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병맛

tkaudeotk 2016. 2. 28. 15:39

맥락이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인데,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B급 정서를 극대화하고 조롱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이가 없어 욕이 나오지만 왠지 웃음이 새어나오는 콘텐츠들도 병맛이라고 한다. 

예컨대 MBC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여장이나 기괴한 분장을 하면서 박명수를 중심으로 맥락이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코드가 바로 '병맛'이라 할 수 있다. 


병맛이라는 말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만화 연재 코너에 '무악공고'라는 누리꾼이 연재한 『정재황』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00년대 하반기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퍼진 병맛 코드는 2013년 대중문화계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보수적인 매체라 할 지상파에서도 병맛은 주요한 코드가 되었으며, 아예 대놓고 병맛물을 표방한 인터넷 드라마도 등장했다. 

2013년 매니지먼트사 '판타지오'와 드라마 제작사 '그룹 에이트'가 공동 제작해 인터넷, 

모바일에서만 방송한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이 그런 경우로,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정정화는 "보통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우리 드라마에는 '기승전병(병맛)'이 있다"고 선언했다.

병맛을 대중문화 코드로 널리 알린 일등 공신으로는 tvN의 〈SNL 코리아〉가 꼽힌다. 

최현정은, 인터넷상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부터 '병맛 코드'가 유행하고 있었지만, 

과거에는 대중문화 전면에 이런 '병맛 코드'가 드러난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면서, 

네티즌들의 향유물이었던 '병맛 코드'가 대중문화 전면에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tvN의 〈SNL 코리아〉였다고 말했다. 

"초기 시사 풍자 코미디 위주로 진행되던 〈SNL 코리아〉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본격적으로 섹시 코드와 병맛 코드를 담은 콩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SNL 코리아〉가 병맛을 널리 알렸다면 가수 싸이는 '병맛 대중화'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른바 'B급 코드'와 '병맛 코드'로 무장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병맛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선 것이다. 

병맛 콘텐츠를 10~20대가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병맛 대중화의 한 이유다. 

정석현은 "병맛 코드에는 일단 권위가 없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못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즐기는 마음에 자리잡는다"며 

"완벽하지 않은 모양새로 누구나 참여해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젊은이들과 잘 맞는 것 같다. 

기존 체제의 관념을 아예 허무는 예측불가의 특성도 장점"이라고 했다. 

잉여족의 증가에 따른 잉여 문화의 확산과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은 병맛은 "한마디로 우성학적으로 밀려난 지질한 사람들이 즐기는 자기 비하와 B급 정서가 조합된 코드"라고 정의하는데, 

그래서 병맛을 "잉여 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말꼬리를 잡는 '댓글 놀이'로 시간을 보내고, 

1차원적 개그로 가득 찬 웹툰을 보는 이른바 잉여족들의 문화가 병맛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생산자들은 자유로움과 맛깔스러움 때문에 '병맛'을 선호한다. 

〈SNL 코리아〉의 책임프로듀서 안상휘는 "사실 예측할 수 없는 결말과 전개를 보이는 새로운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다. 

섹드립이나 욕설은 수위 문제일 뿐, 지상파에서도 수위가 풀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걸 하려다보니 병맛이 〈SNL 코리아〉에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방과 후 복불복>을 연출한 정정화는 "<방과 후 복불복>에서 풍선을 타고 전 세계를 구경하는 설정이나, 

방귀에 불을 붙이는 설정 등은 정극에서 나왔으면 지탄을 받았을 것"이라며 병맛물은 "상상력에 거의 제약이 없는 장르"라고 했다.


병맛이 대중문화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병맛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엔 병맛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와 어느 정도의 선정성, 폭력성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희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병맛이 대중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병맛에 대한 '해석의 오남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명석은 2013년 9월 "최근 뭔가 싸구려스럽고 과격한 코미디만 보면 '병맛'이라고 부르는 풍조도 달갑지 않다. 

웃음 자체가 기존의 도덕과 관성을 깨뜨리는 데서 나오는데, 그런 식이면 세상에 병맛 아닌 코미디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며 

병맛의 핵심은 "'이게 무슨 병× 같은……'이라는 욕이 튀어나오는데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려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아예 병맛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병맛 코드로 인기를 끌었던 웹툰 작가 이말년은 

"병맛은 병맛으로 즐겨야지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하면 더욱 재미없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