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원 씨는 현재 ‘잘 나가는’ 연예인이다. 매주 있는 고정 TV 프로그램의 촬영에,
간간히 다른 TV프로그램 녹화도 소화해야 하고, 광고도 찍는다.
올해 말까지 공연 스케줄도 빡빡하다. 그야말로 눈코뜰새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활동을 활발하게 해서인지 그는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있다.
얼마 전 종영된 KBS <남자의 자격>에 이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나 혼자 산다> 등,
리얼리티 방송에서 보여지는 솔직한 모습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방송에서도 소개되었지만, 그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기러기 아빠 신세다.
아들과 아내는 외국에 나가있고, 아빠를 닮아 음악생활을 시작한 딸 크리스 라오넬은
얼마 전에 귀국했으나 바쁜 아빠의 생활을 고려해서,
보다 안정적인 환경의 이모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
스타답지 않게 작은 원룸에서 홀로 지내는 그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진 않아요. 다만,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면…
글쎄요 외롭죠, 외롭기 전에 외로움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일에 열심히 파고 드는 거죠.”
그의 모습이 외롭거나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이 시대의 중년 남성들의 뒷모습이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외롭다.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달리는 것만이 권장되었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 시 당한 마지막 세대가 그들이다.
그가 출현했던 <남자의 자격>이 화제를 일으켰던 이유는
‘성인 남성’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마구 표출하고,
어른아이처럼 새로운 것에 눈을 빛내며 도전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 중년 남성들의 생생한 ‘날 감정’을 보았다.
아이처럼 웃고 떠들고 싸우고 그리고 화해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 많이 아쉬워요. (중년 남성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참 건강한 일이거든요.
감정 표현이 적을수록 남자답다는 이상한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보니 남성들은 더 외롭고 고독해집니다.
그러니 술자리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다음 세대들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도 더는 그러지 안았으면 좋겠구요.”
내성적이고 외로웠던 소년이 우울증에서 빠져 나오기까지
얼마 전 그는 방송에서 자신이 청소년 시기에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고백한 바 있다.
예민하고 외로웠던 성장과정이 청소년기의 우울증으로 발전된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어린 시절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 굉장히 외로운 아이로 살았죠.
9, 10살 나이에 벌써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어울려야 할까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보니 자라면서도 친구를 대할 때 온전하게 다 마음을 열지 않고 솔직하지 못했어요.
그 버릇이 남아서 지금도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다 터 놓지는 못해요.”
지금이야, 그런 자신의 성격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오랜 사귐의 발판으로 활용할 만큼 어른이 되었지만,
청소년기의 그에게는 그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외로움을 토로할 창구가 되어준 것은 결국 음악이었다.
청소년기의 그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시키는 사람보다 타인에게 맞춰주는 사람으로 자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쌓아만 두던 것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결국 병이 되었다.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사람 만나는 것을 피했다. 대신 미친 듯이 음악에만 빠져들었다.
그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룹 부활을 결성하고 1,2집 앨범을 발표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그의 우울증이 음악활동을 위한 토대이자 양분이 되어 준 셈이기도 하다.
그의 우울한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당시의 음악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지금 와서 부활 1,2집 음악을 다시 들어보면 그렇게 우울하고 염세적일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천국에서’같은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편곡한 거에요.
겨우 23살짜리 청년이 뭐가 그렇게 슬퍼서 진혼곡을 편곡했을까요?”
그런 그가 바뀐 것은(혹은 바뀌었다고 주장한 것은) 1992년 무렵이다. 다시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 늘 외로웠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말을 자주 걸었어요.
이걸 하자, 저건 하지 말자, 기쁘다, 슬프다 혹은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등 끊임없이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더라고요.
다시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았죠. 그랬더니 전혀 다른 관점이 생기더군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혼잣말에 불과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자 자신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변을 지켜주는 친구, 동료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1993년 발표된 3집 앨범 ‘사랑할수록’부터는 1,2집과 달리 우울하고 염세적인 색조가 지워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멜로디는 슬플지라도 그 사이에 나름대로의 희망이 묻어났다.
지금도 그의 음악은 김태원이라는 인간 자신을 계속 투영하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그는 꽤 인기 있는 멘토다.
언젠가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비닐봉지를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동안은 고독하지 않다고도 했다.
자신과의 약속은 이제 ‘꽁초 버리지 않기’에서 ‘금연하기’로 바뀌었다.
한 달째 금연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힘들긴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자 하므로, 한 달동안 한 대도 입에 물지 않았다고 했다.
약속한 내용도 중요하지만 자신과의 약속 자체를 무겁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약속 역시 자신과의 대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청소년들에게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그 대화를 통해서 우울과 고독에서 탈출한 바기 있기 때문에 그의 충고는 그만큼 더 절실하다.
“자신과의 대화는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엉뚱할 만큼 사소한 거죠.
예를 들어 세수할 때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게 되잖아요.
그 때 물어보는 거죠, 자신에게. ‘왜 찡그리냐’고.
하교길 버스에서 내릴 때 하늘에서 추적추적 비가 온다, 저도 모르게 뛰고 있죠?
그 때 또 물어보는 겁니다.
‘안 뛰면 어때?’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무수한 것들이 대화거리입니다.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의 대화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저도 모르게 하는 행동, 누가 시켜서 하는 행동, 그저 따르는 규칙들도 하나하나 꼽으며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순간, 의미를 가지게 된다.
찾아낸 의미가 남들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행동과 규칙과 일상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그것이 다시 가치가 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내가 자살을 생각했던 순간에 나는 세상과 스스로에게 의미를 찾지 못했었어요.
아마 지금 괴로워하며 자살을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사소한 내 일상의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그 사소한 의미들이 모여 자신의 인생이 됩니다.
의미있는 인생이죠.”
그는 학업과 성적 일변도의 교육 풍조에서 줄서기를 강요 받는 학생들에게
“줄을 서되, 딴 생각은 꼭 하라”고 전한다.
어린 시절 에디슨과 아이슈타인, 모짜르트가 이 시대에 살아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 누구보다 그대가 아름답다”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사진: MBC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쳐
김태원 씨는 실제로 자살 예방 캠페인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인이 활동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선뜻 수락했던 것은 그 스스로가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서툴게 글씨도 써서 기부했다. 글 내용은 “그 누구보다 그대가 아름답다”였다.
서명을 ‘김태원’이 아닌 ‘나’라고 적었다나. 마음을 주고 받는 데에는 ‘너와 나’라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태원은 자살의 유혹을 느끼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그만의 처방으로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쪽지를 써 다니면서 서로에게 건내주자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그대가 아름답다” 라고 쓰인 쪽지를 서로에게 건내고,
그 쪽지가 돌고 도는 동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음의 위로받을 수 있게 말이다.
그러다 행여 그 쪽지가 정말 위기의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밝혀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발걸음을 돌릴 수 있게 한다면, 이 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냐고 말이다.
언제 행복하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때”라고 답했다.
그러니 실망과 슬픔이 밀려올 땐 슬픈 음악을 들으며 그 슬픔을 즐기더라도, 이내 머리를 털고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상기하자고 전한다.
그 누구보다고 내가 아름답다고 되뇌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