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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오피스 와이프가 있었으면 좋겠다

tkaudeotk 2018. 11. 9. 18:51

사무실 내 이성과 호흡 맞추기 커다란 관심 … 21세기 새로운 생활양식 정신적 일탈?

 

 

 

30대 맞벌이 부부 철수(가명) 씨와 영희(가명) 씨는 요즘 냉전 중이다. 

며칠 전 철수 씨가 잠꼬대로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여자동료 이름을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철수 씨는 “최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외엔 사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 ‘사건’은 영희 씨의 신경을 자극했다. 

잠꼬대에 등장한 회사 동료는 영희 씨도 아는 인물. 

그러나 야근이 잦은 남편이 직장에서 또래 여자동료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았다. 


“과장님, 요즘 까칠까칠ㅋㅋ. 무슨 일?”
 
회사에 출근한 영희 씨가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신저로 옆자리 후배 박 대리가 인사를 건넨다. 

동갑내기인 박 대리는 비록 남자지만 회사 내 어느 동성친구보다 편한 수다 상대다. 

회사 상사에 대한 ‘뒷담화’부터 시시콜콜한 가족 이야기까지 두 사람의 수다 소재는 제한이 없다. 

영희 씨는 박 대리에게 지난밤 철수 씨와 다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초지종을 들은 박 대리의 한마디.  
“아마도 오피스 와이프인가 봐요.”  
“오피스 와이프?”  
“진짜 부부나 애인은 아니지만 회사에서는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요~. 과장님이랑 저 같은? ㅋㅋㅋ.”
오피스 와이프라는 용어가 명확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과장님과 저 같은’이라는 말에 ‘뜨끔’한 영희 씨. 

그 순간 영희 씨는 남편 철수 씨에게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직장에서 자주 접하는 이성동료. 그는 당신이 다른 이성 직원과 어울릴 때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당신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그 어떠한 신체적 접촉은 하지 않는다.’(www.urbandictionary.com 중에서)  

이는 미국의 한 온라인 백과사전에서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를 정의한 내용이다. 

오피스 와이프란 마치 아내처럼 친한 회사동료를 지칭하는 말이다. 

193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원래 여 비서, 혹은 남성 상사에게 복종하는 여직원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러나 최근 여자친구 같은 친밀함을 강조하는 말로 그 의미가 바뀌면서, 

남편처럼 친한 남자동료라는 뜻의 ‘오피스 허즈번드’ ‘오피스 스파우즈(spouse·배우자)’라는 말도 함께 번지고 있다

(www.doubletongued.org 참조). 

직업 전문화와 다원화로 커플 증가  

2006년 미국의 한 직업컨설팅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32% 이상의 직장인들이 오피스 와이프(혹은 허즈번드)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국내 한 여성지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 이상이 ‘오피스 와이프 혹은 오피스 허즈번드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몬트리’ 2008년 5월호).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직장인들은 왜 로맨스 없는 직장 내 이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그리고 현대인의 생활양식 전반에서 

업무와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증가한 점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즉, 이성동료의 비율이 비슷해지고 직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으며 그 중요성 또한 강조되다 보니, 

공적 장소인 직장에서 예전엔 사적으로 충족하던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욕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씨는 “호감이 가는 사람끼리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서 호감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일이 중요할수록 일과 연관된 관계를 그에 맞게 개선하고 싶어한다”면서 

“어차피 함께 일해야 한다면 업무 파트너에게 친근감을 갖는 것이 업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의 전문화, 다원화도 오피스 커플을 증가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고려대 김선업 교수(사회학)는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의 부각을 업무의 전문성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자신의 직업 외에는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직장동료만큼 고충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 

김 교수는 “아무리 가까운 배우자에게라도 회사일에 대해 제대로 다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직장동료에게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에 더해 “공적인 관계만을 강조하던 예전의 기업들과 달리, 

사원끼리의 친밀감 등 사적인 관계 확장을 장려하는 최근 직장문화의 변화”도 오피스 커플 증가의 한 요인으로 봤다. 

즉, 직장 내 오피스 프렌드십(office friendship)의 증가와 함께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남녀 동료들이 등장했다는 것. 

또한 메신저 같은 소통수단의 발달도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확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는 무엇보다도 남녀관계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학칼럼니스트이자 ‘짝짓기의 심리학’의 저자 이인식 씨는 이 같은 오피스 커플 관계를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라는 말에서 풍기는 ‘성적 암시’를 지적하면서 

일부일처제 사회가 낳은 ‘정신적 일탈’의 한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직장 내 상황 따라 바로 ‘이혼’ 가능  

 
단 한 명의 파트너만 허용하는 일부일처제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체제고, 그렇게 선택된 파트너 역시 불완전한 짝입니다. 
결국 오피스 와이프는 결혼 후 실제 배우자(혹은 애인)가 메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이성동료에게서 찾는 행위인 것입니다.” 

한편 임상심리학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씨는 남녀 사이가 ‘경쟁 압박을 덜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해관계가 얽히면 감정적 친밀감을 나누기 어렵다”고 전제한 그는 “일반적으로 남-남, 여-여 같은 동성 사이는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성은 그런 부담이 적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한 “갈수록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이를 풀어줄 만한 것이 없다”면서
 “가족 구성원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친밀감 또는 애정을 직장에서 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피스 와이프와 오피스 허즈번드는 부부이기에 앞서 직장동료다. 
결국 친밀감보다 이해관계가 먼저고, 때때로 이러한 우선순위 때문에 관계가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이자 마케팅 컨설턴트인 임경선 씨는
 “일반적으로 업무량이 많고 일이 험한 직종, 공통의 적이 확실히 있는 직종에 오피스 커플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고 그때마다 손발이 잘 맞는 이성동료는 큰 힘이 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최악의 예를 든다면, 부장급 정도 되는 무능한 남자상사와 과장급 정도 되는 여우 같은 여자의 조화죠. 
이때 보통은 여자과장이 실세예요.(웃음) 남자부장은 바람막이 구실을 하면서 모든 일에 방관자로 지내고, 
여자과장 아래로는 민원을 청하는 이들이 생겨나고요.”

하지만 이런 관계도 결국 직장이라는 한정된 상황에서는 영원하지 않다. 
임씨는 “쿵짝이 잘 맞던 두 사람이 경쟁관계가 되거나 부서가 바뀔 경우 친밀한 관계도 끝난다. 
 
직장 내 상황에 따라 바로 ‘이혼’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오피스 커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요즘 직장 내 부부에 비유할 정도로 ‘친밀한’, 
그러나 ‘로맨스가 빠진’ 오피스 커플의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피스 커플이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관계가 유지될 경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적으로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일과 직장에도 애착이 생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집착은 되레 둘의 관계만을 부각해 조직 전체나 개인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위의 철수 씨와 영희 씨의 사례에서처럼, 
당신의 배우자에게 집 밖의 또 다른 ‘와이프’ 혹은 ‘허즈번드’가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비록 자신에게도 일터의 ‘속 깊은 이성친구’가 한 명쯤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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