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Bhopal) 참사
1984년 12월 2일 밤 인도 중부 마디야 프라데시 주(州) 보팔(Bhopal)시에서는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 최악의 환경재앙이 벌어졌다.
농약 제조회사인 유니언카바이드 인도 지사(UCIL)에서
유해 화학물질인 메틸 아이소사이안산(methyl isocyanate, MIC)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였다.
누출된 화학물질이 바람을 타고 주변 주거지역으로 확산하는 바람에 주민 60여만 명이 노출돼 다쳤고, 3878명이 사망했다.
또, 화학물질에 노출돼 고통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사람까지 더하면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만 5000여 명이나 됐다.
공장 주변 지역은 사고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된 상태로 버려져 있다.
살충제 원료 40t 공기 중으로
MIC는 살충제인 카바릴(세빈)의 제조에 사용되는 중간물질이다.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보팔 공장에서는 메틸아민과 포스젠(phosgene)을 반응시켜 MIC를 만들었다.
보팔 공장은 다시 MIC와 나프톨을 반응시켜 최종적으로 카바릴을 제조했다.
포스젠은 세계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로 사용되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물질이고,
MIC도 그에 못지않은 유독물질이다.
1980년대 초반 살충제 카바릴 수요가 줄었지만,
공장은 가동을 계속했고, 중간산물인 MIC가 공장에 쌓이기 시작했다.
1984년 12월에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도 포스젠이나 MIC가 누출되는 사고가 몇 차례 발생했다.
보발 공장 지하에는 액체 MIC 6만8000L씩을 저장하는 탱크가 3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물이 들어갔고, 탱크 내부의 압력이 상승하면서 MIC 가스가 유출됐다.
1984년 12월 2일 오후 11시 30분이었다.
탱크 속에는 42t의 MIC가 들어있었는데,
처음 한 시간 동안 30t이 누출됐고, 다음 한 시간 동안 10t이 더 누출됐다.
회사 측은 공장 내에는 비상 사이렌을 울렸지만, 공장 외부에 알리는 사이렌은 바로 꺼버렸다.
경찰 당국이 3일 오전 1시 25분과 오전 2시 10분에
각각 확인을 위해 전화했을 때도 회사 측은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
회사 측은 탱크에서 누출되는 MIC의 양이 가늘어진 다음인 3일 오전 2시 15분에야
주민들이 들을 수 있는 비상 사이렌을 울리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하지만 이때는 보팔 시민들이 무방비로 가스에 노출된 다음이었다.
'악마의 구름' MIC 가스는 캄캄한 한밤 중에 주변 마을을 덮쳤다.
MIC에 노출된 사람들은 기침을 하고, 호흡기가 타들어 가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이 따가워지고 눈꺼풀도 축 처졌다.
위장에 통증을 느끼고, 구토까지 했다.
심한 고통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 중에 가스 누출이란 말에 자동차를 타고 재빨리 멀리 달아난 사람도 있었다.
반면, 빨리 달아나지도 못한 사람, 그중에서도 키 작은 어린이들은 더 높은 농도에 노출됐고 희생도 그만큼 컸다.
MIC에 노출된 사람들은 결국 질식으로 숨져갔다.
부검 결과, 사망자들은 폐 손상뿐만 아니라 뇌가 부어오르기도 하고, 신장·간·대장 등이 괴사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했고, 피해자들이 나중에 낳은 아이들도 선천성 장애를 겪었다.
다우케미컬에 인수된 유니언카바이드는 5년이 지난 89년에야
배상액으로 인도 정부에 4억7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돌아간 보상금은 1인당 평균 550달러에 불과했다.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도 정부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유니언카바이드 측에서 파이프나 밸브 등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노동자들의 사보타주(업무방해) 행위가 원인이라고 맞섰다.
노동자가 탱크의 계량기를 떼 내고 호스를 연결해 물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팔 사고의 여파는 5년 뒤 한국에도 미쳤다.
바로 1989년 8월 전북 군산 임해공단에 착공한 D사의 TDI 공장으로 번진 것이다.
TDI(Toluene Diisocyanate)는 무색의 액체로 폴리우레탄 수지의 원료로
페인트·스펀지·신발·합성피혁 등에 널리 사용된다.
TDI 자체는 독성이 아주 강하지는 않은 편이다.
쥐 실험에서는 입을 통해 섭취할 경우 반수 치사량(LD50)가 체중 1㎏당 5800㎎이고,
증기 상태에서 반수 치사 농도는 ㎥당 61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TDI 제조 과정에서 맹독성인 포스젠(phosgene)이 사용된다는 점이었다.
당시 환경학자와 시민단체, 주민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공장 폐쇄를 요구했다.
주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참사 때문이기도 했다.
반면 해당 업체 측은 100% 안전하다고 맞섰다.
회사 측은 “당초 설치하려던 포스젠 저장 탱크를 모두 없애고 제조과정에
포스젠이 곧바로 투입되는 탱크만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화염병이 등장하고 주민들의 반대 가두행진까지 이어지던 1991년 9월에는
실제로 TDI의 중간산물인 TDA(2,4-Diaminotoluene) 누출사고까지 발생했다.
작업하던 노동자 1명이 얼굴 등을 다치고, 주변 농경지의 농작물이 피해를 보았다.
업체 측에서는 10억 원의 배상금을 내놓았고,
포스젠 관련 공정의 설비를 완전히 덮는 구조물을 추가로 설치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지만 보팔 참사의 축소판이 국내에서도 있었다.
바로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휴브글로벌이란 회사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다.
탱크로리에 실려 있던 불산(불화수소산)을 호스로 연결해 작업장 탱크로 옮기던 중
호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료 밸브가 열리면서 불산이 유출된 것이다.
이로 인해 휴브글로벌 작업 노동자 4명과 인근 회사 직원 1명 등 5명이 사망했고, 16명이 다쳤다.
이들 외에도 방호복도 입지 않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경찰관, 취재기자.
인근 공장 근로자, 주민, 구미시 공무원 등 400여 명이 불산에 노출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고 발생 초기에는 누출사고가 아닌 폭발사고로 알려지기도 했다.
누출된 불산 중화를 위해 소석회를 뿌려야 했지만,
소방관들은 초기 3시간 50분 동안 중화제 없이 물만 뿌려대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주민들이나 인근 업체 직원들은 대피 명령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가스 냄새를 맡고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8시 20분에야 인근 공장 2곳과 주민 등에 긴급 대피명령을 내렸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15분 후에 상황을 접수했고,
사고 후 6시간 47분이 지난 오후 9시 30분쯤에야 심각 경보를 발령했다.
자정쯤 뒤늦게 출동한 국립환경과학원 유해 화학 감시반은 28일 오전 0시 30분에 처음 오염 측정을 시작했고,
오전 3시 30분 두 번째 측정 결과가 나오자마자 ‘심각’ 단계를 해제했다.
주변 확산 지역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구미시도 오전 8시 30분 상황 종료를 선언하고, 오전 11시 대피했던 주민에게 복귀토록 했다.
심각 단계 해제 6시간 후에도 주변 지역에서불산이 1ppm이나 검출됐다.
불산 취급 작업장 허용농도 0.5ppm의 두 배였다.
불산은 주변 마을과 농경지로도 퍼졌다.
500m가량 떨어진 곳의 은행나무 묘목 1500그루가 누렇게 변했다.
수확을 앞둔 벼와 포도·사과·배 등 농경지 312㏊의 농작물이 말라죽고,
가축 1300여 마리가 호흡곤란 등을 보이는 피해를 보았다.
병원 진료를 받은 피해자는 3000명이 넘었다.
정부는 10월 8일 구미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12월 5일 231억원 9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화학물질안전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는 87건.
이 중 74건이 누출사고, 7건이 폭발이었다.
구미 불산 사고가 일어난 2012년까지만 해도 연간 화학사고 발생 건수는 20건을 밑돌았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87건, 2014년에는 105건, 2015년에는 113건까지 늘었다.
구미 불산 사고가 발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화학사고 예방에 노력했음에도
화학사고 발생 건수가 급증한 것은 그동안 신고하지 않았던 작은 화학사고,
숨겨왔던 사고까지 신고하고, 집계한 때문으로 보인다.
2016년 이후에는 화학사고 발생 건수가 100건 아래로 줄었지만,
올해도 3월까지 18건이 발생하는 등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부 개정하고
화학사고·테러 발생에 대비해 지원·연구·평가·교육을 전담하는 ‘화학물질안전원’도 환경부 산하에 설치됐다.
‘화관법’에서는 특히 유해 화학물질 영업 허가제를 도입했다.
장외 영향평가는 화학사고 발생 시 사업장 외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해
또, 사고 대비 물질을 다량 취급하는 업체에서는 5년마다 화학사고 유출시나리오, 응급조치 계획,
환경부는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거나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우려되는 화학물질 69종을 사고대비물질로 지정했다.
일단 화학 사고가 발생하면 화학물질 취급자는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구미 불산 사고 이후 모든 화학 사고에 대한 주관부처가 환경부로 일원화됐다.
사고 발생 시 지방환경청에서는 현장에 현장수습조정관을 파견하게 된다.
현장수습조정관은 부처 간 이견 조정과 필요한 자원 동원 등 사고 대응·수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이와 함께 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지역은 환경부 장관이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출처: 중앙일보] 한밤에 덮친 '악마의 가스' … 1만5000명 목숨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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