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법정스님과 해인사 방장 성철스님의 생전 대화 담은 ‘설전’ 출간
1973년경 현호, 법정 스님과 성철스님이 백련암 뜰 앞에서 함께 한 모습
“정말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
서른 후반에 접어든 ‘청년’ 법정이 물었다.
1967년,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 성철 스님은 12월 100일 동안의 설법에 들어갔다.
이 백일법문(百日法門)에서 법정은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져
성철의 형이상학적인 설법이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성철)
성철(1912~1993)과 법정(1932~2010)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었다.
그럼에도 둘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성철이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의 이미지를 지녔다면,
법정은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삶과 글로 큰 가르침을 줬다.
20년의 나이차이에도 생전 둘의 인연은 깊었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법정 스님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를 처음 책으로 엮은 ‘설전(雪戰)’(책읽는섬 펴냄)이 출간됐다.
‘성철 불교’의 본질을 끌어낸 법정의 지혜로운 질문과 거기에 화답하는 성철의 대답이 한데 어우러진다.
성철과 법정은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법정이 사람 목숨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세태를 걱정해 질문을 하자 성철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참다운 바른 생활을 하려면 정신이 주가 되고 물질이 종이 되어 따라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종교인들에게서 찾았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명경(明鏡), 깨끗한 거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먼지만 닦아 내면 딴 데 가서 거울을 구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습니다.
절대적인 인격, 인간의 존엄성을 복구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법정스님이 성철 큰스님을 처음 친견한 것은 1960년이었다.
팔공산 파계사 성전 앞에서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암자 둘레에 철책을 둘러치고 안거하던 시절이다.
불교 사전 편찬 일을 자문하러 운허 스님을 모시고 법정은 이곳을 찾았다.
이때 젊은 법정으게 큰 스님은 참선 수행자가 지켜야할 수칙으로 다섯 가지를 강조했다.
‘잠 많이 자지 말라, 말 많이 하지 말라, 간식하지 말라, 책 보지 말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성철 스님
진정한 수행자는 소욕으로 지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은 참선 수행자에겐 그것이 설사 부터나 조사의 가르침이라도 눈엣가시와 같다는 말이다.
스스로 탐구해서 몸소 체험하는 일만이 참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철 스님은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과격하지 않고, 후학들이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간절한 법문이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리/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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