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人 평화를 말하다- 테레사 수녀 [2] 종교를 초월한 ‘평화’의 수녀

tkaudeotk 2013. 9. 5. 15:50


[천지일보=이솜 기자] 


수녀원에서 안락한 교사 생활을 하던 테레사 수녀의 삶은 1946년 급변하게 된다.

테레사 수녀는 연례 피정을 위해 콜카타에서 다르질링에 있는 로레토 수녀원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수녀원을 떠나 거리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도의 빈민을 돌보라는 것. 

수녀로서 이미 부름을 받았던 테레사 수녀는 후에 이를 두고 ‘부름 속의 부름’이라고 칭했다.

“수녀원을 떠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했다. 

명령이었고,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을 버리는 것이었다.”


당시 테레사 수녀가 있던 콜카타 지역은 사실 희망을 찾기 힘든 곳이었다. 

2차대전 이후 마침내 200여년 간의 영국 지배를 벗어난 인도는 종교분쟁과 

신분 차이가 빚어내는 사회갈등으로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카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과 흉년으로 사람들은 삶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여기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유혈충돌로 도시는 공포로 휩싸여있었다.


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가톨릭 교단이 로레토수녀회 안에서 평생을 다할 것을 서원한 테레사 수녀가 

수녀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활동에 따른 종교·정치적 문제 등으로 테레사 수녀의 청원은 2년 동안 이어져야 했다.

결국 당시 교황이던 비오 12세에게 수도원 외부거주를 허가받은 테레사 수녀는 

1948년 인도의 거리로 혈혈단신 나섰다.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테레사 수녀의 봉사에 대해 선교의 목적이라고 여겨 그를 적대시했다.


하지만 오로지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에게 선교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그는 오로지 신의 부르심을 실천하며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나누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뿐이었다.

이는 테레사 수녀가 특히 힘을 쏟았던 ‘아름다운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테레사 수녀는 ‘빈민가 시궁창에서 힘겹게 살던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죽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죽음을 선사했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죽기 직전 테레사 수녀에게 온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종교적 배경에 따라 

마지막 종교 의례를 치르는 것으로, 이슬람교인이면 쿠란을 읽어주고, 

힌두교인이면 갠지스 강에서 떠온 물을 나누어 주고, 가톨릭이면 종부성사(終傅聖事)를 받도록 했다.

이같이 각각의 종교를 초월해 사랑과 봉사를 나누던 그의 모습에 인도에서 

소수 종교였던 가톨릭의 이미지 역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