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두 황제 이야기 - 이주일(1940~2002)과 밥 호프(1903~2003)

tkaudeotk 2013. 12. 13. 13:34

얼마 전에 한국과 미국의 코미디 황제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다. 

국민배우라는 칭호가 아깝지않은, 전국민의사랑을받은사람들이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아니더라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던 이주일은 보통사람들의 영웅이었다. 
파란 많은 무대 인생 30년을 뒤로 하고 국회의원이 된 그는 
서민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개근하는 모범적인 의원이기도 했다.

 밥 호프(Bob Hope). 걷다가 멈춰 서면 곧 그곳이 코미디 무대였다던 그는 
연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와 칭찬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누렸다. 
오스카상 사회를 열 여섯 번이나 했고, 역대 대통령 열두 명과 골프를 쳤고, 
각종 크고 작은 상을 받았고, 명예 박사 학위에다 영국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할리우드 스타로서는 드물게 한 아내와 평생 해로했다.
 무엇보다도 이주일과 밥 호프는 국민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60 조금 넘어 타계했고 다른 사람은 100살까지 살았다.
 60이 청춘이라는 이 시대에 왜 이주일 선생은 암으로 요절했고 밥 호프는 장수했을까? 
의사로서 필자는 그런직업적 호기심을 속에 깔고 생활 방식과 암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두 황제의 다른 삶

 폐암 투병 중에 구술한 회고록에서 이주일은 암에 걸린 자신의 생활 습관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암에 걸린 세가지 요인을 이렇게 꼽는다. 
담배, 술, 스트레스. 특히 담배는 내 손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던 독약이었다.밥 호프도 한때 흡연과 음주를 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담배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담배와 술을 끊었는지, 흡연량, 주량이 얼마였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수 없다.
 
생활 습관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현대 암의 8할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의 권위 있는 암 학회들이 암 예방을 위해 강력히 추천하는 생활 습관이 있다.
 
 그러나 그가 평균치 미국인이었다면 술 권하고 담배 권하는 한국 사회의 남성(이주일)만큼 많이 피우고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주일과 밥 호프가 매우 다른 부분은 아마 그들의 스트레스와 적응 방식이었던것 같다.

이주일은 어느 TV 방송의 보도대로"자신은 울면서 타인을 웃긴 코미디언"이었다. 
그의 삶은 실패, 좌절, 불행의 연속이었다. 40에 매스컴에 비로소 이름이 나기까지 긴 무명시절 동안 설움이 많았다. 
그의 코미디는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었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위장병을 앓으셨던 아버지를 편히 모시지 못했고, 7대 독자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것을 포함해서 그의 주된 정서는 한(限)이었다. 
한. 그것이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서리서리 엉키고 굳어져서 독이 되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밥 호프는 일찍부터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에게도 시련과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못 말릴 정도로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밤무대를 끝내고 새벽 두세 시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라고 그의 딸은 회상한다.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해서 농담으로 웃어넘기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해학.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매우 성숙한 적응 방식 중 하나이다. 
청중은 복잡한 경제 불황, 전쟁, 정치, 종교의 제 문제들을 그의 낙천적인 농담 한마디에 호탕하게 웃으며 가볍게 날려 보냈다. 

그는 늙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 생일 케이크 보다 그 위의 양초 값이 더 나가는걸 보면'아, 늙어가는 구나.'라고 느끼게 되지.
"사망하기 얼마 전에 그의 아내가"죽으면 어디다 묻어 줄까?"
묻자"Surprise me!(미리 가르쳐 주지 말고 놀라게 해 봐!)"하더란다.
 
암과 생활 방식

 암은 유전인가 습관인가? 둘 다 중요하다. 
집안에 암 병력이 있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리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암에 잘 걸리거나 덜 걸리기도 한다.
지역별로 나라별로 빈발하는 암의 종류가 다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위암, 간암, 여성의 자궁경부암이 많고, 미국은 전립선암, 유방암, 대장암이 많다. 
미국에서 위암과 간암은 매우 적게 일어난다. 한국도 미국형 암들(전립선암, 유방암, 대장암)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와 경향이 생활 습관에 있다는 것을 학자들은 일찍부터 짐작했고 알고 있었다. 
선진국형 암들은 고지방 식사와 연결되어 있다. 전립선과 유방암, 대장암 역시 고지방 식사를 하면 더 쉽게 걸린다. 
육식을 주로 하는 서구의 식사는 더구나 섬유질까지 낮아 대장암을 쉽게 유발한다.

 한국에 흔한 간암은 유전과 생활 습관의 합작품이다. 
전통적으로 B형 간염 감염과 유전이 높은데다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음주문화가 발달한 사회이다 보니 
한국인의 간은 2중으로 암에 노출되어 있다.
여성의 자궁경부암은 대부분 성병의 일종인 파필로마 바이러스로 생긴다.
위암의 경우 북유럽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훈제, 염장 음식과 관련이 있다. 
미국에도 수십 년 전에는 위암이 많았으나 지금은 매우 적다. 
이는 위암이 음식뿐 아니라 헬리코박터 감염과도 연관되어 있다. 
만성위염, 위십이지장궤양, 위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라는 세균은 
위생 상태가 불결한 지역에서 감염률이 높기 때문이다.
 폐일언하고, 생활 습관 가운데 암과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습관은 흡연이다.
 미국에서 폐암은 암으로 인한 사망의 첫째 원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

스트레스- 선택인가?

 두 황제의 다른 삶의 모습에서 언급했듯이 스트레스와 그에 적응하는 방식은 몸의 건강과 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일으킨다는 고전적인 지식은,
스트레스가 몸의 면역 기능을 저하시켜 각종 질병을 위한 환경을 마련해 준다는 현대 의학과 과학의 연구로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암 발병에는 두말 할 필요없는 사실이다. 
좀 거친 예가 될지 모르나, 같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행복하고 즐거운 가운데 피우는 사람과"
스트레스 쌓여서"불행한 가운데 피우는 사람은 그 악영향의 강도가 매우 다르다. 
아무리 술담배를 안하고 건강식을 하며 몸의 건강에 신경을 써도 계속되는 정신적 압박에 시달린다면 암에 걸릴 수 있다. 
여러 다른 암 환자들의 지난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각종 스트레스를 겪었던 사람이 많다. 
행복과 즐거움은 암을 막는 최고의 요새이다.

 누구든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환경에 처할 확률이 있다. 
스트레스란 압력이요, 장력이다. 누르고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IMF, 불확실한 정치경제, 불의의 사고, 사별 …. 
이런 것들은 우리의 선택이나 능력 밖이다.

그러나 여전히 행복은 선택 사항이다. 상황의 불리하고 절망적이어도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 말하기를 평안을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한가로운 목가적 풍경이 아니라 
거센 비바람 속 바위 그늘에 쉬고 있는 새의 모습이라고 했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신앙에 귀의한다.
 신앙을 부여잡고 기도와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사람들보다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사실들도 새삼스럽게 확인되고 있다.

암을 예방하는 생활 습관

 현대 과학은 암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오늘날도 세계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거액의 돈을 들여가며 암을 정복하려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그처럼 눈부신 과학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암은 아직도 공포의 대상이다. 
생활 습관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현대 암의 8할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의 권위 있는 암 학회들이 암 예방을 위해 강력히 추천하는 생활 습관이 있다.
미국 암학회, 미국 국립 암협회, 대한 암학회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암 예방 수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절대로 흡연하지 말 것. 알코올 섭취를 줄일 것. 고지방 고단백인 육류보다는 채식을 주로 하여 식사할 것. 
적당한 운동을 할 것.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다스릴 것 등이다.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건강의 길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상한 것은 더욱 아니다. 진리는 단순하듯, 건강 습관도 단순하고 아름답다.

 세상과 사회가 복잡하고 형편이 어려울수록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병상에서 꺼져가는 숨소리로"담배 피우지 마세요.
나처럼 되지 마세요."하며 우리를 애타게 하던 위대한 보통사람 이주일 선생의 고달픈 인생역정을 보면
그 시대 평균치 한국 남성의 이야기와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바로 말한"술과 담배와 스트레스."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에서 1위인 사회와 문화의 낯익은 하나의 희생자이다. 
생전에 2,000여 개의 각종 상을 받은 밥 호프와는 달리 
그에게는"금연운동에 기여한 공로로"국민훈장 모란장이 사후에, 너무 늦게 추서되었다. 
너무 늦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늦게 깨닫는 것일까?

 그도 밥 호프처럼 좀 더 우호적인 사회에서 살았더라면, 
아니 그에게 우리 모두가 좀 더 편안한 환경이 되어주었다면…
그도 술 담배 덜하고 몸을 마구 학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도 마음에서 웃으며 시름을 가벼운 웃음으로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면… 
그런 뒤늦은 생각을 해 본다.
 김주영
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