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신조어 쏟아내는 극단적인 2030세대
청춘들의 조난신호(SOS)일까, 극단적 사고의 방종일까,
아니면 ‘뭘 해도 안 된다’는 자기 비하일까.
‘헬조선’, ‘망한민국’, ‘지옥불반도’ 등 한국과 한민족을 혐오·비하하는 신조어가 2030세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마다 꼬리표처럼 붙기 시작한 ‘헬조선’은 ‘지옥(Hell) 같은 한국’이라는 의미다.
비슷한 의미로 ‘망한민국’(이미 망한 대한민국), ‘개한민국’(부정적 의미의 ‘개’와 ‘대한민국’의 합성어),
‘지옥불반도·불지옥반도’(지옥불 같은 한반도) 등의 표현도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해 부르던 ‘조센징’도 부활했다.
서울신문이 29일 트위터 분석 사이트인 ‘톱시’(http://topsy.com)로 조사한 결과
지난 한 달 동안 ‘헬조선’이 등장한 트윗은 4700여건에 달했다.
‘망한민국’은 2533건, ‘지옥불반도’는 1681건, ‘개한민국’은 1288건이 노출됐다.
‘헬조선’이라는 사이트도 최근 개설됐다.
이 사이트에는 청년 세대가 처한 각박한 현실이 주로 언급돼 있다.
과중한 근로시간, 수능 일변도의 주입교육, 열악한 삶의 질 등
게시판마다 우울한 자기 처지와 국가와 사회를 향한 분노, 적개심을 드러낸 글이 적지 않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망해 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페이지는 팔로어가 2만 4000명이 넘는다.
이곳 역시 공공연히 한국을 부정하는 글들로 넘친다.
이렇게 극단적인 비하 표현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일상 용어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기업 3년차 직장인 윤모(30)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표현들이 자주 오르내린다고 말한다.
윤씨는 “경직되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직장 문화 등을 성토하다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며
“우리 또래끼리는 이 나라가 참 싫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의 목표는 자유로운 사내 문화를 가진 미국 현지 기업 취직이다.
윤씨는 여름휴가를 핑계로 간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기업 취업 면접을 보기도 했다.
‘헬조선’과 ‘망한민국’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구조에 대한 적대감은
“한국인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식의 국민성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재난과 취업난 등 사회적 병폐와 불안,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원 김모(29)씨는 “취업준비생 시절부터 30회 이상 낙방하며 깊은 좌절감을 맛봤다.
세월호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절감한 정부의 무능을 보면 차라리 외국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탈조선’도 떠오르는 신조어다.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으로 가고 싶다’는 정서다.
전통적인 이민 선택지인 미국·캐나다뿐 아니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 이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2013년 미국에 어학연수를 간 조모(27·여)씨와 2011년 영국에 유학 간 정모(32)씨 모두 현지에 눌러앉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는 ‘지잡대’(지방대를 낮춰 부르는 말) 출신 서러움에
인턴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며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식의 규범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갈수록 계층·세대별 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실에서 젊은 세대들이 보내는 일종의 조난신호라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젊은이들의 국가 비하적 표현 확산이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에 대한 비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헬조선이 가리키는 대상은 국가 전반이 아니라 지금의 각박한 현실을 만든 기성세대”라고 밝혔다.
‘헬조선’ 현상이 사회를 변혁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 대신 혐오·비하에 머무는 현 2030세대의 한계를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동적인 환경에서 자란 현재의 2030세대들은 이전의 386세대만큼 사회변혁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하다”며
“젊은 세대들이 좀 더 희망을 갖고 우리 사회에서 미래 비전을 발굴하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언어 표현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회구조 속의 좌절감과 울분이 사적 폭력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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