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81일 만에 도쿄에서 국장
지난 7월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27일 진행됐다.
고인이 사망한 지 81일 만에 자민당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유착 논란 속에 치러진
국장을 두고일본 사회는 찬반으로 갈라졌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는 이날 오후 2시쯤
일본 도쿄 지요다구 소재 무도관에 검은색 기모노를 입고 입장했다.
그는 자택에서부터 아베 전 총리의 유골함을 옮겨왔으며,
흰 정복을 입은 자위대원들이 이를 국화가 채워진 단상에 올렸다.
외국 정부 대표를 포함한 국내외 인사 4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이 시작됐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그의 생애를 담은 영상이 재생됐다.
아베 아키에 여사에 이어 추모사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용감한 사람”이었다며
“가슴이 끊어질 듯 슬프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총리 당신은 더 오래 살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헌정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총리지만 역사는 그 기간보다도 업적에 따라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의 외교전략에 대해 “중층적인 외교는 세계 어느 지역과도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무도관 바깥에도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외신에 따르면 수천명이 줄을 서서 아베 전 총리의 유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한때 줄이 1.4km에 달하기도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별도로 마련된 헌화대에서 헌화한 구로카와 마사에(64)는
“그는 일본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린 훌륭한 인물”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조문을 위해 홋카이도에서 온 다카모리 코지(46)는 “그는 일본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런 식으로 죽어서 충격적이다.
국장을 반대하는 이들을 반대하기 위해 이곳에 참석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통일교 유착·국세 낭비’ 반대가 더 우세한 국장
반면 시민단체 연합인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반대하는 실행위원회’는 같은 시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기시다 내각이 정권 연장을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시민에게 조의를 강요하는
헌법 위반 국장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1만5000여명이 참가했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국장에 반대하는 시민 1000여명은 이날
‘국장반대’ 등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도쿄도 지요다구 히비야 공원을 출발해 시내를 행진했다.
이들은 국장이 열리는 일본 무도관 근처에서는 “세금을 멋대로 쓰지 마라”고 외쳤다.
국장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현장은 소란스러웠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경찰이 현장을 통제해 시민 간 충돌은 없었다.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77)는 “(장례식에) 우리의 세금을 사용하는 이상 사실상 조의가 강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 여성(26)은 “아침에 회사에 컨디션이 나쁘다고 거짓말을 하고 여기에 왔다.
일하러 갈까, 시간 낭비가 아닐까 고민했지만 미력해도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나왔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날 오후 국장 시작 직전 ‘#아베씨 감사합니다’, ‘
#마지막까지 국장에 반대합니다’는 국장 찬반 의견을 각각 대표하는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아베 전 총리의 온라인 추모 사이트인 ‘디지털 국장 프로젝트’에는
“일본을 위해 일해 일본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등의 목소리가 다수 전해졌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이처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일본 사회 여론을 분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일본 국민 약 60%가 국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시다 총리는 국장을 결정한 이유로 아베 전 총리가 8년 8개월 재임한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불거진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논란, 거액의 장례 비용 등은 논란을 키웠다.
아베 전 총리에 총격을 가한 야마가미 테츠야는 자신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빠져 가정이 파탄났다며,
통일교와 정치인들이 밀접히 연관된 것에 분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일본 정치권에는 ‘통일교 게이트’가 번져 자민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와 유착 근절 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자민당 의원 거의 절반이 통일교와의 관계를 인정해,
통일교가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촉발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그의 장례식에 세금을 투입하는 데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이번 국장에는 16억엔(약 16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모될 것으로 집계됐다.
야당에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거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장례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국장을 반대하는 이들이 국장 당일인 27일까지도 곳곳에서 집회를 이어왔으며,
일부 지방법원에는 국장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도 제기됐다.
이처럼 국장에 대한 여론은 나날이 악화됐고 국장을 밀어붙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도
최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2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국장을 조문 외교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 정상은 아무도 국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완강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리시엔 룽 싱가포르 총리 등이 정상급 참석자로 자리를 지켰다.
문제는 국장 이후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라토리 히로시 호세이대 교수는
“국장을 치러 리더십을 보여주려 했으나 야당은 물론 자민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지며 실패로 돌아갔다.
지지율이 30% 이하가 되면 내각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점 또한 기시다 내각에 악재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통일교와의 관계를 끝내고, 물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기시다 총리의 인기는 더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에서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른 것은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이후 처음이다.
그는 일본의 제45·48·49·50·51대 총리를 역임했으며,
2차대전 패전국이었던 일본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총리의 장례는 1955년 창당 후 대부분 집권해온 자민당과 정부가 비용을 분담해
공동으로 거행했다고 교도통신은 설명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1993년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2003년 자민당 사무총장을 거쳐 2005년 관방장관, 2006년 총리에 임명됐다.
2007년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사임한 이후 2012년 다시 총리로 복귀했으며,
2020년 8월24일을 기점으로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다.
이로부터 나흘 뒤 건강 악화로 물러난 후 지난 7월8일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총격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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