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 씨.
이름난 설렁탕집의 깍두기 맛엔 공통점이 있다. 집에서 만든 깍두기보다 단맛이 난다.
왜 단 깍두기를 손님상에 내놓을까?
으레 ‘설렁탕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위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돼지 창자에 당면을 넣은 순대는 노동의 음식이다. 도시화·산업화가 한창 진행된 196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탄생했다.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을 책임진 돼지 족발 역시 탄생의 배경엔 애잔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
부대찌개가 미군이 먹다 남은 잔반을 요리하면서 생겼다는 ‘수치스러운 유래’는 흔히 알고 있지만
설렁탕과 순대 등 다른 음식에도 그런 슬픈 역사가 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는 만큼 맛이 있다”고 주장하는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우리 음식의 역사를 알고 싶어한다.
최근 <음식강산> 시리즈 3편(한길사)을 펴낸 그의 설명을 들으면,
숙취를 풀기 위해 먹었던 설렁탕의 구수한 맛에 애틋함이 더해진다.
일제 한우로 군용 소고기통조림 공급
부산물 활용하려 설렁탕집 늘어나
1970년대 일본 돼지고기 수입개방
수출 안되는 부산물은 족발·순대로
식재료 풍부한 남해서 태어나 자라
‘아는 만큼 맛있다’ 도서관서 ‘독학’
설렁탕과 깍두기는 일제 수탈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1920년 경성(서울)에 25군데였던 설렁탕집은 4년 뒤엔 100곳으로 늘어난다.
서민들이 쉽게 사먹을 수 없었던 설렁탕을 파는 음식점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바로 일제의 군국주의 탓이었다.
군사력을 중시한 일제는 자국 군인들을 위한 소고기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 한반도의 소를 잡았다.
농사 밑천이었던 소들이 일본 군인들의 보투(보급투쟁)용으로 도살된 것이다.
하지만 살코기를 뺀 소머리·내장·뼈·꼬리는 먹지 않았다. 이런 소의 부속물을 활용하게 되면서 설렁탕집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 무렵 일본에는 음식에 설탕을 넣는 문화가 서양으로부터 도입됐다. 설탕 소비가 많은 나라가 곧 힘있는 나라였다.
일제는 식민지에 설탕을 소개했고,
단맛을 내기 위해 엿과 꿀을 이용하던 식당에서는 설탕을 깍두기에까지 넣으며 고급 손님을 끌었다고 한다.
“설렁탕엔 우리 조상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 있어요.
소를 수탈당하고, 도살된 소의 뼈라도 먹어야 했던 그 시절의 현실이 진하게 녹아 있는 음식입니다.”
시간이 흘러 당면 순대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조선시대 순대는 상당히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전라도 쪽에서는 피를 주로 넣은 순대가,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채소를 넣은 순대가 발달했다.
일본은 1970년대 들어 자국의 육고기 소비가 늘어나자 그 전까지 수입장벽이 높았던 돼지고기를 수입자유화 품목으로 풀었다.
이에 맞춰 한국에선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이 급속히 늘어났고,
역시나 돼지머리·다리·내장과 피·껍데기·뼈 등 부산물이 넘쳐나게 됐다.
서울 등 대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에게 돼지고기 부산물은 인기있는 음식으로 가공됐다.
그렇다면 족발은 어떤 어원일까?
한자말 ‘족’(足)과 한국말 ‘발’이 합쳐진 이중어다.
일부에선 일본인들을 비하하는 ‘쪽발이’가 족발의 어원이라는 주장을 한다.
일본인들이 신는,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가르는 신발인 ‘게다’를 보고 지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쪽발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이전인 1880년 편찬된 <한불자전>에 나와요. ‘
두 개로 갈린 발’이라고 프랑스어 설명도 있는 것으로 봐서 ‘갈라진 발’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의 책에서 제주 순대인 ‘수애’(수에)를 이렇게 표현했다. ‘수애 한점을 집어 먹는다.
선지와 메밀이 섞인 수애는 진한 갈색의 겨울 대지 같다.
그 사이사이에 휘날리는 진눈깨비 같은 밥알이 고르게 박혀 있다.
짠맛이 빠진 푸아그라 같고, 단맛이 사라진 초콜릿 같은 걸쭉한 식감 뒤에 고소한 단맛이 배어 나온다.’
그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어린 시절 식재료가 풍부한 집안에서 자라며 비롯됐다.
남해의 섬소년인 그는 남해 특산 죽방멸치와 삼천포의 쥐치 같은 비린 음식에 익숙했다.
성균관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회사 등에 다녔지만 재미가 없었다.
90년대 초반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2년간 한국의 음식을 취재할 때 현지 코디네이터를 하며 수많은 음식점을 돌아봤고, 맛을 느꼈다.
대리로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올라갔던 회사를 포기하고, 음식·여행 칼럼니스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일본의 술인 사케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니가타현에 편지를 보냈어요.
한달 뒤 답장이 왔어요.
5박6일간 초청한다고. 공항에 도착하니 대형 승용차에, 통역, 사케 전문가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는 평소 아침마다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묻혀 있는 우리 음식의 역사를 캐내기 위해서다.
<조선왕조실록>도 읽는다.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음식문화사를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 ‘맛집’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그만의 비법이 궁금했다. 답은 명료했다.
“메뉴가 간단해야 합니다. 육해공군 다 취급하는 식당은 맛집이기 어렵습니다.
음식점 냄새가 좋아야 합니다. 냄새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청결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손님이 줄 서서 기다리는 집은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는 지역 택시기사들의 입맛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배고플 때, 빠른 시간에 부담없이 먹을 만한 집을 주로 찾는 기사들이니, 식도락가의 입맛을 충족시켜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부를 때도 맛이 있는 음식이 진정한 고수의 음식”이라고 말하는 박씨는 한국의 식당 판도가 빠른 시간 안에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고교 졸업하고, 곧바로 요리사 길로 들어서서, 외국의 최고급 음식점 셰프를 지낸 30대 초반의 요리사들이 귀국해 음식점을 차리고 있어요.
이들은 한식에 기초하지만 전혀 새로운 음식을 창조합니다. 그들이 식도락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겁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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