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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잔혹한 한국인? 서양인 열광 '하멜 표류기' 보니

tkaudeotk 2017. 2. 19. 20:38
구한말 한국에 대한 평가도, 묘사도 제각각…
한국인과 교류해보지 않고는 모를 ‘진짜 한국’을 보다

외국인 여행자의 필독서 <하멜 표류기>

<하멜 표류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한국이 유럽에 소개된 적이 아주 드물었다. 

한국을 처음 유럽에 소개한 사람은 16세기 후반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인 그레고리 오 드 세스뻬데스라고 알려져 있다. 

세스뻬데스는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도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의 군목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남해안의 웅천항(熊川港)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그는 이때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편지에 적어 본국으로 보냈다. 

이 편지가 1601년 <선교사들의 이야기>란 책에 실리면서, 한국을 언급한 최초의 텍스트로 알려지게 됐다.

그 후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방문해 남긴 <동방견문록>에 한국이 ‘카울리’라는 고려의 중국식 발음으로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다. 

17세기 중엽,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1655년 <새 중국 전도>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반도로 표시된 지도와 함께 한국의 역사와 지리·풍속·지하자원 등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르티니는 중국에서 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꾸며 한국을 진주와 금이 풍부한 보물섬 같은 이미지로 가공했다. 

당시 이국적인 소재에 열광하고 있던 유럽 독자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독일인 예수회 신부 아담 샬도 

1665년에 라틴어로 된 <역사적 서술>이라는 책에서 한국을 소개했다. 

그러나 아담 샬은 마르티니와 사뭇 달랐다. 

그는 직접 한국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사실 한국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한국에 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며 알고 있는 것 중에서도 아주 일부분만 번역되어 알려졌다. 

한국에 관련된 정보를 유럽의 서적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중략) 

한국의 국민과 자연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1653년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떠나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던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스페르웨르 호’가 제주도에 남파되었다. 

배에 타고 있던 64명의 선원 중에 36명이 한국 땅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의 왕(효종)이 있는 서울로 끌려가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 관습이 아니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전라도 지역에 유배되어 살게 된다.

그러나 13년 후, 하멜과 7명의 선원들은 한국을 탈출해 일본을 경유하여 고국으로 돌아간다. 

1668년에 하멜은 네덜란드에서 <하멜 표류기>를 썼는데, 

이 책이 유럽에 한국을 소개한 최초의 단행본이 된 것이다.

하멜이 이 책을 쓴 목적은 한국에 억류되었던 13년간의 일지를 적어 그동안 받지 못한 봉급을 동인도회사에게 청구하기 위해서였다. 

10년 넘게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던 하멜이 자신을 억류한 나라에 대해 객관적이고 충실한 재현을 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앞에는 생활을 연도별로 기술하고, 

뒤에는 ‘한국에 관한 기술’을 붙여 주로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기술한다.

13년간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전반부에는 제주도에 표류되어 서울로 호송되기까지 1653~54년과, 

한국인 친구를 꼬드겨(섬에서 솜을 사오면 이익을 몇 배 되갚아주겠다고) 구입한 배로 탈출에 성공하기 직전의 

1666년이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나머지 10여 년간은 몇 단락의 묘사로 그쳤다.

17세기 중반 불시에 한국에 표류하게 되어 벽안의 눈으로 한국을 기술한 점에서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그러나 뒤에 덧붙인 ‘한국에 관한 기술’을 보면, 한국인의 생활상에 대해서 가끔은 꼼꼼하게, 

또 가끔은 성의 없는 태도로 혹은 피로하고 억울한 기분으로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잔인한 형벌로 본 ‘야만의 나라’

하멜은 한국인이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농후해서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가 

“기독교도인 우리 유럽인이 부끄러울 정도로 선한 사람들”이라고 썼다.

 한국인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를 한 양 우쭐댄다”라고 했다가, 

“성품이 착하고 매우 곧이 잘 듣는 사람들이어서 원하는 대로 속여먹을 수 있다”고 쓰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연장자를 공경하고, 아이들은 밤낮으로 독서를 하며, 

어린애들이 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정말 경탄할 만하다”고 쓰는가 하면, 

“양반이나 중들은 절에서 유흥을 즐기는 무리로, 한국의 사찰은 ‘매춘굴’내지 ‘술집’과 같다”고 쓰기도 했다.

한 나라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을 테니 하멜이 비록 모순되는 묘사를 했다고 해도 

어쨌든 이 책은 하멜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진귀한 책이다. 

그런데 형벌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하멜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잔혹한 묘사를 남겼다. 

이러한 형벌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하멜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 묘사 하나만으로 한국이 얼마나 기괴하고 끔찍한 야만의 나라인지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을 죽인 아내는 많은 사람이 통행하는 한 길가에 어깨까지 땅에 묻는다. 

그녀 옆에는 나무 톱이 놓여 있는데, 여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그 나무 톱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한 번씩 목을 쳐야 한다. (중략) 

사람을 살해한 자는 이렇게 처벌된다.

즉 그들은 식초와 더럽고 구역질 나는 물로 희생된 시신을 씻고 난 뒤의 오수를 배가 찰 때까지 깔때기로 받아 마신 후, 

배가 터질 때까지 그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들겨 맞는다. 

이 나라에서 절도범은 엄중하게 처벌받지만 그럼에도 절도범이 상당히 많다. 

절도범은 보통 발바닥을 때려서 서서히 죽게 한다. 

간통을 하거나 기혼 부인을 납치한 자는 그 여인과 함께 발가벗기거나, 

때로는 얇은 속옷만 입히고 얼굴에다 석회를 칠한 채로 온 마을을 돌아다니게 한다. 

두 사람의 귀는 화살로 연결시킨다.”

<하멜 표류기>가 나온 이후, 거의 2세기 동안 한국과 서양은 단절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한국은 개항을 한 1876년경까지 서구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서양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프랑스 선교사들이 중국 국경을 통해 입국하여 몰래 포교 활동을 펼쳤을 뿐이다. 

이들은 성경을 번역했으나 한국에 관한 저서를 남기진 않았다.


1870년대, 한국에 대한 또 다른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1874년, 프랑스인 달레 신부가 프랑스어로 쓴 <한국교회사서론>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달레 신부는 한국에 와본 적이 없었고, 

한국에서 비밀리에 선교활동을 하던 다블뤼 주교가 보내준 자료들을 모아 책을 엮었다.

달레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 선교사들은 한국이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에 포교와 발각, 처형이라는 끔찍한 순환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한국을 제대로 보았을 리 없다. 

이 책에서 한국은 주로 ‘더럽고 미개하며, 풍속이 부패한’ 나라이고, 한국인은 완고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라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1882년에는 미국인 자연과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 쓴 <은자의 나라 한국>도 서구인들이 꽤 많이 읽은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그리피스도 한국을 체험하고 쓰지 않았다. 

그리피스는 1870~74년간 일본의 동경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강의했는데, 

일본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던 중 일본을 알려거든 한국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달레 신부의 책이나, 서구나 일본·중국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이용해서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한국사를 저술했다. 

머리말 뒤에 붙인 수십 종의 참고문헌들은 자신의 한국에 와보지 않고 한국사를 저술한 ‘결점’을 감추기라도 하듯 

몇 페이지에 걸쳐서 방대하게 나열되어 있다.

자연과학자로서의 수집력은 대단했으나 자료를 취합한 백과사전식 서술에 불과했고, 

책 어디에도 ‘작가’가 살아있는 듯한 숨결은 느낄 수가 없다.

19세기 말 한국을 찾은 서구의 여행자들은 이 세 권의 책(하멜과 달레 신부, 그리피스)을 즐겨 읽었다. 

필자가 앞으로 중점적으로 다룰 서구인들이 쓴 책을 보아도, 이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이전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은 하멜이었고, 

그 다음은 그리피스, 달레 신부 순으로 읽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을 찾은 서구인들은 거의 모두 이 세 권의 책들의 ‘결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멜의 결점은 한국에 직접 살았지만 그때는 200년도 더 지난 ‘옛날’이었고, 

달레 신부와 그리피스의 결점은 한국에 와보지도 않고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 결함 때문에 이 책을 대하는 서구인들의 태도는 묘했다. 

때로는 책의 내용을 신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심하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자신들이야말로 이제 한국이라는 생생한 공간으로 들어가니 

이 책들의 결점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한국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개항 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서구인들의 눈에는 이미 하멜과 달레 신부, 

그리고 그리피스의 인식의 거미줄이 쳐있는 것과 같았다. 

현지인들과 충실하게 교류하지 않는 한 그 거미줄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월간 중앙, 
글 : 박수영. 강원도 인제생.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웁살라대학 역사학과에서 현대유럽역사를 공부했다. 

1997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중편소설 <바람의 예감>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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