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부평지킴이]
3대를 이어가는 중국집 산곡3동 ‘태화루’, 당덕온ㆍ홍금자 부부
서울 이태원을 거쳐 일본 요코하마에서 3년을 보낸 뒤 다시 인천으로 와서 중국집을 낸 게 어느덧 만 30년이 넘었다.
부평구 산곡3동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 '태화루', 이집 주인장 당덕온(61)씨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 30년 지킴이 당덕온ㆍ홍금자 부부
서울에서 요코하마 찍고, 인천에 이르기까지 3대를 이어가는 중국집 ‘태화루’의 당덕온·홍금자 부부.
부평에서만 태화루는 30년일 됐다. 이제는 부부의 아들이 태화루를 이을 참 이다.
산동이 고향인 아버지한테서 배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 한 쪽에 붉은색 바탕에 노란글씨로 '鴻圓大展(홍원대전)'이라고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홍원대전은 우리말로 '부자 되세요'라는 뜻이란다.
당덕온씨의 화교 친구들이 당씨가 개업하고 나서 90년대 중반에 선물해준 거라고 했다.
당씨는 "아버지 고향이 중국 산동인데 군인이었다고 했다. 군인을 그만두고 일제말기(=1942년 무렵) 한국에 들어왔다.
나는 서울 고척동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 아버지는 중국집을 하면서 농사도 짓고 그랬다.
일하다가 손님 오면 식당가서 요리하고 그랬던 시절이다.
내가 열일곱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무렵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흔 무렵 돌아가시자 당씨는 종로3가 '삼품상가'에 있었던 중화식당 '아서원'에 취직했다.
당씨는 그곳에서 나름의 요리 실력을 인정받아 1974년 요코하마에 있는 중화식당 일자리를 소개 받았고,
요코하마에서 3년 동안 머물며 일본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했다.
당씨는 "계약기간이 3년 정도였는데 그때 나름 돈 좀 벌었던 것 같다. 요코하마의 중화식당은 '낙어루'였고,
일본 TV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다. 요즘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 같은 거였다"고 당시를 전했다.
산곡동과 함께 변화해 온 태화루
77년 무렵 다시 한국에 돌아온 당씨는 전에 다니던 중화식당에서 1년여를 다시 일하다 79년 인천으로 내려온다.
계산동에 첫 둥지를 튼 뒤 80년 2월 산곡3동으로 올 때까지 1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인천에 내려와 부인 홍금자(56)씨를 만나 결혼했고, 첫 딸을 얻은 지 채 한 달도 안 돼 '태화루'라는 지금의 중화식당을 열었다.
태화루가 있는 산곡3동은 당시 비만 오면 장화 없인 못 다니는 동네였다.
부락은 현재 천주교 산곡3동을 중심으로 형성돼있었고, 부평을 오가는 버스는 18번 버스가 유일했는데
그 버스를 타려면 현재 산곡동에 있는 6보급창 기지에서 버스를 타고, 화랑농장길을 통해 부평역을 오갈 때였다.
그 주변은 군부대로 둘러싸여 있었다.
당씨는 "산곡동 주변에 군부대가 많고, 마을은 부평과 떨어져 있는 터라 내가 첫 중국집을 내면 손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현대1·2·3차 아파트로 바뀐 곳은 9공수부대가 있었고, 부영공원은 포병부대가 있었고,
6보급창과 화학부대는 지금도 그대로고, 현 한양저층아파트는 5공수부대,
거기에 미군까지 있었으니 식당은 군인들로 넘쳐났다"고 말했다.
당시 훈련을 마치거나, 휴가를 나갔다가 돌아온 군 장병들이 태화루를 즐겨 찾았다.
예나지금이나 중국집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역시 자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이다.
그 때 군에 몸담고 있으면서 태화루의 입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옛 맛을 추억하기 위해 태화루를 찾고 있다.
▲ 40년 손길 태화루에서만 30년이지만 요코하마와 서울에서 일했던 기간을 더하면 40년 세월이다.
볶음밥을 만드는 당덕온 씨의 손길이 불위에서 춤을 춘다
물론 군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인 홍씨는 "이동네 사람들이 서울 청계천 주변 개발하면서 이 동네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이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더 많지만, 당시에는 동네 골목골목이 애들로 넘쳤다.
아이들이 어린이날이나 졸업식 때 즐겨 찾는 게 지금은 피자 등이지만 그 때는 단연 '자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얘기도 이젠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태화루 역시 군부대가 떠나면서 찾아든 변화와 궤를 같이 했다.
군인들이 떠나자 태화루 손님은 아파트 건설 공사를 위해 일하던 건설노동자들이 주를 이뤘고,
아파트 공사가 끝나자 이제는 산곡3동 일대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이 태화루를 즐겨 이용하고 있다.
자장면은 다시 '아버지에서 아들로'
30년을 넘게 중화식당을 운영하면서 당씨는 자신의 요리를 전수해준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그 한 사람도 당씨의 아들 당광요(35)씨인 것을 보면 그의 요리에 대한 고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당씨가 아들 이외에 사람들에게 전수를 해주지 않았다는 얘기는 주방을 다른 사람에게 안 맡겼다는 얘기다.
이유인즉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배우게 하면 태화루에 온 손님들이 자신의 손맛과 입맛을 기억하고 있어서 오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맛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
당씨는 "전에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어서 잠시 아들에게 주방을 맡겼는데,
아들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손님들이 찾아와선 주방을 먼저 봤다는 겁니다.
제가 있는지 없는지 봤던 것"이라고 한 뒤
"지금도 외지에서 맛을 기억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주방은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 오리지널 짬뽕 흰짬뽕은 우리가 흔히 중국집에서 먹는 짬뽕과 국물색과 국물 맛이 확연히 다르다.
국물이 다르니 담겨 있는 면발이 혀에 감기는 맛도 다르다.
흰짬뽕을 먹을까 일반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다 동료를 데러가 둘다 시켰는데, 둘다 맛이 제법이다.
▲ 일반짬뽕 짬뽕 한 그릇. 우리가 흔히 먹는 짬뽕을 흰짬봉(오리지널 짬뽕)과 구분키 위해 일반짬뽕이라고 해둔다.
누구나 한번 쯤 술한잔 걸친 다음날 얼큰하고 시원 짬뽕국물을 들이키며 시원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오는 날 짬뽕 한 그릇 생각나는 장마철이다
이젠 자장면의 가격도 많이 변했다. 한 그릇 200원 하던 게 500원 800원 하더니 1000원 2000원을 거쳐 이젠 4000원에 이르렀다.
그렇게 자장면 가격이 오르는 동안 당씨의 아들도 장성해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이 됐고, 그런 아들이 이젠 대를 이으려하고 있다.
현 중화식당에서 요리하는 자장면과 짬뽕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터라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먹는 자장면과 짬뽕은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태화루를 나서는 길에 확인 차 당씨에게 물었더니,
당씨는 "자장면의 차이는 알 것 같고, 짬뽕은 우선 보기에도 색이 다르다.
먹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옛날짬뽕과 우리가 알고 있는 짬뽕을 시켜 둘의 맛의 차이를 음미하는 데 둘 다 기막히게 맛있다.
차이를 알고자하면 다른 수가 없다. 혀가 느끼는 맛의 감각을 글이 달리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뿐이다.
김갑봉(pecopress) 기자 http://school.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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