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우리는 다르게 산다.'를 모토로 느림의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출범시킨 것이 바로 '슬로시티 운동'이다.
슬로시티 운동은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으로, '슬로시티'라는 이름 역시 전통과
자연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토대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을 지녔다.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려는 이들이 지향하는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삶의 질로,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현재 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이고, 환경정책, 기반시설정책, 도시의 품질을 높이는 기술과 설비,
지역전통산업과 슬로푸드, 방문객 환대 능력, 주민들의 의식수준 등 6개의 평가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2013년 6월을 기준으로 27개국 174개 도시로 확대됐으며,
한국도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전남 4개 지역을 시작으로 11개의 슬로시티가 가입돼 있다.
이에 필자는 지난 11월 30일~12월 1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정책브리핑 정책기자단,
한국관광공사 슬로시티 대학생 홍보단과 함께 슬로시티 충남 예산 대흥과
경기도 남양주 조안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끼고 왔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은 지난 2006년, 국내 여섯 번째로 슬로시티 연맹에 가입했고,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은 2010년 수도권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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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경기 남양주 조안의 첫 번째 방문지는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었다.
조선시대 실용학문의 대가 정약용 선생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첫째 날 예산 대흥면을 방문한 데 이어 탐방 이튿날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향했다.
'새가 편안히 깃든다'는 뜻을 지닌 조안(鳥安)면은 배산임수의 지형에
산세와 풍광이 좋고 공기가 맑아 이 같은 지명이 붙여졌다.
전원마을, 장수마을, 연꽃마을, 전원일기마을 등 꾸미지 않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12개의 마을로 구성돼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의 전원마을이라는 점에서 각광받는 주말 관광지 중 하나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선시대 실용학문의 대가 정약용 선생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다산 유적지였다.
집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뒤로는 작은 언덕이 있다고 해 선생이 '수각'이라고도 불렀던 생가 여유당과
다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업적과 일생의 자취가 전시된 다산기념관,
다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보는 다산문화관을 돌아보고 난 뒤, 그의 묘지에 올랐다.
김정숙 문화해설자는 "본래 묘지명은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것이지만
다산 선생은 회갑 때 지나온 파란의 삶을 회고하며 자찬묘지명을 지었다.
자찬묘지명에는 무덤에 넣는 소략한 광중본(壙中本)과
문집에 실을 상세한 집중본(集中本)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찬묘지명에는 '이 묘는 열수 정용의 묘이다.'라고 적혀있는데,
정약용 선생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산'이라는 호보다는
'열수'라는 호를 더 좋아하고 자주 사용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실용학문의 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
본래 묘지명은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것이지만
다산 선생은 회갑 때 지나온 파란의 삶을 회고하며 자찬묘지명을 지었다.
다산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당시 그의 부인이 시집올 때 입고 온 다홍치마를 보내왔고, 선생은 그것을 잘라 두 아들에게는 교훈이 되는 글귀를 적어 보냈으며 딸에게는 매조도를 그려줬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다산 선생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다산유적지를 둘러본 뒤 실학박물관에 들렀다.
'실학의 형성', '실학의 전개', '실학과 과학'의 세 분야로 나뉜 전시실을 돌아보며
학예사의 설명에 경청하는 정책기자단과 홍보단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보였다.
실학박물관을 나서서 조금 걸어가니 눈앞에 절경이 펼쳐졌다.
현재 '실학생태동산'이라는 이름의 관광자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나루터의 기능을 했었다고 한다.
조금 흐린 날씨였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실학생태동산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김정숙 문화해설자는
"조선시대에 변응성 장군이 빠른 업무처리를 위해
말을 타고 나룻배를 건너다녔다고 해서 마탄나루라고도 부른다."며
"이곳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조안 슬로시티에서는 수려한 자연환경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도 마련돼 있었다.
연꽃으로도 유명한 조안인 만큼, 정책기자단과 홍보단은 연꽃마을체험관에서 연잎밥 만들기 체험을 했다.
밤, 은행, 호박씨, 대추, 콩, 잣 등 영양이 풍부한 재료들로
연잎 특유의 향이 배인 연잎밥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연잎밥 만들기 체험과정(시계방향). 연꽃으로 유명한 조안에서는
연잎밥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돼있다.
다음으로 이동한 장소는 능내역이었다.
역 건물은 추억 속 옛 교복들과 알록달록한 각종 소품들이 배치돼 포토존으로 바뀌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철로 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었다.
또한 실제 운행하던 기차 내부가 아기자기한 카페로 활용되는 등
지금은 폐역한 능내역은 향수를 자극하며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슬로시티 대학생 홍보단 최승재(대학생·20세) 씨는
"분위기도 좋고 간이역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과 같은 젊은층은 자가용을 소유한 경우가 흔치 않은데,
조안 슬로시티는 자가용 없이 오기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며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교통편이 좀 더 나아져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능내역의 외관. 폐역한 기차역이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폐역한 능내역은 향수를 자극하는 각종 볼거리들로 꾸며져있다.
능내역 앞쪽에는 북한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이 펼쳐져 있다.
조안의 자랑답게 곳곳에 자전거 거치대가 배치돼있고, 각종 안전수칙과 안내판도 갖춰진 모습이었다.
자연을 만끽하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마지막으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3월 개관한 '슬로시티 문화관'을 찾았다.
건물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아늑한 느낌을 줬다.
대부분의 벽면은 슬로시티를 홍보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슬로시티의 취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다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들이 진행됐다.
증기를 이용하여 감자, 고구마, 계란 등을 익혀먹는 체험과,
한 달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서 '저는 느려서 배달이 오래 걸려요'라는 문구를 새긴
달팽이우체통에 넣는 이색체험도 이뤄졌다.
편지지에 붙여진 달팽이 모양, 하트 모양의 장식 속에는 씨앗이 들어있어
편지를 받은 뒤 심어서 기를 수 있게 해 조안 슬로시티만의 독특함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3월 개관한 '슬로시티 문화관'을 찾았다.
슬로시티 문화관의 내부 모습(위)과 '한 달 뒤의 나에게 편지쓰기' 체험(아래)
조안 슬로시티에서의 모든 일정에 함께한 김정숙 문화해설가는
"조안에서 나고 자란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고장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슬로시티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지역 주민들의 자랑이 되고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김수진(대학생·22세) 씨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도심과 달리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일상에서 벗어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만족을 표했다.
1박 2일간의 슬로시티 탐방은 잠시 잊고 살았던 느림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지금 우리는 빠름이 주는 편리함을 손에 넣기 위해 값비싼 느림의 즐거움과 행복을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 때로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슬로시티에서 삶의 여유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정책기자 조정경(고등학생)
jungke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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