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처 몰랐다.
해가 나이고 달이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대가 나라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사상에 나오는 말이다.
미시마 유키코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는 소년 마니와 달이 대화를 나누는 동화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마르고 쇠약한 달이 말했다.
“마니, 태양을 없애줘, 같이 있으니 너무 눈부셔.” “그건 안 돼”
“왜?” “태양을 없애면 니가 사라져 버리는 걸.
그러면 밤길 걷는 사람이 길을 잃어버리잖아.
중요한 건 니가 빛을 받아서 너는 또 누군가를 비춘다는 거야.”
늘 사람이 문제다. 사람이 틈이고, 사람이 계기다.
그 틈에서 새로운 일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새로운 계기가 생겨난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타인들. 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낯설어지고 어느새 상처를 주고 사라지는 동료, 친구, 이웃을 생각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위로만은 타인이 할 수 있다.
그들이 나에게 빛을 비춰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너에게 서운했다고. 섭섭했다고.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에서 리에와 미즈시마 젊은 부부는 홋카이도 쓰키우라에서 카페 마니를 운영한다.
맛있는 빵, 커피, 단호박 수프로 손님을 위로한다.
남자친구에게 바람맞은 사오리. 홋카이도에 평생 갇혀 지내 자신의 선로를 바꾸고 싶은 도키오,
도망간 엄마가 해주던 단호박 수프가 먹고 싶은 초등학생 미쿠,
죽음을 앞둔 아내와 함께 죽기 직전에 달을 보러온 사카모토 노부부.
이들은 리에와 미즈시마가 만들어준 빵과 커피를 먹고 마시며 제각각의 상처와 슬픔에 위안을 찾는다.
막 구운 캉파뉴, 구운 토마토와 바질을 얹은 토마토 빵, 쇼콜라, 호밀빵, 밤빵, 치즈빵.
어린 미쿠는 밤빵을 찢어서 단호박 수프에 찍어 먹으며 울면서 아빠와 껴안는다.
갓 구워낸 빵이 주는 행복감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공기 중에 퍼지는 고소하고 향긋한 빵 냄새, 손으로 만졌을 때 폭신하고 따뜻한 감촉,
입 속으로 넣었을 때 침과 함께 섞이며 혀를 자극하는 향긋한 쾌감과 달콤한 감각의 파닥거림.
빵이 주는 쾌감은 우리를 무아의 감정으로 이끈다. 마침내 아찔한 행복감으로 몸을 떨게 한다.
어쩌면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남이 아닌가 하는.
결국 낯선 타인이 아닌가 하는. 그러나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다.
함께 빵을 떼어 나눠 먹는 사람들, ‘콩파뇽’. 그것은 바로 ‘동료’라는 뜻이다.
그것이 가족의 원점이다.
내가 외면했던 타인이 어쩌면 나를 구원할 빛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빛을 받아 다시 빛을 비춰주는 존재라는 것을.
그 빛을 받아 내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새해에 생각한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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