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군중집회로 유명한 미국 기독교계의 거목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99세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몇 년간 전립선 암, 파킨슨 병 등과 싸우던 그레이엄 목사가 숨을 거뒀다”며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협회 대변인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침례교 목사인 그레이엄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전도사였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대규모 군중 설교는 물론 T
TV·라디오 등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설교를 남겼다.
심지어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 방북해 평양에서도 설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목사로선 최초였다.
유년 시절 교회를 다녔다고 회고록에 고백했던 김일성을 만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12월 15일 부산에서 설교 집회를 열었다.
당시 부산에 모인 북한 출신 피란민 가운데 많은 교인이 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6년 서울운동장 집회엔 8만여 명이 모였다.
1973년 5~6월엔 전국을 돌며 연인원 334만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저술 활동도 왕성해 30권의 책을 남겼다.
또 뉴미디어를 활용한 설교를 개척한 목사로도 유명하다고 NYT는 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 때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02년 3월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두 사람의 회동 녹음테이프에는
“유대인은 포르노물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그레이엄 목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또 그는 “내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어서 내 주변에 유대인들이 몰리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자임했다.
또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등
미국민이 곤경에 처한 현장을 직접 찾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빌리 그레이엄 목사 99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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