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북한교회를 가다㉛ 통일교(중)

tkaudeotk 2016. 9. 22. 16:27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65회부터는 남측교회와 해외교회가 주도해 북측 영토에 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건축사업이 중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자 한다.
이중에는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 내에 마련될 30평 규모의 ‘병원교회’와 평양 대동강변 IT단지에 설립될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예장 합동측의 ‘평양장대현교회’ 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추진 중인 미국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주도로 지어질
‘평양국제외국인교회’도 다룰 것이며 평양 조선영화촬영소 산속에 지어진 ‘형제산교회당’과
거기 딸린 목사관을 방문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며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통일교’가
평양보통강호텔 앞에 설립한 ‘국제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방문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필자 주

 

지난 회에는 통일교의 다양한 대북사업들 중에서 그 첫 번째로 종교부분을 다뤘다. 

보통강호텔 앞의 세계평화센터는 사실상의 종교시설이며 그에 따른 건립비용은 그동안 본국 통일교 본부의 지원과 더불어 

북에서의 관광사업 수익금과 평화자동차 판매수익금 등으로 충당해 왔다. 

아울러 평화센터 3층에 있는 예배당은 통일교의 종교적 교두보 역할을 평양에서 톡톡히 하고 있음도 알아보았다. 

또한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 총재의 생가와 그 인근 세계평화공원 조성 목적도 

종교적 시설물이라는 것을 심층적으로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의 첫 만남에서 이뤄진 협력사업 조항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교 선교사를 평양에 공식 파송하는데 합의했고 그에 따른 결과로 형식적이지만 일본인 출신 통일교 신자가 

실제로 분단 이후 최초로 북 파송 제1호 통일교 선교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번 회는 통일교 대북사업의 한 복판에 박상권이라는 인물이 항상 자리 잡고 있는데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며 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필자와의 만남과 그의 언론과의 인터뷰 자료 등을 통해 상세히 살펴보았다. 

아울러 마지막 회는 현존하는 통일교의 대북기업들에 대해 하나씩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필자가 방북해 통일교 기관을 참관한 시기는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지 2년도 채 안 되는 시기였다. 

집권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시내는 엄청나게 발전했고 변모하고 있었으며 역동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북을 다녀 온 후 많은 사람들에게 평양의 발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나에게

 “평양만 발전하면 뭐하냐?”고 힐난하듯 비난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평양이라는 도시는 매우 중요했다. 

평양이 변하고, 평양이 발전이 돼야, 북측의 다른 지역도 모두 다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평양이 짧은 기간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지방 도시들도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목격되었다. 

이런 발전과 변화의 한 복판에는 그동안 통일교와 그 기업들이 한 몫을 했다.


▲ 전승절 60돌(정전협정 60주년) 행사 참가를 위해 방북한 해외동포 대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자동차 박상권 회장만을 지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 하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 1991년 12월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 일행이 주석궁에서 만난 후 기념 촬영한 모습. 

이후부터 문 총재의 뜻을 수행하는 모든 대북사업은 통일교 박보희 회장과 박상권 회장에 의해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1991년 12월 평북 정주의 생가와 고향마을을 찾은 문 총재 내외가 고향에 사는 가족과 일가친척들을 만난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통일교 대북 사업의 산 증인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
     
잘 알려진 대로 평화자동차 박상권(朴商權) 명예회장(이하 회장)은 

대북기업인 평화자동차 그룹의 대표이자 거기 딸린 계열사들의 총 책임자였다. 

아울러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사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사업가이자 

통일교를 믿고 전파하는 종교인으로 대외에 알려지고 각인된 인물이다. 

박상권 회장은 미국 국적의 한인이면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소유하고 있는 각별한 신분을 지니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미국-북한-남한 이 세 나라를 트라이앵글로 교차왕래하거나 바쁘게 남북을 셔틀왕래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대북사업상 무려 215차례 이상을 방북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11년 8월 25일은 미국 국적의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이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처음으로 받았으며 

그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미국국적 신분으로는 박상권 회장이 최초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2012년 12월 1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거행된 박 회장의 명예시민증 수여식에는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평양시장)이 직접 수여를 했고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도 참석해 축하해 줄 정도로 그의 위상은 높았다.
    
또한 그는 과거 국방위 제1위원장 시절의 김정은 위원장을 두 차례 만난 유일한 한인이다. 

물론 두 차례 만남 모두 약 2분가량도 채 넘지 못한 짤막한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의 의미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남한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며, 

대북사업뿐 아니라 중국이나 해외를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특수한 통일교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뒤늦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례에 해당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상권 회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이하 위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12월 평양 태양궁전에 마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조문을 할 때였으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도 조문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이날 박 회장은 단독조문이 아니라 통일교세계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미국 국적인 문형진 회장(문선명 총재 7남)을 수행하는 

통일교 핵심지도부의 단체조문 형식이었다. 

문형진 회장은 문 총재 타계 이후 상징적, 공식적으로 문 총재의 통일교 후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빈소 입구에서 조문행렬에 줄을 서서 순서대로 대기하던 통일교 조문단 일행은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상주였던 김정은 위원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상견례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이때 박 회장은 슬픔에 빠진 김 위원장에게 악수와 더불어 위로 섞인 조의를 한 마디 살짝 건넸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눈인사보다는 낫지만 일대일 단독 면담이 아닌 잠시 인사 한마디 건넨 정도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자국 내 각계각층 조문객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조문객들을 며칠간 밤낮없이 맞이한 상황이라 

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 안됐고 또 실제로 빈소에서 상주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영상물을 확인하며 박 회장은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건넸고 

김 위원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사합니다”라고만 답변했다.
    
그 후 박 회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년이 지난 7.27전승절 60돌 경축 주간이 마무리 될 무렵이던 2013년 7월 30일 오전이었다. 

필자는 박 회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그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자 한다.
 

▲ 주석궁 빈소 조문과는 별도로 박상권 회장과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이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소에 조문하기 위해 조화를 운반하고 있다(2011.12.24.). 

[사진제공 - 최재영]


▲ 주석궁 빈소 조문과는 별도로 박상권 회장과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이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소에 헌화하고 있는 모습(2011.12.24.).

[사진제공 - 최재영]


김정은 위원장과 박상권 회장과의 깜짝 만남
    
필자는 2013년 평양에서 거행된 ‘7.27전승절 60돌’ 기념 행사주간에 맞춰 방북했다. 

남측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는 ‘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 행사주간이라고 보면 된다. 

27일 당일 오전은 김일성광장에서의 군사퍼레이드와 군중집회를 비롯해 오후에는 전승기념관 개관행사와 

야간축포행사 등 각종 행사들이 밤늦도록 진행됐으며 초청장을 받은 필자는 이 모든 행사를 참관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30일 낮 오전 11경에 전승기념관 정문 안쪽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수백 명의 해외동포 대표단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는 일정이 잡혔다. 

각국에서 평양을 찾아 온 수백 명의 해외동포 대표 단원들은 이날 아침 촬영 현장에 도착해 몇 시간 전부터 촬영 준비에 임했다. 

이때 박상권 회장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에 속한 필자도 그 기념촬영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해외동포들과의 단체촬영을 위해 철제 스탠드 맨 앞줄 한복판 좌석에 앉아 있었으며 

단체촬영을 모두 마친 김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곧 퇴장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맨 앞줄 우측에 도열해 있던 박상권 회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앞으로 불러내는 포즈를 취했다. 

이에 박 회장이 김 위원장을 향해 다가오고 김 위원장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성큼 성큼 가까이 다가가니 두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게 됐다. 

김 위원장은 멀쓱해 있는 박 회장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귀속 말도 주고받으며 

카메라맨들 앞에서 가볍게 포옹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장내에 있던 해외동포 대표단은 일제히 김 위원장을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를 내보냈는데

이때 김 위원장은 박수소리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정상적인 목소리로 전달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몸을 박 회장의 몸에 밀착하고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는데 아마 간단한 덕담과 인사말을 주고받는 듯 보였다.
    
북측 카메라맨들은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며 김 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제히 민첩하게 움직이며 정신없이 찍어댔으며 2분도 채 안된 짧은 이벤트성 만남이었지만 

그 장면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의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위원장과 박 회장의 깜짝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그 자리에 함께 배석했던 당시 김양건 노동당 비서였다. 

업무상 평소 박 회장과 친분이 있던 김양건 비서가 여러 가지를 배려해 김 위원장과의 상봉을 성사시킨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김정은 위원장과 박상권 회장의 깜짝 만남은 통일교와 북 최고지도부와의 밀월과 협력관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동안 통일교가 보여줬던 통일노력과 사업성과들을 각별히 기억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지금도 남측의 거대한 기독교 보수세력은 앞장서서 반북과 반공을 부르짖고 있는 사이에

통일교는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을 주창하며 ‘친공(親共)’과 ‘연공(連共)’노선으로 북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해 

통일교의 각종 기업 진출과 종교사업을 성공적으로 벌이고 있던 것이다.
 

▲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 진행된 김정은 위원장과 해외동포 대표단과의 단체기념촬영 장면(2013.7.30.). [사진제공 - 최재영]


▲ 전승절 60돌(정전협정 60주년) 행사 참가를 위해 방북한 해외동포 대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당시 통일교 박상권 회장만을 지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2013.7.30.). 

[사진제공 - 최재영]


필자와 박상권 회장과의 대화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과 해외동포 대표단과의 단체기념 촬영 행사가 무사히 끝나자 

평화자동차 박상권 명예회장을 잠시 만나 통일교 사업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들을 전반적으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김 위원장이 퇴장하고 기념촬영 행사가 모두 끝나자 박 회장을 따라 나와 

전승기념관 정문 우측에 있는 나무 그늘 밑에서 20분간 단독으로 대화를 나누며 최근의 통일교 사업 움직임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박 회장은 방금 전 김정은 위원장과의 깜짝 만남 때문에 그런지 얼굴이 매우 상기된 표정이었고 

나와의 대화 도중에도 우리 앞에 왔다 갔다 하는 동포들로부터 축하 인사말을 여기저기서 받느라 바빠다.


최 목사: 방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하 김 위원장)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나요?

박 회장: 김정은 위원장님이 ‘박 사장님은 참 뿌리 깊은 분이십니다. 

장군님 시절부터 오랫동안 한결같이 우리 조선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조국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많은 일을 같이 합니다’라고 간단히 말씀해주셨고 

저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최 목사: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고향인 평북 정주에 조성하고 있는 세계평화공원 사업은 지금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습니까?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하듯 거기를 방문하면 북측 당국도 나름대로 큰 관광수입이 생길 것이고 

통일교 측도 홍보나 포교가 잘 돼서 좋을 텐데요?

박 회장: 아. 그거는요. 언론과 일반인들이 우리들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것이 많아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우리들은 사업상 평양시내 이외에 그 어떤 곳도 사업을 벌려놓으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주에 계획한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현재 아무 것도 진척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공원부지 입구에 임시 화장실만 달랑 두 개 지어놓은 상태입니다.


최 목사: 아. 그렇습니까? 뜻밖입니다. 저는 이미 평화공원 조성사업이 모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그리고 박 회장님은 제가 알기로는 지난번에 평화자동차  대표직에서 아주 물러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는 평화자동차와 어떤 관계에 있으십니까?

박 회장: 현재 평화자동차에서의 제 공식직함은 명예회장입니다. 

제가 지금 완전히 빠지면 아직 평화자동차는 잘 안돌아갑니다. 그래도 아직은 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현재 평화자동차는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완전히 넘긴 상태이고 기술이전이나 경영방식 등 모든 것을 

북측 스스로 큰 무리 없이 잘 운영을 하는 상황입니다.


최 목사: 남북 합작으로 세운 평화자동차는 분단 상황에서 지금까지 화합과 협력이라는 상징성이 컸는데 

왜 하필 한참 돈을 버는 시기에 갑자기 회사지분을 북측에 넘겼는지 궁금합니다.

박 회장: 그것은 원래 시작할 때부터 북을 도와주라는 문선명 총재님 의도셨고 

이제 평화자동차는 합작기업이 아닌 단독기업으로서 자체적으로 사업할만한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최 목사: 그러면 이제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박 회장: 지금 보통강호텔과 안산관호텔이 우리 소유인데 거기에 안산관이라는 고급 식당이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그 식당을 크게 확장해서 식당 좌석수도 대규모로 늘리고 메뉴도 새로 개발해서 새롭게 음식사업을 크게 시작할 계획입니다. 

평화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보통강호텔 운영권도 북측에 넘기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안산관은 앞으로도 저희가 계속 운영할 계획입니다.


최 목사: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원산, 금강산, 마식령 등을 둘러보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곳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박 회장: 먼저 마식령스키장 건설은 공사 규모로 볼 때 거의 10년이 소요되는 대규모 공사로 보이더군요.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올해 안에 반드시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현재 몇 만 명의 군인들과 노동자들이 동원돼 불철주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 목사: 혹시, 박 회장님 측에서도 사업적으로 마식령스키장 건설과  연관이 있습니까?

박 회장: 저희와 마식령스키장 사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고 마식령사업 자체가 감히 우리 대북사업이 끼어들 수 있는 케이스가 아닙니다. 

이번에 북측이 군사비행장을 민영화하면서까지 관광특구에 힘을 쏟고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백두산에 있는 삼지연비행장, 칠보산에 있는 어랑비행장, 원산에 있는 갈마비행장 등 세 곳의 군사비행장이 민간용으로 바뀌면서 

이제 북녘은 개성시대와 금강산시대를 넘어 이젠 백두산시대와 칠보산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박 회장은 매우 자신감 넘치고 진솔해 보였다. 

나의 예민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언급할 때는 존칭과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눈 후에 필자가 생긴 의문점 중에 하나는 정주에 조성되는 세계평화공원 문제였다. 

아직도 화장실만 달랑 한두 개 지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됐다.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 종교사업 추진 전략을 들여다보면 

외부에서는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됐는데 이는 기존 한국교회를 의식해서 전략상 연막작전을 펴왔던 것이다. 

통일교는 자신들의 대북 프로젝트를 모두 성사시킨 다음에 그제서야 외부에 공개하는 형식을 취해왔기 때문에 

박 회장의 이번 발언도 좀 더 연구와 검증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도중에 우리 일행들을 태우려고 정문 앞에 여러 대의 대형버스들이 도착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담당한 동포들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 김정은 위원장과의 단체기념촬영을 위해 해외동포 대표단을 운송하는 버스가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 대기한 모습. 

박 회장과 필자는 버스 부근 나무 그늘에서 통일교의 새로운 대북사업 구상에 대한 대화를 나눔. 

[사진제공 - 최재영]


▲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필자가 량정만 지배인과 함께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유통, 관광, 요식사업 등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통일교의 대북사업
      

박상권 회장은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 필자와 대화를 나눌 당시 나이를 묻자 “이제 환갑이 다 됐습니다”라고 했다. 

현재 65세 정도로 확인된 그는 통일교 대북사업의 산 증인이자 핵심 리더로서 대북사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구적인 열정도 넘쳐 대북사업의 바쁜 와중에도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틈틈이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지금까지 성남일화 구단주, 금강산국제그룹 대표, 미국 트루월드그룹 회장직 등을 두루 거친 후 

남북이 합작해 투자한 평화자동차총회사의 대표를 맡아 착공식부터 준공식 그리고 그 후 흑자경영이 되어 북이 자립할 때까지 

평화자동차를 이끌어왔다.
     
북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통일교는 대북 경영을 모두 박 회장에게 일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북을 드나들며 북 고위층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때로는 남북 간에 메신저 역할도 담당해왔다.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생존 시에는 문 총재의 생일이면 북 최고지도자가 보내는 생일선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일이 되면 통일교의 선물을 북 최고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조문 정국이 발생하면 양측을 왕래하며 조문사절의 역할도 담당해왔다.
    
박 회장은 필자와의 대화 말미에 

“이제 우리는 평양에서 새로운 글로벌기업을 시작할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만 짤막하게 알려주었으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했으나 아직은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말문을 닫았다. 

평화자동차의 지분과 보통강호텔 운영권을 북측에 넘긴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는 했지만 

모든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산업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의 단체사진 촬영 행사장에는 김정은 위원장뿐 아니라 장성택을 비롯해 

김양건, 김기남, 양형섭, 박봉주, 최태복 등 실세들이 거의 다 모여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고 

단독 촬영이 끝난 후에는 장성택이 다가와 박상권 회장에게 축하의 인사말을 간단히 건네는 것을 필자가 눈앞에서 목격했다. 

당시 장성택 부위원장은 문선명 총재가 타계했을 때 

평양에 마련된 빈소에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직접 들고 조문을 왔을 정도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그동안 대북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장성택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주로 접촉했던 인사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장성택은 처형되고 김양건은 교통사고로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에 

박 회장으로서는 대북 사업상 고위 인맥 형성에 큰 변화가 생겼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 회장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언급했듯이 요식업, 유통, 관광, 숙박 등과 연계된 관련회사를 조만간 설립할 것으로 보였는데 

조만간 평양시민들이나 북 인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마트를 건립해 유통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운을 뗐다. 

필자가 보기에 평양시민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조달하는 유통업을 해 볼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듯했다. 

또한 그는 북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역점사업으로 강조한 관광사업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도 관광분야만큼은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외화수입 사업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을 한 듯 했다.
   
이제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개성공단도 일방적으로 중단되고 사실상의 남북경협이 모두 중단된 가운데 유일하게 

북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통일교의 박상권 회장. 그는 지금도 대북사업을 통해서 

이미 타계한 통일교 설립자 문선명 총재의 유지를 몸소 실천하려는 종교적 기업인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야심찬 인물로 보였다.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북측에 상주하거나 자주 방문한다고 해서 북 최고지도자를 쉽게 만나거나 접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상권 회장은 앞으로도 통일교의 교세확장과 사업을 위해 계속해서 북 최고지도자를 자주 만나고 싶어 할 것으로 보였다.
   

▲ 문선명 총재 빈소가 마련된 평양 세계평화센터에 문 총재의 여동생과 조카 그리고 7남 문형진, 박상권 회장 등이 북측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문 총재 빈소를 찾은 장성택 부위원장이 문형진 회장에게 조의를 표한 후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문 총재 빈소를 찾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문형진에게 조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타계한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의식이 열렸다. 

문 총재에게 수여된 ‘조국통일상장’.

 [사진제공 - 최재영]


북 당국이 박상권 회장에게 명예 평양시민증을 수여한 진정한 의미
   
박상권 회장의 평양시 명예시민증에 ‘002’라고 적힌 일련번호와 함께 “조국과 민족의 융성번영을 위하여 특출한 공헌을 한 박상권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명예시민임을 증명함”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남측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북 인민보안부가 직접 발급한 이 시민증에 대해 박 회장 자신은 

“북이 명예시민증을 준 것은 지금까지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신뢰를 인정한 것이며 앞으로 좀 더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북에서 사업하라고 승인한 것입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가 명예시민증을 받은 이유는 또 있었다. 

박상권 회장이 2012년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에 넘기는 대신 

이제부터는 남북 합작 형태가 아닌 통일교만의 단독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북측 당국에 접수한 것이다.


“평화자동차가 5년 전부터 흑자가 났는데 회사가 잘 되고 이익이 날 때 운영권을 넘겨줘야 북측 당국도 좋아할 것 아닙니까? 

현재 북에 ‘외국인투자법’이 있지만, 그동안 불안함 때문에 외국인이 북에 100% 투자해 단독으로 경영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단독 경영방식으로 북에서 사업을 성공해 외국 투자자들에게 

북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와 본보기를 보여줄 것입니다.”


북 당국은 이런 박 사장의 새로운 사업구상과 대북 신뢰도와 충성도를 높이 평가해 

박 회장이 요구한 단독 사업 요청을 승인하는 차원에서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던 것이다.

“현재 북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은 자국 내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이 대부분인데 

북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남측의 성공한 기업들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면 일본과 미국의 큰 기업들도 북에 진출할 것이고 뒤따라 중국의 성공한 기업들도 북에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남측의 중견기업 200개 정도만 북에 진출해 투자사업을 하면 남북이 서로 싸울 일이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북측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고 핵문제를 포함한 근본적인 갈등도 해결돼 통일이 앞당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평양시민증을 받은 것은 통일교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워놓은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을 북측에 양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의 수고와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였으며 앞으로는 

남북 합작 형태가 아닌 단독사업을 추진하려는 박 회장에게 격려와 함께 승인을 해준다는 의미였다.


▲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위원장(평양시장)으로부터 명예 평양시민증서를 수여받은 모습(2012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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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18일, 박상권 회장에게 수여된 명예 평양시민증서. [사진제공 - 최재영]



박상권 회장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어떤 의미였나?
   

박상권 회장은 전승기념관 정문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단독으로 촬영한 기념사진을 김양건 비서 측으로부터 건네받기 위해 

7.27 기념행사주간이 다 끝난 후에도 평양에 계속 머물며 사진이 현상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서울 귀환에 앞서 드디어 8월 2일에 김양건 비서와 2시간 동안 접견을 했으며, 

그 자리에서 단체사진은 물론 자신과 김정은 위원장과 단 둘이만 찍은 단독사진 등을 전달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박 회장은 자신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남측의 각종 언론에 알렸으며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을 통해 당시 상황을 직접 말했다.


“(전승절 행사기간) 약 12일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행사가 열 가지가 있었는데요. 

저는 조금 빨리 오려고 했는데, (북측 당국자가) 이틀 더 있다 가라고 해서 더 있었는데, 

30일 날 아침에 가보니까 사진촬영을 단체로 해주는 시간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서 섰는데, 선 자리에서 저를 본 김양건 부장하고 김정은 제1비서가 저에게 손짓을 하면서 다가왔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쪽에 쫒아가서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그러려니 했는데, 기념사진을 지시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사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두 사람이 찍게 됐고, 그리고 나서 떠나고 나서, 

간부들 다 만나고 축하받고, 그러고 나왔습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해외동포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다시 박상권 회장만을 앞으로 불러내 단독 사진을 찍어 준 이벤트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볼 때 지난 선대(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대를 이어 20년 넘도록 큰 무리 없이 

왕성한 대북 사업을 해 온 통일교의 공로를 치하한 것이며 박 회장이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최초로 평양시 명예시민증도 받을 만큼 

북 최고지도부의 신뢰를 얻은 것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이런 통일교의 여러 가지 공로를 감안해 전 세계 해외동포 대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박상권 회장의 활동을 인정한 것이었다. (계속)


▲ 김양건 비서가 박상권 회장을 두 시간 동안 접견하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 김양건 비서와 향후 통일교의 대북 사업 계획을 상의하는 장면. [사진제공 - 최재영]


▲ 사진 인화 기간을 단축해 김양건 비서로부터 단독촬영 사진을 건네받은 박상권 회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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