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서양문명의 한계 극복과 세계평화를 이끌어 갈 한국인의 지혜

tkaudeotk 2016. 9. 26. 14:05

문화평론가 박정진 『메시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外 新刊 2종 출간 화제


소리 철학(phonology)’이라는 독창적인 철학세계를 형성한 문화인류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박정진(66․사진)이 

서양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끌어 갈 한국인의 지혜를 담은 책들을 잇달아 내놓아 주목된다. 
  
서양문명의 근간이자 기독교의 핵심인 ‘메시아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메시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天)를 출간해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박정진 박사는 이번에 

『평화는 동방으로부터』(地)와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人)을 함께 출간해 ‘천지인(天地人)’으로 완성했다. 

기독교 메시아사상에 대한 철학적 탐색을 최초로 시도한 『메시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평화는 동방으로부터』와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는 물론,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위해 초석이 되어줄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그의 신작(新作)들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유이다.  
  
『메시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미래에만 존재하는 메시아사상은 기독교의 모순" 
    
언론인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1950년대 세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오늘날 세계 194개국에 선교본부를 둔 ‘글로벌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지금 서양의 기독교는 신도수의 격감으로 실의에 빠져있다. 

신부나 수녀, 목사 등 성직자들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래 기독교 신학이론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흥을 줄 수가 없다. 

반면 통일교는 현재 미국과 일본의 신도들은 국내 신도수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많은 서양의 목사와 지식인들도 

통일교 이론에 심취해 개종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태동한 통일교가 한국에서는 

‘이단(異端)‘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오랫동안 배척 받았는데, 세계적으로는 어떻게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는가? 

오늘날 통일교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 저자는 “기독교와 한국 전통사상이 융합함으로써 토착화를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종교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통일교 신학의 핵심은 기독교 신학에 한국의 전통사상을 가미한 점이다. 

따라서 요즘 세계를 휩쓰는 한류(韓流)의 원조가 문선명(文鮮明․1920~2012) 총재라는 주장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내 기독교계가 통일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경원시하고 

그저 서양에서 들어온 사상과 이론만 숭상하려는 ‘사대주의’의 발로일 뿐이란 저자의 분석이 날카롭다. 
 
책 제목도 도발적이다. 

책 제목대로라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핵인 ‘메시아사상’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닌가. 

이들 종교가 수천년 동안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나아가 기존의 기독교는 해체되거나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있다.
 
학자적 호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사안이 예사롭지 않다. 

중견 사상가요, 언론인이요, 문화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사상서 등 1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면서 동서양 사상을 넘나드는 경지에 이르렀고, 

이데아와 과학 등 이른바 ‘보편자’를 찾으려 한 서양철학의 작업은 실패했다고 주장해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 같은 선언은 이번에 증보판으로 펴낸 『메시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행복한에너지·사진)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기존의 책에 ‘서양의 메시아사상에 대한 해체적 고찰’이라는 챕터(章)를 하나 더 추가해 새롭게 펴냈다. 

이 책 제1장에서 메시아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이유를 상세히 논증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에게 메시아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재림예수를 기다리게 하는 구세주의 유형을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난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메시아는 항상 기다리면서도 정작 육신을 가진 실체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메시아는 항상 내일에 와야 할 존재, 끊임없이 기다리게 하는 존재, 

기다리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왜 그럴까. 

정치권력의 속성상 만약 누군가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나선다면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 불편하거나 제거 대상이 된다. 

종교는 정치의 원형이기에 더 말할 나위 없다. 메시아임을 자처한 예수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결국 과거와 미래에만 존재해야 하는 메시아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간의 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메시아는 현재적 존재가 돼야 옳다. 예수도 당시에는 현재적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메시아는 미래적 존재가 아니라 현재적 존재가 되지 아니면 안 된다. 

현재가 부재한 메시아사상은 서양기독교의 결정적 내용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결함이요, 핸디캡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저자는 메시아사상의 비현실성과 모순을 정면에서 공격한 인물이 다름 아닌 문선명 총재였다고 밝힌다. 

문 총재의 위대성은 인간이 시간 속에 방임한 메시아를 스스로 실체화함으로써 

지금까지 ‘한없이 기다리게 하던’ 메시아론(論)의 허구를 깨버렸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만 존재하고 타자화 된 메시아를 소멸시키고 완성시킴으로써 

‘역사적 메시아’를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만든 문 총재의 선각자적 모습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육신을 가진 자가 스스로 메시아가 되지 않으면 메시아사상은 결국 사기와 위선이 되며, 

교회가 ‘종교장사’를 하는 것을 연장해 주는 데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메시아적 사명을 스스로 수행하는 인물이 나타날 때 메시아사상은 실현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선각자가 문 총재였다. 

문 총재는 한없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스스로 담당하고 실현함으로써 메시아의 전범(典範)을 보여줬다. 

예수도 과거에 실패한 메시아가 아니라 당시 현존적으로 메시아를 실현한 인물이며, 

문 총재 역시 재림메시아가 아니라 현존적으로 메시아를 실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문 총재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메시아를 기다리지 말고 너희가 메시아가 돼라”고 일러준다.

 
메시아는 자기주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삶과 인생역정, 인류에 대한 기여, 

평화를 위한 노력과 희생, 인류복지 구현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것은 각자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저자는 문 총재가 통일교와 통일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인 인류평화를 위해 일평생 혼신을 다해 헌신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문 총재는 신(神)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종식(終熄)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마침내 그 결실을 거두었고, 

인종 간·종교 간 화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역사상 당대에 그러한 성과를 거둔 인물은 문 총재가 유일하다고 본다.
 
저자는 통일교가 기독교적 보편성의 종교를 불교적 일반성으로 내려오게 함으로써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길,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탁월한 신학적 종교라고 평한다. 

그는 기독교에서 출발한 통일교를 ‘대승기독교’라고도 표현했는데, 

이는 신(하나님)마저도 불쌍하게 여긴 문 총재의 깨달음과 사상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문 총재는 “내가 신이 되지 않으면 신은 없다” 

“내가 메시아가 되지 않으면 메시아는 없다”는 진리를 몸소 깨닫고 실천한 인물이며,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기에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구원신앙은 그동안 인간의 삶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고,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만들며, 

끝내 스스로 만든 족쇄에서 허덕이는 존재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는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는 결국 해체돼 새롭게 발전하거나 아니면 종막을 내려야 한다고 쓴소리도 한다. 

이 책은 메시아사상을 재해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평화는 동방으로부터』- “인류를 공멸에서 구할 깨달음의 철학   
  
인류는 이제 패권국가의 등장 없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과 합의를 찾아야 한다. 

패권국가를 결정하는 가공할 전쟁 등으로 인해 진정한 평화를 얻기도 전에 공멸(共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서 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생명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명(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평화와 생명은 그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에 평화를 지향하는, 또는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평화를 위한 철학’이 아니라 

‘평화를 결과적으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평화의 의미’를 담아 낸 책 

『평화는 동방으로부터』는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명언을 연상케 할 만큼 심오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진정한 차이의 철학’인 동양의 천지인(天地人)사상과 음양(陰陽)사상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서양철학과도 소통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적인 사유(思惟)의 새로운 지평을 밝히고 있다. 

더불어 지속 가능한 미래문명을 위해선 그동안 인류 문명을 주도해온 서양이 동양의 무위자연의 도(道)와 

뷸교의 무(無)와 공(空)의 삶의 철학에 귀 기울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독자들은 이것이 저자의 평화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집성(集成)한 

‘평화철학’에 관한 저술이란 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 제목의 머리에 다시 

‘인류를 공멸에서 구할 깨달음의 철학’이란 구절을 올려놓고 다시 제목의 끝에

‘서양철학과 문명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보고’라는 단서를 덧붙여놓았다. 
 
얼핏 보아도 서양철학과 서양문명은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얻으려면 동양의 정신과 동양의 철학적 전승에서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문명의 문제는 도구가 목적을 배반한 데에 있다. 

인류문명은 마치 문명충돌과 전쟁을 위해서 있는 듯하고 

평화와 행복에서 멀어진 듯하다. 

인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 존중에서 멀어진 듯하다. 

인간의 생명 차제를 기계의 부품처럼 생각한다면, 인간은 결국 기계로부터 소외되고 말 것이다. 

서양이 주도하는 현대과학기술문명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 정말 지독한 허무이다. 

인류가 공멸하지 않으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러한 문명적 정신병리 현상을 극복하고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 

평화가 없는 곳에 행복이 깃들 수는 없는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이 결코 간단히 얻어진 결론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 세계평화를 위한 한국인의 지혜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의 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절대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우주물리학의 자연과학과 세계를 금융자본주의로 통일하고 있는 

서양의 문화·문명으로는 결코 인류가 평화를 달성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스-메이킹(Peace-making)이라는 말이 있듯이 평화도 만들어가야 함은 물론 

세계를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과 이성’의 철학, 즉 ‘소유의 철학’으로는 

인류 평화는 요원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인간은 본래존재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면 평화는 저절로 손에 들어올 것이다. 

본래존재는 존재일반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철학은 일반성의 철학이다. 

 
궁극적으로 끝없이 소유하려고 하면 인간은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간의 정신이 정신병이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앞표지에 있는 제목에서 가장 아랫부분에 

‘서양철학과 문명에 대한 정신병리학의 보고’라는 문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평화를 지향하는, 또는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평화를 위한 철학’이 아니라 

‘평화를 결과적으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평화의 의미’로서 『평화는 동방으로부터』와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를 내놓게 되었다. 

서양철학과 문명은 모든 것을 실체화해서 그것을 획득하려고 한다. 

과연 평화와 생명이 서양철학이 말하는 실체로 달성되는 것일까. 
 
세계의 본래적 평화와 생명은 이미 세계에 부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리어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체가 이미 평화와 생명에서 멀어진 인류의 삶을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실체로 보는 것은 세계를 소유하겠다고 하는 소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특히 『평화의 여정으로 본 한국문화』은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다름 아닌 평화의 여정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날 절대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우주물리학 그리고 세계를 금융자본주의로 몰아가는 서양의 문화, 

문명으로는 인류평화가 달성되기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인간이 본래존재로 돌아가는 길에 있어서 

원시반본적 지혜, 한국의 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저자 박정진은 (주)문화방송·경향신문 입사 이래 줄곧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다. 

시(詩) 전문 월간지 『현대시』로 등단한 문학가이며, 인문학적 글쓰기에도 매진하여 

<한국문화와 예술인류학> <무당시대의 문화무당>을 비롯하여 최근에 <불교인류학> <종교인류학> <예술인류학, 예술의 인류학> 

<예술인류학으로 본 풍류도> <단군신화에 대한 신연구> <굿으로 본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다성(茶聖) 매월당(梅月堂)>(출간 예정) 등 시집과 저술을 합하여 총 100여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논설위원·moon475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