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20일쯤 되었을까?
한 밤 중에 남편이 방바닥을 벅벅 기며 진땀을 흘렸다. 속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아픈 것인지 그만큼 아파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런데 평소 엄살 많은 사람은 아니니 엄청나게 아픈가보다, 하며 짐작했다.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내시경을 하는데 남편 몸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았다.
난 내시경 같은 건 절대로 안 할 거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과는 십이지궤양. 의사는 남편을 불러 이런 저런 당부를 했다.
그 중에서도 담배를 끊으라는 말은 유난히 커서 밖에 있는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저렇게까지 겁을 주었으니 이젠 담배를 끊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우선해지자 남편은 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고생을 해놓고도 다시 담배를 피우다니! 이 사람 바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탈이 났다.
남편의 발병이 꼭 담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난 모든 탓을 담배로 귀결시켰다.
그렇게 못 피우게 해도 끝까지 피우더니 잘 됐다고 해야 할 지
잘못됐다고 해야할 지.
의사가 나를 불렀다.
"십이지궤양인데 저러다 암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담배가 가장 해롭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담배 피우는 걸 막아야 합니다."
난 남편이 알아서 금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데도 피워?
어떻게 그리 무책임할 수가 있어? 가족들을 조금만 생각한대도
그러지 못할 텐데 이 사람에겐 아내나 딸들이 전혀 안중에도 없는 거야.
난 남편의 고집스런 흡연이 자기만 아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나중엔 건강에 대한 걱정은 뒷전이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밉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담배 하나 조절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한심해 보이는 건 두말할 나위 없고.
아무리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었다.
남편은 아내 몰래 수시로 담배를 피웠고 내 코는 증거를잡아 내기 위해 늘 벌름거렸다.
난 몇 시간 전에 피운 담배 흔적도 귀신같이 잡아 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는 급 냉각되었고 두 딸들은 엄마 아빠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15년쯤 살았을까.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남편의 흡연 때문에 수시로 냉랭해지는 가정 분위기가 싫었고
담배를 못 끊는 남편보다 그것에 얽매어 있는 내 자신이 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 놓자. 할 만큼 했어. 몸에 좋다는 건 이것저것 잘 챙겨 주었고
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이젠 그만 두자.
설령 담배 때문에 남편이 잘못된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이 말은 흡연에 대해 참견하지 않는 대신 건강을 위해 특별히 챙겼던 것들도 그만 하겠다는 뜻이다.)
작정하고 남편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남편의 건강을 포기하겠어.
앞으로는 담배에 관해 간섭하지 않을 테니 피우든 말든 알아서 해."
남편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심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남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그 날 이후, 담배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부부싸움의 90%는 담배 때문이었다고 할 만큼 남편의 흡연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다.
남편의 건강이걱정되어 시작한 잔소리와 책망은 원망과 미움으로 변했고
마침내 남편의 흡연은 가정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원흉이 되었었다.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좀 더 빨리 마음을 비우지 않았을까.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도 안 되는 부분, 고쳐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더 빨리 내려놓지 않았을까.
어차피 본인 의지 없이는 할 수 없는 게 금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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