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마 시게노부(Shigenobu Okuma)가 사망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한 사업이 계획되어
그가 간절히 소망하던 대강당을 건립하기로 했다.
강당은 3층으로서 1,435명을 수용할 수 있고 지하에는 보조 강당이 있으며 382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강당 왼쪽에는 7층 건물 높이의 시계탑이 세워졌다.
이 탑은 125피트(약 38미터)인데, ‘125’라는 숫자는 오쿠마가 생전에 125세까지 살고 싶어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꼭대기에 얹은 종은 미국 발티모어(Baltimore)의 맥린회사(Maclean Company)에서
파나마 운하(Panama Canal)를 거쳐 이곳까지 수송되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종 4가지로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종은 하루에 여섯 차례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과 똑같이 울려서 와세다 전역에 퍼져나간다.
강당에 들어서면 천장에 타원형 채광창이 보인다. 그 창은 해, 달,
9가지 행성을 포함한 태양계를 나타내며 강당 안팎 우주의 조화를 상징한다.
이 강당은 관동대지진(Great Kanto Earthquake) 사건으로 예정보다 5년 늦은 1927년 10월 20일 개관했다.
오쿠마 강당(Okuma Auditorium)을 마주보고 있는 동상은 초대 동상이 아니다.
초대 동상은 현재 오쿠마 강당 북측의 회랑에 있다.
오쿠마 동상은 예복차림이며 1907년 대학 창립 25주년을 맞아
오구라 소지로(Sojiro Ogura)가 제작하고 스즈키 조키치(Chokichi Suzuki)가 주조 했다.
그러나 예복차림은 총장인 오쿠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학위복장의 동상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오쿠마와 친한 친구인 아사쿠라 후미오(Fumio Asakura)가 동상을 다시 만들었고,
이 새 동상은 1932년 10월 대학 창립 50주년에 제막되었다.
참아버님, 와세다고등공학교 졸업(1943.09.30, 일본 도쿄)
참아버님께서는 미래의 섭리를 위해 더 크고 넓게 준비하고자 일본 유학을 떠나셨다.
1941년 3월 31일 경부선 히카리(光)호 열차를 타고 서울역을 떠나셨으며,
4월 1일 부관(釜關)연락선 쇼케이마루(昌慶丸)를 타고 부산을 출발, 시모노세키로 향하셨다.
그리고 4월 초순 와세다대학교 부속 와세다고등공학교(早稻田高等工學校)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셨다.
아직도 참아버님께서 다니셨던 교사(校舎)는 와세다대학 니시와세다 캠퍼스(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와세다) 14호관 근처에 있다.
입학 후 수업 장소로 와세다대학 부속 제2와세다고등학원 교사(현 니시와세다 캠퍼스 14호관)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실험과 실습은 이공학부의 설비를 이용했다. 수업은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는데 오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졌다.
참아버님께서는 당시 전시 상황 변화에 따라 학기가 반년 단축되어 1944년 봄에 졸업할 예정이었지만
1943년 9월 30일에 제25회로 졸업하셨다.
이때 와세다고등공학교의 학생수는 1,320명이었으며 졸업생 580명 중 전기공학과 졸업생은 125명이었다.
1882년 10월 21일 정계의 재야 지도자인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가
법학과, 정치경제학과, 영문학과, 물리학과를 둔 도쿄전문학교로 설립하였다.
1893년에는 문학과에서 대학원과정을 시작하였다.
1902년 창립자의 마을인 와세다마을에서 따온 와세다대학으로 개칭한 후
, 법학과, 문학과의 대학부, 7개 전문부(전문학교), 1개 대학원을 갖추었다.
1904년 전문학교령에 따라 대학 지위를 획득한 데 이어
년 새로 제정된 대학령에 의해 정식 사립대학이 되었으며 3년 과정의 대학원을 설치하였다.
1939년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하였고 1949년 신제대학으로 전환하여
7개 학부로 4년제 대학과정을 시작하였다.
1951년 6개 대학원 연구과(석사 과정)를 설치하였다.
2010년 기준 정치경제학·법학·문학·교육학·상학·이공학·사회과학 등의 학부가 있고,
별도로 일본어 전수과정을 두었다. 부속고등학교 2곳과 예술건축학교를 두었다.
캠퍼스는 도쿄도의 와세다, 니시와세다[西早稲田], 도야마[戸山], 오쿠보[大久保],
기쿠이초[喜久井町], 히가시후시미[東伏見], 니혼바시[日本橋]와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所沢], 혼조[本庄], 후쿠오카현의 기타큐슈[北九州]에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건축양식을 본떠 세운 쓰보우치[坪内逍遥]기념 연극박물관이 특히 유명하다.
부속시설로 아이즈박물관, 인간종합연구센터, 종합학술정보센터, 텔레비전연구소,
가가미기념 재료기술연구소, 이공학연구소, 비교법연구소, 언어교육연구소, 산업경영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일본어교육연구센터, 학술정보센터, 국제정보통신연구센터,
교육종합연구소, 건강서비스센터, 열린교육센터, 규슈연구소가 있다.
전 일본 총리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모리 요시로[森喜郞],
현대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등이 졸업했다.
한국인 동문으로는 기업인 이병철, 이건희, 박태준, 신격호, 전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
정치인 신익희, 유진산, 국어학자 양주동, 역사학자 이병도, 소설가 채만식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세다대학 [Waseda University, 早稲田大学(조도전대학)] (두산백과)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의 동상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마련하고,
[早稻田大學]의 전신인 동경전문학교를 설립한 일본의 정치가.
학창시절 와세다 대학에 재학중인 문선명 총재 모습
학창시절 와세다 대학에 재학중인 문선명 총재 모습
내가 와세다대학에 다닐 때 야간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고학생들의 비용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노동자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물로써 그것을 호소하지 않고는 일본이 설 수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세를 갖추고 설 수 없는 부끄러움의 역사를 품고 통곡과 더불어 사죄를 해야 될 날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2.3.4:5, 590-145, 2008.05.20)
서울 학교에서 추천해서 와세다고등공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공부 대신 교회와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성경에 있는 미지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 한 장을 중심삼고 5년 동안 연구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한 장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입니다.
그렇게 성경 가운데 제일 어렵고 난해한 문제를 전부 환하게 풀어야 합니다.
원리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이것을 풀어냈기 때문에 하늘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다 안다는 것입니다. (참2.3.4:9, 571-190, 2007.08.10)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몰랐습니다.
성서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관계 서적이나 보통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철학서적을 읽었습니다.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있던 그 친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또 노방에서 큰소리로 연설한 적도 있습니다.
벚꽃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연설을 했습니다.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내일의 청년은 이러이러한 식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언했던 것이 지금 다 맞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구경하러 와서 내가 연설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참2.3.4:8, 015-182, 1965.10.08)
1882년 10월 21일 정계의 재야 지도자인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가
법학과, 정치경제학과, 영문학과, 물리학과를 둔 도쿄전문학교로 설립하였다.
1893년에는 문학과에서 대학원과정을 시작하였다.
1902년 창립자의 마을인 와세다마을에서 따온 와세다대학으로 개칭한 후
, 법학과, 문학과의 대학부, 7개 전문부(전문학교), 1개 대학원을 갖추었다.
1904년 전문학교령에 따라 대학 지위를 획득한 데 이어
년 새로 제정된 대학령에 의해 정식 사립대학이 되었으며 3년 과정의 대학원을 설치하였다.
1939년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하였고 1949년 신제대학으로 전환하여
7개 학부로 4년제 대학과정을 시작하였다.
1951년 6개 대학원 연구과(석사 과정)를 설치하였다.
2010년 기준 정치경제학·법학·문학·교육학·상학·이공학·사회과학 등의 학부가 있고,
별도로 일본어 전수과정을 두었다. 부속고등학교 2곳과 예술건축학교를 두었다.
캠퍼스는 도쿄도의 와세다, 니시와세다[西早稲田], 도야마[戸山], 오쿠보[大久保],
기쿠이초[喜久井町], 히가시후시미[東伏見], 니혼바시[日本橋]와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所沢], 혼조[本庄], 후쿠오카현의 기타큐슈[北九州]에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건축양식을 본떠 세운 쓰보우치[坪内逍遥]기념 연극박물관이 특히 유명하다.
부속시설로 아이즈박물관, 인간종합연구센터, 종합학술정보센터, 텔레비전연구소,
가가미기념 재료기술연구소, 이공학연구소, 비교법연구소, 언어교육연구소, 산업경영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일본어교육연구센터, 학술정보센터, 국제정보통신연구센터,
교육종합연구소, 건강서비스센터, 열린교육센터, 규슈연구소가 있다.
전 일본 총리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모리 요시로[森喜郞],
현대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등이 졸업했다.
한국인 동문으로는 기업인 이병철, 이건희, 박태준, 신격호, 전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
정치인 신익희, 유진산, 국어학자 양주동, 역사학자 이병도, 소설가 채만식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세다대학 [Waseda University, 早稲田大学(조도전대학)] (두산백과)
와세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츠보우치 박사 기념 연극 박물관(坪内博士記念演劇博物館)(통칭 : 엔파쿠)입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연극 전문 박물관인 엔파쿠(エンパク)는
1928년에 츠보우치 쇼요(坪内逍遙) 박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츠보우치 쇼요(1859년~1935년)는 근대 일본 문학의 성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가이며,
셰익스피어 작품을 처음 일본어로 번역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건물은 셰익스피어(1564년~1616년)가 활약했던 시대의 극장 「포춘 극장(Fortune Theatre)」을 본뜨고 있으며,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이마이 켄지(今井兼次)씨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정면은 엘리자베스 왕조 때가 배경이 되어있어 개성적인 외관인 엔파쿠는 캠퍼스 건물 중에서 한층 눈에 띄고 있답니다.
“enpaku엔파쿠(演博, 연극박물관)”라는 별칭으로 친숙한 와세다대학 츠보우치박사기념 연극박물관은
1928년 10월, 츠보우치 쇼요 박사가 고희 (70세)가 된 것과 그가 반생을 기울여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 전 40권이 완성된 것을 기념해서 각계 유지의 협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아시아 유일한 연극전문 박물관으로써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연극 영상관련 자료의 수집에 힘써왔습니다.
약 100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은 85년 이상 키워온 “연극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극인・영화인 뿐만 아니라 문학・역사・복식・건축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분들의 연구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연극박물관은 츠보우치 쇼요의 발안으로 엘리자베스조 시대인 16세기 영국의 “포춘극장”을 모델로 이마이 켄지 등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정면의 지붕이 있는 돌출부분은 무대이며, 입구는 그 좌우에 있고,
도서열람실은 분장실,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양날개와 같은 공간은 특별석, 건물 앞 광장은 일반석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연극박물관의 건물 자체가 하나의 극장 자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대 정면에는 Totus Mundus Agit Histrionem
“이 세상은 모두 무대”라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사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메이지시대에서 쇼와시대에 걸쳐 연극・문학・무용・아동극・미술・교육 등
다방면에서 혁신적・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근대일본문화에 있어서 위대한 개척자의 한 사람입니다.
enpaku 2층에 있는 쇼요기념실은 쇼요가 방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천정에는 쇼요가 태어난 해의 띠를 본떠 양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대좌에 스승 쇼요를 기리는 아이즈 야이치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악수를 하면 와세다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악수를 하는 학생이 끊이지 않습니다.
浅草
일본 도쿄 구의 한 지역. 관동 대지진으로 망할 뻔 했으나, 현재는 복구되어 관광지이자 랜드마크로 유명하다.
센소지라는 절이 유명하며, 센소지의 정문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붉은 등이 트레이드 마크다.
참고로 아사쿠사에도 히가시혼간지란 절도 있는데 교토에 있는 동명의 유명한 절과 이름이 같지만 사실 흔한 이름이다.
한국의 광명시에도 황룡사가 있다. 아사쿠사의 히가시혼간지도 콘크리트로 재건된 절이었지만
과거에는 조선 통신사와 인연이 있던 절이다.
반프레스토가 인수, 경영하고 있는 유원지 하나야시키(花やしき)[1]가 슈퍼로봇대전 OG 외전에 등장하여
지금은 회사를 옮겼지만 예전엔 아사쿠사에 반프레스토의 본사가 있었던 걸로 유명했기 때문에
지역 친밀도가 꽤 높아서 현재는 인수하여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슈로대 이전엔 사쿠라 대전의 성지순례자로도 유명하며 원래 오덕계에서 종종 등장했던 곳이다
도쿄에서 가장 큰 절로 간혹 이 절 이름이 아사쿠지인줄 아는 사람이 있지만 센소지가 맞다.
다른 이름으로 아사쿠사칸논지(淺草觀音寺) 또는 칸논지(觀音寺)라고 부르는데 관세음보살을 모신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징인 가미나리몬은 이 절의 정문이며 정문과 중문 사이에 상점가가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628년 한 어부 형제가 바다 또는 스미다 강에서 그물에 걸려 올라온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해 간립한 절이라고 하지만
현재 건물들은 전형적인 에도시대 사찰 건물이다.
도쿄 자체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건물은 관동 대지진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홀랑 타버렸으며 이 절도 1960년대에 재건한 것이다.
본당은 콘크리트로 재건되어 있으며 유명세에 비하면 그다지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은 절은 아니다.
다만 도쿄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사찰이란 점과 절 앞의 상점가의 요란한 분위기,
그리고 가미나리몬의 커다란 등을 보러 가는 사람이 많다.
문화재가 많은 지역에서 살다 온 사람들 이야기로는 도쿄에서 가장 일본스러운 곳이라고 알고 갔는데
실상은 도심 속의 평범한 절이라 별 감흥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에 보이는 붉은 등 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원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막상 가 보면 중국인들이 굉장히 많고 여기가 중국인지, 일본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중국 외의 외국인들도 많이 가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 4월 6부작으로 방영된 <윤하, 일본을 담다>에서 윤하가 방문했다.
가까운 곳에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있는데 아사쿠사를 거닐다 보면 보일 정도이다..
반대로 도쿄 스카이트리에서도 센소지가 매우 잘 보인다.
1.2. 진 여신전생 3 녹턴에 나오는 아사쿠사
마네카타들이 태어난 고향. 이 때문에 만트라군에게 잡혀 고통받고 있던 마네카타들과
그 리더인 후토미미가 주인공에 의해 풀려나자 떠난 곳이기도 하다.
아사쿠사로 가보면 마네카타들이 모여 살고 있는걸 볼 수 있다.
덕분에 긴자 대지하도에 있던 마네카타들은 한두명을 제외하면 다 아사쿠사로 이동한다.
다른 마을과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마을 안을 돌아다녀도 몹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예 인카운트가 뜨지 않는 안전지대.
그리고 터미널과 회복의 샘, 사교의 관 등이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돌아다니기 매우 편한 마을이다.
마을 밖으로 나가거나 유사쿠쵸 갱도로 가는 길에는 몹들이 나온다.
지령 계열의 몹들이 자주 나오며 사루타히코, 올토로스, 티탄 등 레벨 30~40이 넘어가는 악마들도 다수 출몰.
북쪽으로 가보면 악마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래 아사쿠사는 그들이 살던 곳이었다는 듯. 도대체 마네카타들이 어떻게 그들의 터전을 뺏아 살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리더인 후토미미의 스펙을 보면 그럴 수 있을 법도 하다.
마가타마를 다수 획득할 수 있는 마을이다.
상점에서 파는 것만 총 5개고 잭 오 랜턴 퀴즈를 풀면서 한 개 더 획득 가능. 초반부터 본 잡동사니 마네카타가 이곳에 상점을 차리게 된다.
SP 회복 아이템인 차크라 드롭을 팔고 있으므로 자주 이용하자.
긴자 대지하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안전지대인 마을. 그래서인지 히지리도 아사쿠사로 온 뒤로는 여기서만 붙어산다.
사루타히코가 히지리에 대한 언급을 할 정도로 유명한 듯. 성지 미후나시로로 연결되어있으며
이들의 리더인 후토미미는 항상 이곳에서 명상을 하며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슬슬 코토와리들이 열릴 무렵에 후토미미가 마네카타들을 선동하며
'모두가 같은 차별없는 세계'를 이상으로 내걸고 자신들도 코토와리를 열자고 한다.
대부분의 마네카타가 여기에 선동돼버린다.
하지만 타치바나 치아키가 찾아오면서 모든게 실패로 돌아간다.
치아키의 말에 의하면 진흙인형 따위는 코토와리를 열 수 없다고.
하긴 얘네들이 코토와리를 열었으면 타카오 유우코는...
아마라 신전에서 이사무를 도와주고 온 후에 아사쿠사에 들리면 마네카타들이 모조리 사라져있고
안을 막고있던 문이 파괴되어있다.
가장 깊숙히 들어가다보면 치아키가 후토미미를 처리하려고 하는데 이 때 후토미미가 도와달라고 인수라에게 외친다.
본래라면 당연히 도와줘야 할 장면이지만 여신전생 시리즈답게 여기서 선택지가 뜬다.
후토미미를 도와주는 것과 도와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보스전에서 싸우는 대상 정도. 그리고 뭘 선택하건 후토미미는 죽는다.
마네카타들이 창세를 이루려고 모아둔 마가츠히로 치아키는 자신의 신인 바알 아바타를 강림시키고 떠난다.
그 뒤 다시 아사쿠사로 돌아가보면 마을은 악마들과 사령체의 마을로 바뀌어있는걸 볼 수 있다.
입구에 있던 마네카타의 인삿말인 '어서오세요! 마네카타의 마을,
아사쿠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요모츠이쿠사의 '어서오세요.
슬럼가 아사쿠사입니다'로 바뀐 것이 이 마을의 상태를 한눈에 알려준다.
비 안전지대로 바뀌면서 마네카타가 잡몹으로 등장하는데 눈물나게 약하므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치아키가 평하길 후토미미가 없으면 점령할 의미조차 없는 거리라고.
아사쿠사(浅草)의 랜드마크・센소지(浅草寺)를 방문하면,
마치 넘칠 듯 사람들이 본당 앞에 모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궁금해서 사람들 무리로 가까이 접근하자 순간 눈앞이 안 보일 정도의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뭉게뭉게 하늘로 피어오르는 연기 주위에는 자기 몸쪽으로 연기가 오도록 손짓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 하얀 연기는 어디서 생긴 걸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왜 연기를 몸에 끼얹을려고 하는 걸까요?
오늘은 센소지의 이 '연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몸에 끼얹는 연기・센소지 상향로(常香炉)
연기는 '상향로(常香炉)'라고 하는 커다란 도자기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관광객은 상향로를 보자마자 다가갑니다. 향로에 올린 선향에서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선향은 향로 옆에 설치된 판매소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세요. 선향 다발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卍(만)'의 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전국시대 말기(약 400년 전) 중국에서 전해진 '향로'는
참배객의 신체를 정화하기 위해 사용된 불사에 쓰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향로의 연기를 아픈 부위에 끼얹으면 좋아진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영향을 받아 향로 주위로 참배객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향로 주위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보면 머리에 연기를 맞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픈 곳이 좋아진다=머리가 좋아진다, 똑똑해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센소사
[ 淺草寺(천초사) ]
아사쿠사관음사[淺草觀音寺]라고도 한다. 628년 어부 형제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물고기 대신 그물에 걸려 올라온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아사쿠사칸논지란 명칭도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유래한 것이다.
도쿄의 대표적인 사찰로, 24개 지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40~50명의 승려가 거주한다.
입구는 가미나리문[雷門]으로, 오른쪽에는 풍신(風神), 왼쪽에는 뇌신(雷神)을 모셨는데,
두 신 모두 풍년과 태평연월을 주관하는 신이다.
가미나리문을 지나면 돌로 된 길 양쪽에 민속품을 비롯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고,
이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산문(山門)에 해당하는 호조문[寶藏門]이 있다.
문을 지나 왼쪽의 5층탑을 거치면 드디어 대웅전인 본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은 가파른 지붕이 특히 아름다우며, 관음당 중앙의 본존이 안치된 궁전은 일본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본존인 관세음보살은 33년에 한 번 있는 경축개장이나 기념행사가 있을 때만 임시로 개장할 뿐 일반인은 참배할 수 없다.
주요 건물 외에도 이 사찰의 수장고에는 불서(佛書)·불화(佛畵)·불구(佛具)·불상·부적그림·일기 등 250여 점의 사찰 유적이 보관되어 있다.
특별전 외에는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현세 기복(祈福)의 도량(道場)으로, 단일 관광지로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일본의 명소이다.
특히 설 연휴 때는 하루에만도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도쿄[東京] 다이토구[臺東區]의 아사쿠사에 있으며, 바로 서쪽에 우에노[上野]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센소사 [淺草寺(천초사)] (두산백과)
신주쿠 돈키호테
조금은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내취향은 아님
내가 살 것은 일반 마트가 훨씬 좋아.....
신주쿠 역(新宿駅 しんじゅくえき 신주쿠에키)은 도쿄 도 신주쿠 구와 시부야 구에 걸치는
동일본 여객철도, 오다큐 전철, 게이오 전철, 도영 지하철, 도쿄 메트로의 철도역이다.
도쿄 도 신주쿠 구 신주쿠 3초메와 니시신주쿠 1초메 및
시부야 구 요요기 2초메와 센다가야 5초메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일본 여객철도 역장실이 있는 신주쿠 구를 정식 주소로 한다.
하루의 이용객 수는 JR만 해도 157만 명으로 일본 제1위로,
각 전철 회사의 이용객을 전부 더하면 364만 명으로 세계 제1위의 이용객수를 자랑하는,
일본 도쿄 신도심과 서쪽 지역을 잇는 터미널 역이다.
JR의 역을 중심으로 동쪽 출입구, 서쪽 출입구,
남쪽 출입구의 각 방면으로 나뉘어 수많은 연결 통로가 뻗혀 있고,
역의 지하도는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총합 200개 이상의 출구가 있다.
일본 인터넷 게시판 2ch에서 2011년 2월 11일에 신주쿠 역 출구 부근에서
살인범행을 저지르겠다는 글이 올라와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시부야는 메이지 시대부터 철도가 들어서는 교통의 요지였지만 지금처럼 쇼핑과 젊음의 거리로 바뀌게 된 것은
1934년 시부야역에 도큐 백화점이 오픈하면서 쇼핑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세이부 백화점과 파르코 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쿄를 대표하는 상업지구로 급부상했다.
이제는 젊은이들로 붐비는 도쿄의 명소로서, 현재는 시부야109, 109주니어스테이션, 마크시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건물로 가득하다.
지금도 새로운 명소가 쉴 새 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등 시부야의 발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목적 없이 나서거나 몇 시간 만에 모두 둘러보려고 욕심을 내면 얻는 것도 없이 지칠 수밖에 없다.
관심이 있거나 사고 싶은 것을 미리 확인하고 취향에 따라 몇 곳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방법이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J-POP 등 일본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하루 종일 구경하더라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시부야역 앞에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충견 하치코의 동상이 있다.
혼잡한 역 광장에서 만남의 상징으로서 우직하게 서 있다.
역 주변에 하치코 버스도 운행하니 기회가 있으면 타보는 것도 좋다.
밤이 되면 시부야는 클럽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해 춤을 추려는 젊은이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DJ들의 천국이 된다.
낮에도 밤에도 잠들지 않는 젊음의 거리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부야 [Shibuya]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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