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악취로 세계 정상 차지한 흑산 홍어 트립 어드바이저 재팬은
스웨덴 수르스트뢰밍과 함께 흑산 홍어를 세계 악취 고기 투톱으로 꼽았다.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취를 내뿜는다는 음식이 우리나라에 있다.
지난해 트립 어드바이저 재팬은
'5대 악취음식 세계지도'를 발표하면서 스웨덴의 청어 요리인 '수르스트뢰밍'과 한국의 '삭힌 홍어'를 투톱으로 꼽았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에도 청어를 두 달 동안이나 발효시킨 '수르스트뢰밍'과
'삭힌 홍어'에 대한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알싸하게 톡 쏘는 삭힌 홍어의 맛.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지독한 냄새와 함께 톡 쏘는 맛에
입이 '탁' 막히고 밀려오는 '톡' 쏘는 향기에 막힌 콧구멍이 '뻥' 뚫린다.
처음에는 그 맛에 기겁을 하고 손사래를 치지만 뒤이어 밀려오는 묘한 여운 덕분에 다시 찾게 되는 게 바로 삭힌 홍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홍어는 세종대왕에게 진상되던 귀한 생선이었다.
과거에는 전라도 사람들의 잔치 음식이나 일부 마니아층의 기호 음식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제는 팔도 어디에서나 즐겨 먹는 애호 식품이 됐으며,
요즘 들어서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요일마다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여러 나라 유학생들이 30여 명이 있는데 중국에서 온 제자들 상당수는 홍어와 낙지를 즐겨 먹는다.
그중 일부는 없어서 못 먹는 마니아층이다.
'만만한 게 홍어 X', 어떻게 유래됐을까
하지만 홍어는 전국민적 인기를 구가함과 동시에 수난을 맛보기도 한다.
만만하면 홍어 X(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타령 때문이다. 도대체 '홍어 X'가 뭘 어쨌다는 걸까.
수컷 홍어는 꼬리 양쪽에 가시처럼 노출돼 달려 있는 두 개의 생식기로 암컷과 교미한다.
정약전(丁若銓, 1760~1816) 선생은 한국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홍어를 '음탕한 고기'라 해 해음어(海淫魚)라고 적었다.
"수컷에는 흰 칼 모양의 음경(陰莖·성기)가 있고 그 밑으로 알주머니가 있다.
한국최초의 어류학자 정약전 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선생은
홍어의 습성과 요리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듯 소세하게 기록했다.
흑산도에는 자산어보 문화관이 있어 선생의 삶의 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이 장거리 항해 중 안주를 찾다가 암수구별 외에
딱히 상품 가치에 영향이 없는 홍어의 양쪽 생식기를 잘라 안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홍어 장사치들이 손님들에게 맛을 보여줄 때 비싼 홍어 대신 쓸모없는 생식기를 잘라줘서 '홍어 X'라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수컷보다 암컷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뱃사람들이 수컷이 올라오자마자 성별을 속이기 위해
생식기를 잘라내 버린 데서 '홍어 X'라는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즉 '홍어 X'는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
우리 민초들은 늘 '홍어 X'으로 대접받아왔다.
위정자들 하는 짓을 보고 민초들은 스스로 "맨맛(만만)한 것이 홍어 X이구만"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네놈들이 우리를) 별 볼 일 없는 놈 취급하는데 나(우리)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언젠가는 알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삭힌 홍어의 역사는 삼별초의 항전 때문에 시작되었다
홍어 상가 흑산도 여객선 터미널을 휘감아 돌면 20~30곳의 흑산 홍어·전복 판매점이 줄지어 있다.
홍어의 본고장 흑산도를 찾아 가보기로 했다.
목포에서 뱃길로 95km. 예전에는 사흘이 걸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하루 4회 출항하는 쾌속선으로 1시간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흑산도 여객선터미널에 내려 부둣가를 걷다 보면 홍어와 전복을 파는 가게들이 어림잡아 20~30여 곳은 줄지어 있다.
걷다가 항아리에서 숙성된 홍어를 꺼내 손질하고 있는 40대 남성을 만났다.
영광수산을 운영하고 있는 고계원(47)씨였다.
관광객들은 알맞게 숙성된 홍어 한 접시(4만 원)에 탁주 사발을 기울이며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애절하게 부른다.
"삭혀 먹는 것은 영산포식이고, 흑산 사람들은 싱싱한 선어로 바로 먹어요."
항아리 홍어는 맛이 달라! 항아리 속에서 숙성된 홍어는 식감과 맛이 다르다.
그래서 영광수산 고계원씨는 고집스럽게 항아리 홍어를 고집한다.
이것이 진품 흑산홍어 흑산도 사람들은 육지와 달리 삭히지 않은 홍어에 탁주를 함께 마신다.
전라도로 장가들기 잘했지
광주에서 여고를 나온 할머니와 부부 연을 맺은 서울토박이 안재식 할아버지의 홍어 사랑은 아내사랑 만큼 각별하다
서울에서 왔다는 안재식(76)씨와 그의 부인인 김재윤(72)씨 부부와 겸상을 하고 앉았다.
"내가 광주에서 여학교를 나와서 어려서부터 홍어 맛을 봤어요.
한번 인이 박이니 이젠 서울 토박이인 우리 집 양반도 홍어를 즐겨먹게 됐어요."
삭힌 홍어는 흑산도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육지에서 흑산도로 역수입됐다.
그러나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내놓을 뿐 정작 본인들은 입을 대지 않는다.
극명하게 갈리는 입맛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그 답은 삭힌 홍어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를 역추적하면 나온다.
고려시대 삼별초군은 대몽항전을 선포, 진도에 오랑국을 세우고 온왕(溫王)을 추대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김방경을 역적추토사(逆賊追討使)로 임명하고 진도를 고립시키기 위해
도서지역의 주민들을 전부 육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령(空島令)을 내린다.
이때 홍어 주산지인 흑산도의 부속도서 영산도 사람들을 나주의 한 포구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곳을 영산도 사람들이 사는 포구라 해 영산포라 불렀다.
지금은 영산강 하굿둑 축조로 뱃길이 막혔지만
당시 영산도 사람들은 고향에서 선어로 즐겨 먹던 홍어를 비롯해 다양한 수산물을 영산포까지 실어다 팔았다.
그런데 짧으면 3~4일에서 길면 보름을 넘는 뱃길을 오는 동안 상해서 버리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그중 지독하게 냄새만 풍길 뿐 유일하게 상하지 않은 생선이 있었는데 먹어보니 맛도 좋고 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삭힌 홍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선어 대용이 삭힌 홍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목포가 아닌 나주 영산포에서 '영산포 홍어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홍어의 메카와 메디나는 흑산도와 영산포다.
홍탁삼합, 과학적이어도 너무나 과학적인 음식궁합
미친' 조합 삼합 삭힌 홍어와 묵은지, 삶은 돼지고기가 만들어 낸 조화.
영산포와 목포식 삼합. 여기에 탁주를 곁들이면 홍탁삼합이 된다
홍어의 삼미(三味)는 오돌오돌하며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코, 잔뼈가 잘근잘근 씹히는 날개 그리고 꼬리를 꼽는다.
거기다 여린 보리 순과 함께 끓인 홍어앳국은 유배 중이었던 정약전 선생까지
"술독이 풀리고 장이 깨끗해지는 효능이 있다"고 평했을 정도니 그 맛과 효능을 짐작할 만하다.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에는
"나주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먹는데, 탁주(막걸리)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홍탁삼합'(洪濁三合)은 묵은 김치에 홍어와 비계가 붙은 삶은 돼지고기를 얹어 한입에 먹는 것을 말한다.
홍어의 찬 성질과 막걸리의 뜨거운 성질이 음식궁합을 이룰 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단백질이 유기산인 암모니아를 중화시켜 '톡' 쏘는 맛과 역한 냄새를 반감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녹아나는 과학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삭힌 홍어 요리는 고려시대 나주 영산포를 중심으로 시작돼 목포와 광주로 전해져 꽃을 피웠다.
흔히들 홍어 요리 하면 홍탁삼합만을 생각하는데 구이·국·무침·포·부침·애국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한 요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흑산도에 가서 홍탁삼합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신선한 선어회와 탁주를 마시는 '홍탁'이 흑산도 식이고, 삭힌 홍어 홍탁삼합은 목포와 영산포식이다.
홍어가 있는 잔칫상에는 식중독 없어
항아리 발효과학 우리 조상들은 항아리에 볏짚을 깔고 3~10일 동안 홍어를 발효시켰다.
항아리 속 흑산홍어 바코드가 선명하다.
전라도 잔치에서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것 없다'고 타박을 받는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홍어를 발효시키는 항아리를 크기를 통해 그 집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홍어는 물로 씻지 않는다.
지푸라기나 거즈로 '쓱쓱' 닦아내고 항아리 바닥에 지푸라기나 보릿대를 깔고 통째로 넣어서 입맛에 따라 3~10일가량 숙성시킨다.
볏짚을 까는 이유는 홍어의 수분과 결합하면 열이 발생해 발효를 촉진시키고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수분을 흡수해 육질을 단단하게 하고, 균 발효를 촉진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숙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삼베에 싸서 두엄에 묻기도 했다.
요즘은 발효를 지연시켜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한다.
깊은 바닷속 해저 면에 사는 홍어는 삼투압 조절을 위해 근육 속에 요소(尿素·urea)를 보관하고 있다.
그러다 죽으면 몸에 보관된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면서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코끝을 톡 쏘는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가끔 홍어찜을 먹다가 입천장을 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요리가 뜨겁거나 매워서가 아니라 강한 암모니아에 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듯 삭힌 홍어는 강한 알칼리성으로 살균 작용이 있어 유해 세균 증식을 억제해 식중독을 막아준다.
그래서 예로부터 '잘 익은 홍어가 있는 잔칫상에는 식중독이 없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흑산 홍어, 넌 '신분증'도 있구나
"안 사도 댕께 잡서봐!" 섬 인심은 이런 것이다.
관광객의 입에 회를 기어이 한 입 물려준다. 안 사고는 배길 수 없다.
소고기에도 한우와 국내산(육우)·수입 소고기가 있듯이 홍어도 흑산 홍어와 국내산·수입산이 있다.
사실 흑산 홍어가 비쌀 때는 3㎏ 기준 18만 원, 8㎏ 이상일 경우 70~80만 원 이상을 호가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흑산도 근해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칠레나 아르헨티나·미국·캐나다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7척의 어선이 연간 생산하는 흑산 홍어는 150~200여 톤(4만 마리).
이에 반해 수입 물량은 월평균만 해도 700~1000톤에 이른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연간 8000~1만2000톤을 수입하고 있으니 가짜 흑산 홍어가 얼마나 많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50~60마리당 1마리. 수입산 홍어 대비 흑산 홍어의 비율이다.
신안수협 흑산 위판장 관계자는
"가짜 때문에 모든 흑산 홍어는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의 적용을 받아 바코드를 부착하도록 돼 있다,
바코드가 부착되지 않았다면 100% 가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코드 번호를 신안군 누리집 또는 흑산 위판장 누리집에서 검색하면 생산일자·생산자·홍어의 크기는 물론 암수 구분도 알 수 있다.
흑산홍어 조업 중단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산란기를 맞아 금어기가 되면서 일곱 척 홍어잡이배들은 항구에서 휴식을 취한다.
홍어 썰기의 달인 홍어를 손질하던 조형자씨는 흑산홍어는 칼질하는 손맛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흑산 홍어가 '진품'인지 알고 싶다면 "바코드를 보여주세요"라고 물은 뒤 그 번호를 누리집에서 대조하면 된다.
참고로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는 산란기 금어기이기 때문에 흑산도에 가도 선어를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시기 시중에는 흑산 홍어 선어가 넘쳐나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홍어는 흑산도 근해에서만 잡히는 건 아니다.
제주도에서 시작해 부안 위도·백령도 연안까지 서해안 전역에서 잡히는 어종이다.
그러나 식감과 맛·영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회유성 어종인 홍어는 겨울철을 제주도 서남 해역에서 지내다가
날이 풀이 풀리면 산란을 위해 수심 70~80m의 흑산도 근해로 이동하면서 왕성한 식욕으로 새우·게·갯가재·오징어 등을 잡아먹는다.
또한 홍어의 서식지인 갯벌과 자갈이 섞인 사질 층에 원적외선을 내뿜는 게르마늄 황토층이 있어
센 물살과 함께 풍부하고 단단한 육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흑산 예리항에서 만난 흑산 홍어 썰기의 달인인 조형자(59)씨는
"흑산 홍어는 육질의 단단함 때문에 칼질할 때 손맛부터 다르다"며
"젓가락질에도 살이 물러지고 씹히는 맛이 느물거리는 수입산과 달리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썰어 놓으면 광택이 있다,
깊은 여운을 주는 맛이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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