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유출, 조응천·박관천 불법 입증하려…
“대통령 기록물 반출, 국가적 혼란 책임” 자가당착 논리
검찰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내용 전부를 허위로 볼 수 없다”며 해당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했던
청와대의 입장과 전면 배치되는 주장을 내놔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진행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사건’ 결심 공판에서
“정윤회 문건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된 정식 동향자료로서,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시중의 찌라시 따위를 모아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윤회 문건은 지난해 11월 세계일보 특종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문건에는 △정윤회씨를 포함한 ‘십상시’들의 정기 모임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의원을 축출하라는 정씨의 지시 △정씨의 국세청 인사개입
△“정씨를 만나려면 7억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정씨 측근 발언 등이 담겨 있었다.
정씨와 ‘문고리 3인방’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8인은
세계일보 기자 등을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1월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 결과는 ‘허위 문건’이었다.
14일 검찰의 주장은 수사 결과 발표 때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검찰은 1월 당시만 해도
“속칭 ‘찌라시’ 유통의 실상과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폄하했다.
▲ 비선 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정윤회씨. (사진=연합뉴스)
검찰 수사 결과는 청와대 입맛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찌라시(사설정보지)’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 언론(세계일보)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를 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마시고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세계일보 ‘문건팀’의 박현준 기자는 관훈저널 기고글을 통해
“박 대통령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며 “세계일보 취재팀은 이 문건을 입수한 뒤 곧바로 보도하지 않았다.
취재팀이 입수한 문건이 진짜 청와대 문건인지,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기자에 따르면, 세계일보 문건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청와대가 생산한 공식 문건인지
△문건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문건 내용은 전부 사실인지
△이런 문건이 생산된 청와대 상황은 무엇인지 등을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취재했으며,
당사자의 반론권 보장을 위해 정씨의 법률 대리인,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을 통해 반론을 요청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는 세계일보를 뒤흔들었다.
지난 2월 문건 보도 당시의 사장이었던 조한규 세계일보 전 사장이 차준영 선문대 교수로 교체됐고,
이보다 앞서 손대오 전 세계일보 회장도 김민하 평화대사협의회중앙회 명예회장으로 바뀌었다.
검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은 통일교 관련 회사를 특별 세무조사하거나 통일교 인사에 대한 수사(배임 혐의)를 진행하며 공세를 펼쳤다.
문건팀 기자 3인방 역시 보도 이후 내부 갈등 등을 이유로 지난달 퇴사 의사를 밝혔으나 경영진과 동료들의 만류로 사표를 철회했다.
검찰의 입장은 왜 바뀐 것일까.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번 검찰의 주장이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재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들의 유출 행위가 중대한 범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정윤회 문건’이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재판부에 어필할 필요성이 있다
.
이날 검찰은 “대통령 기록물 반출로 국가적 혼란의 단서를 제공한 점을 좌시할 수 없다”며
박 전 행정관에게 징역 10년을, 조 전 비서관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는데,
이 역시 정윤회 문건을 단순 찌라시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세계일보는 15일자 보도를 통해
“검찰이 14일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 수사는 종료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향후 정윤회 문건에서 거론된 내용이 새롭게 수사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법조계 내에서는 검찰이 정윤회 문건 내용을 모두 부인하려다 암초를 만난 게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검찰이 모종의 범죄 첩보를 입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 브리핑을 갖고
“이번 재판은 문건 유출에 대한 책임에 집중돼 문서의 진위, 즉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은 밝히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에 대해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지만,
이번 검찰의 발표는 청와대가 그동안 펼쳐왔던 주장과 크게 배치된다”며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법원과 검찰은 의혹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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