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함께 살자던 약속과 함께 인생의 숙제하는 모범생처럼 열심히 열심히 앞만 보고 왔지요.
당신은 아빠, 남편, 목회자로. 나는 엄마, 아내, 사모로.
숙제를 너무 잘하여 행복, 축복이란 상을 타기 위한 듯 참 열심히 살아 왔는데 하나님의 시험인가 아니면 화가 나셨나?
사단의 심술인가?
단지 개척교회의 힘겨움과 스트레스가 당신을 지치게 하는구나 생각할 즈음 갑작스런 당신의 하혈이 시작됐지요.
남자가 왜? 생리해??!! 농을 던지며 아니 쌩뚱맞게 이게 무슨 일이람 싶었는데 다음날 병원검사 그리고 암,
다시 대장암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혈 한번으로 머리는 암 한마디에 텅 비어버려 버렸지.
하염없이 눈물만 나는데 무슨 숙제인지 주제파악도 할 겨를 없이 연이어 닥치는 수술,
항암 6개월, 6개월 경구용 투약, 대장암 3기말.
정신을 차려보니 난치병중 난치병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병!
허나, 세상 누구하나 제대로 알고 치료하는 사람이 없는 병이라네.
치료받으며 2년 여 지나니 이제야 숙제의 주제를 파악한 정도네요.
그러나 병원검사 결과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망과 혼란이 계속되는군요.
그런데 이제야 뒤를 돌아보니 제일 힘겨웠던 건 당신과 나,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
그 사이에서 오고가는 섭섭함이 내겐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쉽지 않군요.
암이란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이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데 갑을박론하고 싶지도 않고,
‘넌 안아프니까’ 란 자를 들이대면서
스스로 다른 이들에게 섭섭함을 쌓게 되는 힘없는 내 모습.
우리의 울타리였고 든든한 지킴이였던 당신이 사소한 일에 화내고 삐지고 섭섭해 하면
거기에 쪼그라드는 내 가슴, 상처받는 아이들...
어떻게든 길을 찾으려다보니 의학적 검증이 적은 자연요법과 식품에 정성을 쏟게 되는 데
당신의 거부와 오해가 잇따르고
설득을 위해 나는 새벽이 훤하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를 했었지요.
책, 컴퓨터, 공부로 당신을 붙잡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하고 때론 협박하기도 했었네요.
그때 딱 잘라 싫다던 당신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당신은 아실까요.
선하게 성실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막상 병 앞에서는 ‘돈’이 제일 우선이더군요.
그리 암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한결같이 비싼지
타고난 부자가 아니면 없는 사람은 죽는 병이구나 하면서 무너지는 자괴감이라니.
삭이고 삭인 깊은 울음의 기도 속에 얻은 깨달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잃고 잊고 있었던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였죠.
소녀시절 소설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을 꿈꾸고,
당신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만큼 살아와 뒤를 보니 그 처음과 달리 우리가 너무나도 변해 있었어요.
무조건 이해되고 아끼고 지지하던 첫 마음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따져보고 손해가 나지 않을지 손가락을 꼽아볼만큼 못돼져 있더군요.
아, 바로 내가 처음 당신을 사랑하던 그때를 회복해야 하는구나 우리가 함께 처음사랑을 회복하면
최고의 치료 명약이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맹목적인 지지와 이해, 사랑 이것입니다.
이제는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당신을 후회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와 목적이 되었네요.
결혼 주례사 중 ‘즐거울 때나 슬플 때 아플 때나 힘들 때 함께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함께 잘 살기를’
이건 정말 가장 흔하면서도 진리가 되는 권면입니다.
여보, 나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당신과 당신의 암과 함께 살고 싶어. 너무 간절하게 바래.
당신의 알리사로, 소올 메이트가 되어.
여보, 기대가 되요. 미래의 당신과 나 아주 천천히 삶의 길을 가고 있을 우리의 노년의 모습이요.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려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아픈 다리 기대며 쉬었다가는 노인된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이렇게 맘 설레게 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빨리 할머니 할아버지 되고 싶지 그치? 여보 사랑해요.
추신: 어느 독자께서 남편의 쾌유를 빌며 월간암으로 보내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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