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만명,페이스북 친구 4천명. 2명의 파워 블로거 일상을 들여다봤다.
'파워 블로거'라는 이름을 두고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
패션, 뷰티 프로그램의 현장 스케치를 하러 갔을 때였다.
제작사 대표가 난데없이 파워 블로거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대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솔직히 기자 입장에서 블로거는 부담스럽다.
"보통 파워 블로거가 아니에요.
그분 한마디는 다른 파워 블로거랑 차원이 달라."
어찌저찌 떫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곧 다른 파워 블로거들이 찾아와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신선했다.
녹화가 시작될 때 즈음, 지정석이 없음에도 파워 블로거들의 자리는 그녀를 중심으로 홍해처럼 갈라졌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들어와 비어 있던 가운데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 앉았다.
파워 블로거들의 서열이 궁금해졌다.
회사원에서 전업 블로거로
지난 5월 28일, 롱샴의 2013 F/W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에서 파워 블로거 유진 씨를 만나기로 했다.
'패션 파워 블로거'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그녀의 이름이 같이 뜰 정도로 거대 파워 블로거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홍보 담당자들이 차례로 유진 씨 곁에 모여들었다.
"어머 유진 씨, 얼마 만이에요?"
그녀는 능숙하게 명함을 넣고 방명록을 적었다.
나도 명함을 넣고 방명록을 적었다.
패션 행사에 다닐 일이 적은 피처 에디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에디터인데 파워 블로거 앞에서 한순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홍보녀는 익숙하게 그녀를 데리고 신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유진 씨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가방을 만져보거나 맞장구를 치면서 설명을 들었다.
소개가 끝날 때쯤 홍보녀가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보신 것 중에 뭐 마음에 드는 거 있으셨어요?"
1층으로 내려와 핑거 푸드를 먹을 때쯤에야 우리는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유진 씨는 얼마 전 파리를 다녀왔다.
그녀 외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파워 블로거 3명과 같이 파리의 핫 플레이스를 섭렵했다.
에어프랑스에서 A380을 파리 노선에 새로 투입하며 한국 대표 파워 블로거 4명을 초청한 것.
"거의 VVIP급 대접을 받죠. 요즘엔 기자들과 동행해요.
회사 다닐 때는 제안이 와도 못 갔는데 회사 그만두고 내 사업 시작했다고 하니까 그런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녀는 10년 차 직장인이었다.
회사는 패션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야였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블로그로 풀었죠. 회사에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퇴근하고 행사장 갔다 와서 밤새 포스팅 올리고. 4~5년간 그렇게 병행을 했는데 결국 병이 났죠."
목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브랜드에서 간간이 요청이 왔던 블로그 홍보를 본격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어 퇴직 전부터 꼼꼼히 준비했다.
그래서 오히려 회사 그만두는 걱정보다는 취미로 즐기던 블로그를 직업으로 삼으면 흥미를 잃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다.
좋아서 쭉 해왔던 일에 새로운 명함이 생기니 아직까진 흥미롭다고.
블로그 4년 차, 구독자 수만 명이 넘는 파워 블로거 유진 씨도 처음부터 전업 블로거를 꿈꾼 건 아니다.
"싸이월드도 즐기며 했었고 이벤트 응모 같은 걸 되게 좋아했어요."
본격적인 계기는 한 잡지사의 서포터즈 활동이다.
거기서 그녀보다 먼저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던 친구들을 만나 체계적인 블로그 운영법을 배웠다.
"비교적 블로그를 뒤늦게 시작했는데 잘하는 친구들의 블로그를 보며 공부했기 때문인지 탄탄하게 실력이 쌓인 것 같아요."
블로거로서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비결로 그녀는 인증 샷을 꼽는다.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해요. 사람들은 제가 행사장에 뭘 입고 갔는지도 궁금해하거든요.
소소하게 '오늘 안경 괜찮은데 어디 거야?' 물으면 대답해 주니까 소통하는 재미가 생긴 거죠.
그래서 저는 오래된 구독자 층이 많아요. 페이스북도 시작했는데, 친구가 4천 명이 넘었어요."
연예인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관심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을까?
"제 블로그엔 악성 댓글이 안 달려요.
저를 자랑하는 게 아니고 정보를 알려주니까.
새로운 파워 블로거들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요. 오히려 친하게 지내죠."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하이톤이 됐다.
"언니~!" 그녀가 행사장 입구로 달려가 '언니'와 한참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난 아이스크림을 퍼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웨딩 매거진 편집장이에요. 두루두루 인간관계는 다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디까지 얘기했죠?" 그녀의 일상은 블로그 댓글 관리로 시작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브랜드 담당자를 만나 블로그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미팅을 하고 행사는 한두 주 단위로 스케줄을 맞춰 간다.
질투하는 파워 블로거도 있겠다는 물음에 그녀가 말했다.
"좋겠다, 부럽다 정도죠. 질투하려면 같은 등급여야지.
열심히 하는 만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 밤잠 안 자고 열심히 했거든."
인터뷰 후 그녀는 서울 컨벤션 리뉴얼 음악회를 취재하러 갔다.
"패션, 뷰티 분야가 아닌데도요?" 했더니 이건 라이프스타일 섹션이란다.
그냥 한 권의 잡지다.
추가 질문이 생겨 보낸 메일에 그녀의 답변이 온 시각은 새벽 3시 52분.
마감 중인 에디터보다 더 늦게까지 야근 중인 건 분명 맞다.
슈퍼 맘 블로거
슈퍼 맘 블로거 조윤지 씨는 블로그 3년 차다.
구독자 수가 5천여 명에 이르는 '파워 블로거'다.
블로거가 되기 전엔 그녀 역시 어떤 시간 많은 여자들이 집에서 제품 밑의 라벨까지 찍어 올리나 했었다.
'엄마'가 되면서부터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저귀만 해도 '허리가 많이 조이더라, 통기성이 좋더라' 하는 정보들이 도움 되더라고요.
그래서 블로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죠.
받기만 할 게 아니라 저도 아이들한테 좋은 걸 얘기해 보자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녀도 처음엔 동네 맛집으로 시작했다.
"콘텐츠가 차기 시작하면 블로그 홍보 대행사들이 들어와 쪽지나 메일로 제안서를 넣어요."
파워 블로거가 된 지금은 업체 사장이나 친해진 화장품 PR 담당자들에게서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다.
공식적으로는 기업체가 사이트에 올리는 체험단 이벤트에 지원한다.
지원 시 블로그 주소를 넣으면 담당자가 들어와 확인 후 코드가 맞는 블로거를 선정한다.
"광고나 마케팅이 기능적인 면을 홍보한다면, 저희는 생활하면서 느끼는 실용적인 정보를 주는 역할이에요.
기업이 블로거한테 홍보를 의뢰하고 체험단을 모집하는 이유죠.
광고로는 보여줄 수 없는 제품의 다른 측면을 홍보하는 것."
그녀의 일상은 엄마와 블로거로 나뉜다.
"아기 어린이집에 보내고 취재나 행사를 가요.
오후 3~4시 정도에 집에 들어가 아이들 챙기고 저녁 먹여서 재우고 나면 다시 블로거로 돌아가죠."
파워 블로거들은 서로를 어떻게 인정할까.
방문자는 많은데 사진이나 글이 별로면 무시당한다.
"정말 열심히들 해요. 사진, 블로그 강좌를 들으면서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죠."
블로그 지수를 내는 사이트도 있다.
신뢰성, 소통 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점수를 내는데 그 점수에 따라서 유명 블로거, 인기 블로거, 파워 블로거로 나뉘기도 한다.
파워 블로거들은 어느 정도 상업적 색깔을 띠지만 예술, 육아, 맛집, 도서 등등 각각 분야에 따라 전문적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다.
"결국 정보 싸움이에요.
얻을 게 많아야 블로거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블로거들 사이에 미묘한 권력 구도도 생겨난다.
텃세로 유명한 A 블로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블로그를 해온 덕에 많은 업체들을 끼고 있다.
업체에서 소개료를 받고 블로거를 모집하는데, 다른 블로거들이 교주 대하듯 '설설 긴다'고 한다.
주로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워 블로거가 되고픈, 욕심만 넘치는 이들이다.
"버스 대절해서 지방 가구 단지에 반나절 걸려 갔는데, 그 포스팅 대가로 손톱깎이 하나 줬다고 하더라고요.
A 블로거 본인은 업체한테 몇십, 몇백만원을 받고요.
그런데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그 사람한테 잘 보여야 다음에 좋은 포스팅 기회가 생기니까."
일단 파워 블로거로 인정받으면 그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혜택? 많죠."
조윤지 씨 역시 육아 블로거로서 톡톡히 혜택을 받았다고 인정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부담이 많은 분유부터 기저귀·물티슈는 물론, 외식 비용도 거의 들이지 않고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홍보 포스팅당 30만원의 원고료를 받기도 한다.
"제품 공짜로 받으면서 돈까지 받는다고 나쁘게 보는데 사실 불로소득이 아니에요.
제품을 써보고, 수십 가지 각도로 사진을 찍어 보정하고, 글까지 쓰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죠."
그러나 그녀 역시 일부 블로거들의 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카페나 레스토랑 가서 음식 먹고 계산서 내면서
'저 파워 블로건데 계산 어떻게 할까요?'
그런대요. 그래서 '블로거지'란 말도 있죠.
블로그라는 세계에 갇히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어디 가서 어떤 대우를 받더라도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게 오래가는 블로거들의 공통점이에요."
* EDITOR : 김소영 | PHOTO :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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