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人 평화를 말하다-테레사 수녀[1] “세계평화는 가족 사랑에서부터”

tkaudeotk 2013. 9. 5. 15:49


[천지일보=이솜 기자] 


“세계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집에 돌아가 가족을 사랑해주세요.”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러 온 테레사 수녀에게 기자가 던진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다.

 시상식서 그는 항상 입는 흰색 사리와 낡은 샌들 차림이었다.

노벨상 상금에 대해서는 “이 돈으로 빵을 몇 개 살 수 있을까요?”라는 테레사수녀다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평생을 가장 낮고 가난한 곳에서 평화를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삶은 그 자체로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가 죽을 때에도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어 모두가 애도를 표했다. 

테레사 수녀의 죽음 앞에서 잠깐이나마 세계가 하나 된 것이다.

오늘날까지 테레사 수녀가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이룬 업적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행적과 어록, 인생관은 물질문명 속 각박한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나눔의 삶을 적용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의 유년시절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로, 

1910년 8월 26일 중부유럽과 아테네를 잇는 주요거점 도시인 스코페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건축업자 겸 수입상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안락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그네스의 집안은 

아버지가 독립투쟁에 관여하다가 사망한 이후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천을 팔고 자수 놓는 일에 종사했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해졌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그네스의 가족은 이를 계기로 서로를 더 의지하고 화합했다.


이처럼 유년 시절 가정의 사랑을 누렸던 테레사 수녀는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평화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등 가족의 사랑을 자주 강조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아그네스는 12살 때는 이미 자기도 커서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어머니에게 수녀가 될 것을 허락받은 아그네스는 18세에 아일랜드로 건너가 인도 선교 활동으로 잘 알려진 로레타 수녀원에 들어갔다.

로레타 수녀원에서는 많은 수녀를 교육해 이들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로 파견했다.

인도로 파견된 수녀들의 주요 임무는 식민지에 나가 있는 영국계 백인의 딸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영어 교육을 받은 후 19살에 인도에 도착, 히말라야 산맥 밑자락에 있는 다르질링에서 예비 수녀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아그네스는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선택했다.

테레사 수녀는 1931년부터 16년 간 인도 콜카타에 있는 성 마리아 수녀원의 부속학교에서 지리학을 가르치다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