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의 교훈
서동(恓童) 장준근
그 때는 정말 먹을 것이 없었다.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밥을 먹지 못하고 죽으로 살았다.
여름이 되자 그 죽을 끓일 낟알마져 떨어지게 되었다.
옥수수는 여물지 않았고 감자도 아직 어려서 캘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장과 묵나물로 매일같이 장국은 끓여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주변의 형편은 너나없이 비슷했는데 식구들의 끼니를 이어가려는 어머니들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여물지 않은 옥수수라도 먹어야 했다. 물만 겨우 잡혀 손으로 딸 수도 없는 알갱이들을 칼로 베어냈다.
물같이 연한 옥수수 알갱이들을 맷돌에 갈아 나물 장국에 끓여 먹었다.
밤톨만 하게 자라고 있는 감자도 먹어야 했다.
밭고랑 밑을 파서 맺힌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감자씨알을 떼어내고 싹은 다시 심어주었다.
가을 수확은 줄어들겠지만 그 감자가 없으면 식구들이 굶어죽을 판이었다.
그렇게 기근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여름날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난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왔다.
열을 식혀보려고 차가운 마루에 배를 대고 엎드렸다.
웃통을 벗어 던지고 이리 저리 옮겨가면서 배를 식혀보았으나 허사였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 껑충껑충 뛰었다.
놀란 어머니는 열이 너무 심하다며 찬 물수건으로 뜨거운 나의 가슴을 식혀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 만에 정신을 차렸을 땐 어머니와 할머니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먼 하늘에서 들리는 듯 했고 누워있던 안방은 운동장처럼 넓게 보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심각했다.
‘울지 마세요’ 한마디를 겨우 건네고 난 실성한 세상으로 다시 들어갔다.
훗날 들어보니 배가 고프다면서 벽에 바른 신문지를 찢어먹었다고 한다.
헛소리를 하며 날뛰더니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버리더란다.
작은 아버지에게 욕을 하고,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차장에게 주먹질을 하며 난리를 피웠다고도 했다.
당시 나 자신도 정상이 아니란 것은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데 속이 빈 나에겐 세상은 조금씩 어긋나 보였던 것이다.
벽에 바른 신문지가 먹을 만한 것으로 보였다.
작은 아버지는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고만 하는 못된 어른으로 보였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선 헛것을 보고 차장에게 주먹질까지 했다고 한다.
사나흘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 땐 일어설 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아버지 등에 업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죽을 줄 알았는데 돌아왔다면서 도시에 있는 병원의 기술에 놀라워했다.
당시 내 주변엔 그렇게 못 먹어 죽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그래도 동네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대부분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들처럼 배가 불룩해지는 콰시오코르(단백영양결핍증)가 병인 줄도 몰랐다.
모든 아이들이 어릴 땐 으레 배가 불룩해지면서 자라는 걸로 알았다.
그런 지독한 기근을 겪고 자란 우리들에게 먹거리는 생명과도 같다.
흰쌀밥을 맘껏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머니에겐 음식을 쉽게 버리는 며느리들의 행동들이 큰 스트레스였다.
어머니보다도 더한 어려움을 겪었을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고기반찬을 마음 놓고 드시지 못했었다.
끼니를 이어가기도 힘든 세상을 살아온 할머니에게 고기는 너무나 황송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남아서 버릴지언정 고기로 된 반찬은 손자들에게 끝까지 양보하고 싶은 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 답답하고 미련한 할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내 아들딸에게 할머니의 그런 사랑을 가르치고 싶지만
이제 그들에게 먹는 것은 가장 하찮은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일주일을 굶은 이디오피아 어린 아이가 얻어온 죽 한 그릇을 형과 함께 나누어 먹던 모습은 내게 진정한 감동이었다.
아이는 하나만 낳아야 싸우지 않아서 좋다는 충고를 뿌리치며 아들 둘을 낳은 것도 그 감동어린 장면 때문이었다.
내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배고픔과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가르치는 건 어렵더라도 끝까지 노력해볼 것이다.
내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던 그 큰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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