녀는 작사/작곡을 거의 도맡았다.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존재는 그룹의 생명과도 같이 절대적이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 그녀는 아무 성공의 보장도 없는 우울한 시기에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What's up?'의 노랫말에 실었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서는 절망감이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었다. 세상을 향해 가슴 터져라 외치는 절규였다. “내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라며 소리쳐 외칩니다.”(And I scream from the top of my lungs. What's going on?)
그러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고 외쳤다.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위해 신에게 기도한다고 했다. 그것은 밝은 미래가 확실히 보장돼서가 아니라, 희망을 지닌 채 인생의 길을 달려가지 않는다면 단 한 차례 주어지는 삶 자체의 의미가 무너진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스물다섯의 처녀 페리는 분명 무명의 고통스러운 시절, 샌프란시스코 바닷가를 배회하며 인류애(brotherhood of man)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했을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힐하우스는 'What's up?'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노래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순수함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린 모두 정직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 생활에서 탄생한 음악이기에 분명 진정성이 있었다.”(There's just something there that's pure, that you almost can't define. We were just living as honest a life as we could, and I think the music that came out of it had heart.)
포 넌 블론즈는 1991년 인터스코프 레코드사에 발탁돼 성공의 기회를 잡았다. 이듬 해 발표된 데뷔작 < Bigger, Better, Faster, More! >의 수록곡 'What's up?'은 빌보드 팝 싱글 차트 14위까지 오르며 단박에 가장 사랑받는 리퀘스트 송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성공의 대가는 가혹했다. 암흑의 시절을 함께 한 힐과 데이가 녹음과정에서 능력부족과 약물문제를 이유로 각각 해고됐고, 무려 6백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한 데뷔작은 아쉽게도 그들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페리가 급작스럽게 탈퇴했기 때문이다. 페리가 없는 포 넌 블론즈는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레코드사가 원한 건 페리 한 명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솔로 독립 후 페리는 95년 앨범 < In Flight >을 발표했으나, 처참한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그녀는 록커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핑크(Pink)와 크리스티나 이길레라(Christina Aguilera), 궨 스테파니(Gwen Stefani) 등 팝가수들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변신했다. 아길레라의 'Beautiful'은 빌보드 팝 싱글 차트 2위, 핑크의 'Get the party started'는 4위까지 올랐다. 이 외에도 그녀는 수많은 팝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하며 히트곡 제조기로 떠올랐다. 한때 무명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어슬렁거리던 그녀는 이제 돈과 능력을 모두 거머쥔 음악계의 거물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50의 나이를 목전에 둔 페리는 과연 자신이 꿈꾸었던 희망의 언덕에 도착했을까? 아니면 그녀가 울부짖었던 'What's Up?'의 가사처럼 아직도 그 언덕을 고통스럽게 오르고 있을까?
4 Non Blondes - What'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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