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닮은 모녀가 친구처럼 정다워 보이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이 애인처럼 팔짱을 낀 모습과 마주치면 저는 한동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지요.
한없이 부러운 풍경이건만, 저는 끝내 그런 풍경 속의 딸이 되지는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버지의 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아버지와 정을 낼 줄은 모르는 서먹한 딸이 저 하나만은 아니겠지요.
오늘의 손님 역시 그런 딸인 모양입니다.
그녀는 불만과 원망을 품은 채 아버지의 곁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아버지의 품이 얼마나 넓고 따스했는지를 깨닫고 뒤돌아보지만, 아버지는 등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멀어지는 아버지에게 딸의 마음을 전하고, 잃어버린 부녀의 시간을 벌충할 방법은 없을까요?
홍여사 드림
결혼식 때 눈물을 흘리는 신부를 보면 저는 남몰래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곤 합니다.
스물세 살 어린 나이에, 홀아버지를 남겨 두고 냉큼 시집을 가면서도 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거든요.
저는 아버지 눈을 피하고, 아버지는 제 눈을 피하셨죠.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믿었던 철없는 딸은, 아버지도 저처럼 속 시원해하시는 줄만 알았어요.
제가 남보다 이른 결혼을 한 데에는,
인연을 일찍 만났다는 것 말고도 그럴 만한 배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이 제게는 너무 외로웠거든요. 형제자매도 없는 외동딸인데,
그나마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헤어지고 마셨습니다.
누구에게라도 부모님의 이혼은 충격이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했습니다.
그때까지 부모님이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도 않으셨고 경제적인 문제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엄마와 헤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집에서 내몰다시피 하고, 곧 저를 데리고 이사를 해버리셨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버지와 단둘이 14년을 살았지요.
그 세월 동안 아버지는 재혼도 하지 않으시고 저 하나만 키우셨어요.
성격이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시라,
속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으셨지만 아버지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의 희생에 감사하는 딸은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린 제 눈에는 이혼도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고,
이사도 전학도 엄마를 못 만나게 하려는 목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녀 시절 내내 막연히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연락이 없었고,
그것도 다 아버지의 냉정하고 완고한 성격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수록,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저는 한 공간에서도 별 대화 없이, 서로 무관심하게 지냈습니다.
물론 외롭고 마음이 허했지만, 그럴수록 아버지한테서는 더 멀찍이 물러났습니다.
저는 늘 생각했죠.
차라리 그때 엄마를 따라갔더라면 어땠을까? 엄마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 텐데,
왜 나한테는 의견도 안 물어보고 아버지 마음대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나?
아버지한테 반항하느라 공부도 열심히 안 했고, 아버지한테서 멀어지려고 시집도 일찍 갔습니다.
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아이도 일찍 낳았고, 내 아이만은 외롭지 않게 하려고 제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혼 이후 내 신랑, 내 아이만 생각하며 십몇 년을 살았지요.
그 세월 동안 아버지에게는 딸로서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어요.
자식을 키우며 부모 마음에 대해 느낀 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미 굳어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건강하시기만 멀찍이서 바랄 뿐,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이 솟아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아무 죄책감도 없었어요. 세상에는 우리 같은 형식적인 부녀 관계가 더 많을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오늘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나온 날이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되어서입니다.
사실 저는 결혼 이후 한번 작심을 하고 엄마의 소식을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끝내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지요.
그 대신,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와 이혼 이후 엄마의 행적에 대해서요.
결론만 말하자면, 그동안 저는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은 전혀 모른 채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원망만 쌓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모든 게 아버지 탓이라는 생각도 오해였고, 엄마가 나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믿음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진실에 상처를 또 한번 받았지요.
하지만 저도 이제 딸을 키우는 엄마이고,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일이니,
나를 낳아준 엄마에 대해 새삼 원망을 갖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너무 죄송하네요. 어린 딸 하나만 바라보고 그 시간을 견디셨을 텐데,
딸이 마음의 문을 닫고 엇길로만 나가는 게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그래도 끝까지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묵묵히 참아오신 아버지의 깊은 속은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차라리 제 앞에서 엄마를 욕하고, 신세 한탄이라도 하셨더라면 아버지 속도 풀리고, 저도 오해를 풀었을 텐데요.
그러나 이렇게 마음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아버지를 대하는 저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잘해 드려야지 하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말 한마디도 다정하게 나오지를 않습니다.
아버지 역시 이미 저에게 마음을 닫으신 거 같습니다.
제가 마음먹고 전화라도 드리면, 어색해하시며 급히 끊으시려고만 하시고,
뭐라도 제가 관심을 보이면 감추시려고만 하십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습니다.
뭘 좋아하시는지, 요즘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당장 뭐가 필요하신지….
평생 냉랭하게 지내온 부녀가 뒤늦게 서로 정을 내려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시집간 딸이, 육십 대 아버지에게 해 드릴 수 있는 효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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