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 천지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
일본 도쿄에 있는 연합군사령부가 있던 빌딩을 찾아나섰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나오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천황이 기거하고 있는 고쿄(皇居)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리모델링을 해서 인지 외형은 깨끗하고 단아해 보였다.
뒷편에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했다.
이 건물에는 ‘第一生命(제일생명)’이라는 큰 간판이 붙어있어 제일생명보험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사용되던 1945년이나 지금이나 다이이치빌딩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00년대 초반에 리모델링해 내외부가 더 깨끗해졌다는 사실 뿐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유엔사령부 맥아더 총사령부 집무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맥아더 총사령관의 집무실을 아래층으로 옮겨 놓았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작고 소박한 집무실에는 미국에서 공수한 집기가 진열돼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총사령관이 된 맥아더를 방문한 쇼와 천황의 모습.
맥아더가 이 건물에 입주한 당시의 기록에서 찾은 내용을 한 대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히로히토(裕仁) 일왕 부처가 사령부를 방문했다.
차에서 내린 일왕을 맞이한 것은 맥아더가 아닌 부관(대위)이었다.
다음날 이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들은 분개했다.
그리고 맥아더가 일왕을 직접 맞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일왕과 맥아더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다음날 언론에 공개됐다.
일왕은 긴장한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맥아더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더구나 맥아더는 군복 상의를 입지도 않았다.
그동안 일본인들이 신성시했던 일왕은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장면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장면은 미디어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맥아더에 의해 연출됐다는 설도 있다.
세계일보 도쿄=류영현 기자
기쿠수이(菊水)는 가이텐의 문양(紋樣)이다.
가이텐 어뢰정의 몸통 중간, 잠망경 양쪽에 붙어 있다.
그것은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1294 추정~1336년) 가문의 문양이다.
가이텐 기념관 안내책자는 이렇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고다이고 천황의 신정(新政)에 앞장섰다.
천황은 그에게 황실의 국화 문양을 하사했다.
그는 황송하다며 국화의 반쪽 아래에 유수(流水) 무늬를 넣어 가문의 문양을 만들었다.
문양은 천황에 대한 충절을 상징한다.”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은 쇼군(將軍)의 통치체제다.
1185년 가마쿠라(鎌倉) 막부 이래 무사정권 시대였다. 천황의 존재는 희미했다.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고다이고(1315년 즉위)의 왕정복고 결행이다.
고다이고는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나섰다. 오사카 지방의 무장 마사시게가 충성을 바쳤다. 1
331년 거병은 실패한다. 고다이고는 오키섬에 유배된다.
그 후 고다이고는 섬을 탈출, 막부를 무너뜨렸다. 1334년 고다이고의 겐무(建武) 중흥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3년 뒤 권력은 분열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무로마치 막부 창건)가 반기를 들었다.
다카우지는 겐무 친정의 공신이다.
마사시게는 교토 수호에 나선다.
그의 병력은 다카우지의 군대에 패배했다.
마사시게는 미나토가와(溱川, 지금의 고베)에서 자결했다.
마사시게의 존재는 막부 시대에 사라졌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메이지 유신의 체제 변혁이념은 존왕(尊王)과 막부 타파다.
마사시게는 그 행동 이념의 롤 모델로 부활했다”고 했다.
마사시게의 삶은 신화로 재구성됐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다.
쇼인의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 임금 아래 만민 평등)은 마사시게 신화로 강화된다.
최혜주 한양대 연구교수(동아시아문화연구소)는
“메이지 시대를 장악한 조슈(長州)번의 쇼인 제자들은 일군만민론을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로 구체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육·해군은 침략주의 황군으로 확장한다”고 했다.
제국 일본은 군부 우월 체제였다. 그 헌법적 기반은 통수권의 독립이다.
군부는 내각 위에 군림했다.
군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 집단이 됐다.
군부는 침공과 파국으로 나라를 몰고 갔다.
마사시게 신화는 태평양전쟁 특공의 현장에 등장한다.
그는 숨지면서 ‘칠생보국(七生報國)’을 맹세했다.
“일곱 번 거듭 태어나도 역적을 주살하고 주군에 보답하겠다.”
칠생보국은 가이텐과 가미카제 대원의 머리띠에 적혔다.
마사시게의 동상은 도쿄의 황거(皇居) 앞에 있다. 도쿄에 3대 동상이 있다.
마사시게 동상(1900년 제막), 우에노 공원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동상(1898년),
야스쿠니 신사 입구의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동상(1893년)이다.
역사 가이드 우치다 씨는 “마사시게는 천황주의, 다카모리는 무사도 정신, 마스지로는 군국주의를 표출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일왕이 거주하는 왕궁이다.
400여 년 전에 세워졌으며, 약 130년 전부터 일왕이 살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치 중심지를
교토에서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기고 에도 성을 세우면서 지금의 고쿄가 조성됐다.
대부분의 지역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예약을 한 방문객에 한해 개방되고 있으며,
궁내청 직원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관람은 1일 2회,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투어일로부터 4일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안경처럼 생겼다고 해 ‘메가네바시眼鏡橋’라는 이름이 붙은 정문의 돌다리는 고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니 놓치지 말 것.
[네이버 지식백과] 고쿄 [皇居]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히에 신사(일본어:
산노마쓰리가 열리는 곳이다.
가마쿠라시대(1185-1333) 초기 지치부 시게쓰구의 에도관에 처음으로 모셔졌고,
분메이 연간(1469-1487) 오타 도칸에 의해 에도성 수호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덴쇼 18년(1590)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입성 후에는 쇼군 가문의 수호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고쿄(황궁) 수호신’으로서 숭상되었다. 구 관폐대사.
11월 15일은 일본의 시찌고산[七五三]입니다.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의 잔칫날 인데요
남자는 3세, 5세, 여자는 3세, 7세가 되는 해의 11월 15일에
그동안 무사히 자라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의미와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는 기원의 의미로
나들이옷을 입고 신사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참배를 한다고 하네요
3, 5, 7세에 이런 행사를 기념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짝수에 대한 관념보다는 홀수에 대한 관념이 좋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100일과 돌을 축하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볼수 있겠네요.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앞으로 건강과 행복, 만수무강 등을 기원하는 행사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선물을 받는 신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시치고산(七五三, しちごさん)은 3세, 5세, 7세가 되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기 위해
신사나 절을 참배하는 행사로서 11월 15일에 행해진다.
에도시대에 3세가 되는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머리를 따는 가미오키(髪置, かみおき),
5세의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하카마(袴, はかま)를 입는 하카마기(袴着, はかまぎ),
7세의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어른 복장을 하는 오비토키(帯解き) 등의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전통적인 일본 복장 외에도 서양식 정장을 하고 참배하는 어린이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날에는 지토세아메(千歳飴, ちとせあめ)라고 하는 홍백색의 엿을 먹으며 행사를 즐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행사·풍속·습관 (사진 통계와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2011. 9. 5., 다락원)
도쿄의 과자로, 주식회사 그레이프 스톤이 제조 및 판매한다.
東京バナナ나 東京ばなな는 잘못된 표기이다.
1991년에 처음 판매되었다. 연간 매출은 약 40억 원.
일본인들도 도쿄 출장을 다녀가는 길에 사가는 기념품으로 도쿄의 명물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도쿄 여행 기념품으로 알려져 있다.
1,000엔(하네다공항면세점)/8개
알콜함유량 약0.01%
約101kcal(1개당)
녹차의 쌉싸름함과 깊은 향이 조화를 이룬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
20pcs (125g),알콜함유0.5%
720엔(하네다공항면세점)
전일본공수
[ All Nippon Airways Co., Ltd. , 全日本空輸 ]
전일본공수는 아시아 최대 항공사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10대 항공사의 하나로 손꼽힌다. 약어로 'ANA'라 불린다. 3개국 77개 목적지에 취항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52개 취항지를 매일 운항하며, 일본 국내 여행시장의 50%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2007년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Air Transport World)> 지가 선정한 ‘2007 올해의 항공사’이다.
216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승객 수는 4700만 명 가량이다. 도쿄 하네다 공항과 나리타 국제공항을 허브항공으로 사용하고 있다.
1952년 세워진 일본헬리콥터운송회사(NH)가 전신이다. NH는 1953년 1월부터 헬리콥터로 승객 운송을 시작하였으며, 1955년부터 도쿄와 오사카 간 정기 화물을 수송하였다. ANA(전일본공수)의 또 다른 전신은 1952년 12월 26일 설립된 파이스턴항공(FEA: Far East Airlines)이다.
1958년 FEA와 NH가 합병하여 ANA가 탄생했다.
1961년 오사카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1963년 후지타항공(Fujita Airlines)을 인수했다. 1974년 ANA는 일본 최대의 국내선 운항업체가 되었다. 1971년 ANA는 도쿄에서 홍콩으로 첫 국제선 운항을 시작했다.
1986년 3월 ANA는 도쿄에서 괌에 이르는 국제선 정기운항을 시작했다. 같은 해 말 도쿄에서 LA 노선과 워싱턴 노선에 취항했다. 1987년 베이징, 다롄, 홍콩, 시드니, 1988년 서울, 1989년 런던과 사이판, 1990년 파리, 1991년 뉴욕 노선에 취항했다. 1990년부터 A320과 A321 에어버스를 노선에 투입했다. 1999년 항공동맹체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에 가입했다.
2004년 ANA의 순이익이 당시 일본 최대 항공사인 JAL을 넘어섰다.
2005년 후쿠오카 공항을 오가는 저가항공사인 에어넥스트(Air Next)를 세웠다. 2009년부터 전자항공권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객들의 탑승 서비스를 강화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는 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일본공수 [All Nippon Airways Co., Ltd., 全日本空輸]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기업, 굿모닝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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