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옥상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흡연 공간이 마련돼 있다.
흡연실로 가는 계단에는 금연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으며,
입구에는 좌·측을 이용하라는 친절한 안내 표지가 붙어있다./마포=이철영·서재근 기자
[스포츠서울닷컴ㅣ이철영 기자]
최대 3326억원에 달하는 담배소송이 연일 화제다.
국가기관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내는 소송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다.
특히 건보공단의 수장인 김종대 이사장은 담배회사가 소비자의 건강을 등한시하고
이익만 취하고 있다며 누구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건보공단의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담배회사의 위법성 문제와 패소할 경우 공적 자금 문제 등은 물론 자칫 기획재정부와의 소송까지도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건보공단은 담배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준비는 잘되고 있을까. 법률적인 문제나 흡연과 질병이라는 데이터는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담배소송을 하겠다는 건보공단 조직은 여전히 건강에 해롭다는 흡연을 하는 중이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염리동)에 위치한 건보공단 본부에는 흡연실이 총 두 곳이다.
모두 건물 옥상에 있다.
그나마 줄어들어서 두 곳으로, 흡연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누가 피웠을까. 건보공단 직원들이 피운 것이다.
외부 흡연실은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건보공단 방문자들이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건보공단 직원들이 피운 담배꽁초들이다.
지하1층 지상 15층의 건보공단 건물에는 외부 입주사가 없다.
있다면 상담원들과 식당 지하 상가 관계자가 전부다.
건보공단 옥상에는 ‘옥상 좌·우측 흡연구역을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안내까지 하고 있다.
건보공단 옥상을 찾은 지난 13일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더러워서 끊어야겠다. 담배 피우는 게 무슨 죄냐”고 불평했다.
비단 이 직원만의 불평일까.
사실 국내의 많은 기업이 내부적으로 강력한 금연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대한항공, 금호아시아나, 포스코, 삼성, 이랜드 등이 대표적인 기업으로 금연하지 않을 경우 인사 고가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들 기업의 금연캠페인은 강력하다 못해 심할 정도이다.
그런데 정작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하겠다는 건보공단은 어떤가.
일반 기업보다도 못한 금연캠페인을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이 조직의 단합 즉, 한마음 한뜻이다.
김 이사장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지난 3일 김 이사장은 월례회의에서
“우리 1만 2700여 직원은 건강보험 역사를 바꾸는 이 일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변화와 개혁은 어렵지만, 그 과정이 지나가면 직원이 행복한 공단,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갑시다”라고
담배소송에 전 직원이 함께해줄 것을 당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건보공단 옥상에서 흡연하던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김 이사장의 ‘한마음 한뜻’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담배 소비자의 피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공단 직원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건보공단 직원이라고 해서 담배 피울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고
소송을 준비하는 주체가 여느 회사보다 못한 금연정책을 펴는 것은 왠지 모양이 사납다.
기와가 깨진다는 뜻의 ‘와해’는 조직이나 계획 따위가 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질 때 쓰는 말이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담배소송을 준비하는 건보공단과 김 이사장에게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가 아니다.
‘단생산사(團生散死)’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단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뜻이다.
건보공단은 담배소송에 앞서 이 평범한 경구를 먼저 새겨 집안을 단속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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