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역사기행 강화도 광성보 2

tkaudeotk 2019. 12. 1. 20:57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佛恩面) 덕성리(德城里)에 있는 비각

비각 안에는 신미양요(辛未洋擾)의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 어재연(魚在淵)과 

그의 아우 어재순(魚在淳) 등의 전적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198641일 강화군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어재순을 비롯한 전 수비군은 인원과 무기의 열세를 딛고 미국함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대패하여 부상자 몇 명을 제외하고 전군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각은 후에 어씨 문중에서 이들의 충절을 기려 건립한 것으로 광성보 안에 있으며 1976년 광성돈대 복원작업의 일환으로 정비, 보수되었다

해마다 음력 424일이면 어씨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쌍충비각 [雙忠碑閣] (두산백과)


이 비는 조선 고종 8(1871)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 등

조선군이 열세한 병기로 미국 아세아함대의 해군과 백병전을 벌여 모두 장렬히 순국하자 나라 위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어씨문중에서 세웠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 이하 53명의 장병은 최후의 한 명까지 포로되기를 거부하고 의연히 전사함으로써

외침에 줄기차게 항쟁하는 우리 민족의 살신호국의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쌍충비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초판 1996, 152012, 돌베개)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은 조선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광성보 내에 있다.

1871년(고종 8년) 4월 23일 신미양요 당시 광성진에서 벌어졌던 광성진 전투에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들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군은 광성보 전투에서 최후의 한 명까지도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니, 

외침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살신호국 정신을 보여준 곳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있는 강화53돈대의 하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으며 뱃사공 손돌의 전설에서 돈대의 이름을 땄다.


1679년(숙종 5)에 축조하였는데, 강화도의 다른 돈대들이 사각 모양인 것과는 달리 원 모양으로 만들었다. 

1866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서,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파괴되었던 성벽을 복원하였다. 

돈대 입구에는 서해안 지역의 북한계선 식물인 탱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손돌목돈대에서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용두돈대가 있는데, 

그 앞의 염하(강화와 김포의 경계를 이루는 수역)를 뱃사공 손돌이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고 한다. 

염하 건너편 동남쪽에 덕포진이 있는데, 덕포진 언덕 위에 손돌의 묘가 있다.

 손돌목 돈대 [孫乭─墩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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