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사람에게는 왜 두 팔이 있는가?

tkaudeotk 2014. 6. 5. 05:54


베를린에서 받은 포옹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는 베를린의 거리는 아침부터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낙엽은 마치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데모대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도로의 이쪽저쪽을 제멋대로 건너다니고, 

나치시대의 전차처럼 그것들을 마구 깔아뭉개며 달리는 택시의 차창에는 주먹질이라도 하듯 

오그려 쥔 손바닥 같은 잎사귀들이 어지럽게 날아와 함부로 부딪치고 있었다. 

밤새 유레일을 타고 온 터라 몸은 찌뿌듯하고 허기진 데다 금방 비가 쏟아질 듯 눅눅한 날씨는 우리에게 너무 썰렁한 풍경이었다. 

그날이 교회에 가는 날이어서 

우리는 열차 안에서 검문하던 동독 관리의 이곳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무표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예배당을 찾아가고 있었다. 

1980년대 초였으니까 아직 동서독이 연합하기 몇 해전이었던 그때 그 도시의 분위기는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했다.

 

다행히 번지만 대면 집 찾기 쉬운 곳이어서 우리는 별로 헤맬 것도 없이 쉽게 교회를 찾아 들어갔다. 

밖에서는 평범한 건물 같았지만 안에 들어서자 꽤 큰 교회였다. 실내는 오륙백 명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었고, 

전면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에서는 바다 속처럼 차분한 음악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낯설고, 배고프고, 피곤하고, 썰렁한 분위기에 잔뜩 웅크려든 동양의 나그네들에게는 너무도 훈훈하고 감미롭고 아늑한 곳이었다.


 우선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의 로비가 시원하게 넓어 보였다. 

본당의 삼분의 일쯤이나 될 듯한 로비의 벽을 따라 수백개의 옷걸이가 있어서 사람들은 거기에 외투며 모자를 걸었다. 

그들은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로비에서 무척 반갑게 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저 악수나 하는 정도가 아니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로 끌어안고 허그(hug:포옹)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 식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포옹을 하고 서로 볼을 이쪽저쪽으로 마주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며 악수를 하다가 포옹을 하다가를 반복하며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동서독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 달 만에 혹은 몇 주 만에 만나는 성싶은 그들의 감동 어린 포옹이

그저 형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곁에만 서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 달이 넘게 여행을 하느라고 정장을 한 것도 아니고 면도를 할 겨를도 없어서 

산적들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우리에게도 뚱뚱한 아주머니 한 사람이 달려와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숨이 막힐 만큼 반갑게 포옹을 해 주었다. 
난생 처음으로 낯선 이국에서 처음 만나는 서양 아주머니에게서 
따뜻한 포옹을 받아 본 것은 얼떨떨하면서도
 매우감동적인 추억이 되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허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우리는 얼굴 표정도, 감정 표현도 너무 많이 굳어 있는 나라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료로 안아 드려요

 근래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호주의 후만 맨이라는 젊은이 이야기가 전 세계 기온을 높이고 있다.
두어 해 전부터 이 젊은이는"누구나 안아 드려요(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시드니의 피트 스트리트 몰 거리에서 있었다.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 이맛살을 찡그리는 사람, 
묘한 비웃음을 흘리는 사람,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 사람 등, 
처음에는 모두 시큰둥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포옹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수십만 명이 방문했고 
미국의 인기 방송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에 소개되어 인기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포옹 캠페인 장면의 동영상이 계속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화문이나 명동, 대학가에 슬금슬금 번져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안아주기 캠패인'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낯선 사람이지만 곧 마음이 통할 것같았다.""나도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을 더 자주 안아 주어야겠다."고들 말했다.
 물론 경박하다느니 선정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더구나 우리는 남녀가 유별하고 공개적인 애정표현을 금기시하는 유교 문화에 오래 젖어 온나라여서 
아직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긋"하던 것을 
공개적인 애정표현의 한계선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안아 주면 건강해져요

 오래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어느 지역에 고아원 두 곳이 있었다.
매우 이상한 일은 한 곳의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계속 병이 들고 사망자가 늘어나는데 
똑같은 조건으로 보살피는 이웃의 고아원 아이들은 살이 통통하고 건강하며 거의 사망자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정부에서 전문가를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그 결과 다른 모든 조건은 똑같은데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사망자가 거의 없는 고아원에는 자기 아이를 잃고 약간의 정신 이상을 보이는 젊은 엄마 한 사람이 
시도때도 없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품에 안아 주고 얼러 주고 하는 것이었다.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뒀던 것이다. 
전문가가 그 점에 착안하여 실험을 했다. 그 후 아이들에게 포옹을 하고 미소를 지어 주고 
신체접촉을 하면 훨씬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한 고아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4주 동안 매주 5일 이상 그리고 하루 15분씩 아이들을 포옹해 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얼러 주고 눈맞춤을 하게 했다. 
그결과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신장과 머리둘레의 성장이 안아 주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신체접촉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외국의 몇몇 대형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사 교육과정에 포옹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한 곳도 있다고 한다. 
간호하는 사람이 환자를 포옹해 주었을 때 환자의 통증, 우울증, 불안감 등을 경감시키고 삶의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알츠하이머 같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자주 포옹을 해 주면 불안, 초조, 발성, 보행능력이 개선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삶을 시작한 아기들을 자주 안아 주면 성장이 촉진된다는 보고도 있다. 
부모와 신체접촉을 많이 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지능발달도 빠르다는 보고도 있다. 
아침 출근길에 가족과 따뜻한 포옹을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업무 능력도 향상되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도 훨씬 높다고 한다.

 미국의 한 연합교회 여성 목사인 패트 튜랙은 회중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당신은 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팔을 두 개씩이나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고는 이렇게 자답(自答)한다. "그것은 별로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안아 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포옹은 아무 공해도 남기지 않으면서 긴장을 완화하고, 
혈액순환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면서도 충전해야 할 배터리도 필요 없고, 세금을 더 내야 할 부담도 없으며 
주는 만큼 꼭 돌려받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포옹을 하면 아무리 깊은 상처도 치료됩니다."

팔을 벌리고 마중 나오시는 하나님

 성경을 읽다 보면 가장 진실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뜨거운 포옹과 입맞춤이 늘 곁들여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예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기근 때문에 양식을 사러 온 이복형들 
즉, 자신을 미워한 나머지 죽이려고 구덩이에 처넣었다가 끝내는 애굽의 노예로 팔아먹은 그들을 부여잡고 울었다(창세기 45장 15절). 
한 사람은 왕자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 왕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였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절친했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도(사무엘상 20장 41절), 
유대인 시어머니와 이방인 며느리이면서도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묻히겠다"고 나서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에서도(룻기 1장 9절) 
이런 포옹과 입맞춤은 계속된다.

 그리고 어떤 장면보다도 더 가슴이 뭉클한 장면은 집을 나가 방탕하던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먼 동구 밖에 나타난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가 부자가 포옹하는 장면이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장 20절).

 그리스도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곁길로 가는 사람들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의 이 같은 용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합친 결정체(아가페)이기 때문이다. 
한 성경 주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서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그는 멀리까지 나와서 그대를 영접하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그분을 향해 한 걸음만 내디딘다 해도 그분은 재빨리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그대를 안아 영접하실 것이다. 
그분의 귀는 통회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 열려 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싹트는 그 순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신다. 
기도가 아무리 더듬거리고 눈물을 아무리 은밀하게 흘릴지라도 그분은 아시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마중 나가지 않으시는 때는 없다."(엘렌 G. 화잇, 실물교훈, 206)
 십자가 위에서 있는 대로 팔을 벌리고 매달려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땅의 고통당하고 상처받은 모든 사람을 가슴에 안으려고 변함없이 기다리는 몸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해보십시오

 버스카글리아는 이렇게 제안한다.
"나는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러움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어루만지고, 안아 주고, 상대에게 미소 짓고,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를 돌보는 것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 누구든 나를 껴안고 싶으면 마음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나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고 다시 우리를 묶어줄 수 있다면 종일이라도 이곳에 서 있겠습니다.
포옹은 좋은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한번 해보십시오."
새해 새 아침 정다운 가족들의 따뜻한 포옹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면 한 해 내내 좋은 일이 가득한 가정이 될 것이다.
 
 전정권
본사 편집국장(editor@sijosa.com)    http://www.8healthpla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