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내 이성과 호흡 맞추기 커다란 관심 … 21세기 새로운 생활양식 정신적 일탈?
30대 맞벌이 부부 철수(가명) 씨와 영희(가명) 씨는 요즘 냉전 중이다.
며칠 전 철수 씨가 잠꼬대로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여자동료 이름을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철수 씨는 “최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외엔 사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 ‘사건’은 영희 씨의 신경을 자극했다.
잠꼬대에 등장한 회사 동료는 영희 씨도 아는 인물.
그러나 야근이 잦은 남편이 직장에서 또래 여자동료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았다.
“과장님, 요즘 까칠까칠ㅋㅋ. 무슨 일?”
회사에 출근한 영희 씨가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신저로 옆자리 후배 박 대리가 인사를 건넨다.
동갑내기인 박 대리는 비록 남자지만 회사 내 어느 동성친구보다 편한 수다 상대다.
회사 상사에 대한 ‘뒷담화’부터 시시콜콜한 가족 이야기까지 두 사람의 수다 소재는 제한이 없다.
영희 씨는 박 대리에게 지난밤 철수 씨와 다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초지종을 들은 박 대리의 한마디.
“아마도 오피스 와이프인가 봐요.”
“오피스 와이프?”
“진짜 부부나 애인은 아니지만 회사에서는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요~. 과장님이랑 저 같은? ㅋㅋㅋ.”
오피스 와이프라는 용어가 명확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과장님과 저 같은’이라는 말에 ‘뜨끔’한 영희 씨.
그 순간 영희 씨는 남편 철수 씨에게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직장에서 자주 접하는 이성동료. 그는 당신이 다른 이성 직원과 어울릴 때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당신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그 어떠한 신체적 접촉은 하지 않는다.’(www.urbandictionary.com 중에서)
이는 미국의 한 온라인 백과사전에서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를 정의한 내용이다.
오피스 와이프란 마치 아내처럼 친한 회사동료를 지칭하는 말이다.
193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원래 여 비서, 혹은 남성 상사에게 복종하는 여직원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러나 최근 여자친구 같은 친밀함을 강조하는 말로 그 의미가 바뀌면서,
남편처럼 친한 남자동료라는 뜻의 ‘오피스 허즈번드’ ‘오피스 스파우즈(spouse·배우자)’라는 말도 함께 번지고 있다
(www.doubletongued.org 참조).
직업 전문화와 다원화로 커플 증가
2006년 미국의 한 직업컨설팅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32% 이상의 직장인들이 오피스 와이프(혹은 허즈번드)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국내 한 여성지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 이상이 ‘오피스 와이프 혹은 오피스 허즈번드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몬트리’ 2008년 5월호).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직장인들은 왜 로맨스 없는 직장 내 이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그리고 현대인의 생활양식 전반에서
업무와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증가한 점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즉, 이성동료의 비율이 비슷해지고 직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으며 그 중요성 또한 강조되다 보니,
공적 장소인 직장에서 예전엔 사적으로 충족하던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욕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씨는 “호감이 가는 사람끼리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서 호감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일이 중요할수록 일과 연관된 관계를 그에 맞게 개선하고 싶어한다”면서
“어차피 함께 일해야 한다면 업무 파트너에게 친근감을 갖는 것이 업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의 전문화, 다원화도 오피스 커플을 증가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고려대 김선업 교수(사회학)는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의 부각을 업무의 전문성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자신의 직업 외에는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직장동료만큼 고충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
김 교수는 “아무리 가까운 배우자에게라도 회사일에 대해 제대로 다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직장동료에게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에 더해 “공적인 관계만을 강조하던 예전의 기업들과 달리,
사원끼리의 친밀감 등 사적인 관계 확장을 장려하는 최근 직장문화의 변화”도 오피스 커플 증가의 한 요인으로 봤다.
즉, 직장 내 오피스 프렌드십(office friendship)의 증가와 함께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남녀 동료들이 등장했다는 것.
또한 메신저 같은 소통수단의 발달도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확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는 무엇보다도 남녀관계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학칼럼니스트이자 ‘짝짓기의 심리학’의 저자 이인식 씨는 이 같은 오피스 커플 관계를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라는 말에서 풍기는 ‘성적 암시’를 지적하면서
일부일처제 사회가 낳은 ‘정신적 일탈’의 한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직장 내 상황 따라 바로 ‘이혼’ 가능
한편 임상심리학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씨는 남녀 사이가 ‘경쟁 압박을 덜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는 부부이기에 앞서 직장동료다.
“흔히 볼 수 있는 최악의 예를 든다면, 부장급 정도 되는 무능한 남자상사와 과장급 정도 되는 여우 같은 여자의 조화죠.
하지만 이런 관계도 결국 직장이라는 한정된 상황에서는 영원하지 않다.
어쨌든 요즘 직장 내 부부에 비유할 정도로 ‘친밀한’,
위의 철수 씨와 영희 씨의 사례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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