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야기

[스크랩] “나에게 산은 놀이터이자 일터였어요”

tkaudeotk 2018. 4. 9. 22:04

춘천생명의숲 장준근 상임대표



올해 춘천생명의숲의 새 상임대표가 된 장준근 대표는 평생을 숲과 함께 했다. 

나직하고 잔잔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숲과 나무 이야기들을 듣노라니 마치 함께 숲길을 걷는 듯했다. 

그의 고향은 홍천군 서석면에서도 30리 떨어진 오지 산골마을 수하리다. 

수하리의 숲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그의 놀이터였다. 

동네 형들을 따라 소꼴을 베러 다녔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지게를 져야 했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를 끌고 산으로 가서 나무에 묶어두고는 꼴을 벴다. 

소가 어느 정도 배가 부를 때면 지게에도 이미 꼴이 한 짐 실렸다. 

꼴짐을 지고 내려오면 어느덧 해가 졌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봄에 곡식 한 말을 빌리면 가을에 두 말을 갚아야 했다. 

보릿고개에는 곡식도 밀가루도 없어 덜 여물은 옥수수를 갈아 반죽을 해서 

끓는 물에 숟가락으로 떼어 넣고 수제비처럼 먹었다. 

3년 상을 몇 번 치르고는 더욱 빈곤해졌다.
 
 “어느 해에는 마을에 홍수가 나서 수해를 입었어요. 

마을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요. 

농작물도 다 쓸려가고 먹을 것이 없어도 장례식은 하얀 쌀밥에 고기와 나물 과일을 올렸지요.”
 
 형은 중학교만 마치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 

중학생이 된 그도 당연하게 집안일을 배당받았다. 

학교에 가도 담당과목 선생님이 없어 수업은 파행이 되기 일쑤였고, 

학교 운동장을 조성하는 데 부역해야 했다. 

호롱불을 밝히고 공부를 할라치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형의 희생이 없었다면 고등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형은 소를 키워 학비를 대기로 했고, 춘천에 사는 아버지의 친구가 방을 내어 주었다. 

기초학습이 없던 터라 1학년 때는 따라가기가 어려웠지만, 

2학년 때부터는 우수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그는 망설임 없이 임업과를 선택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나에게 산은 놀이터이자 일터였어요. 숨바꼭질을 해도 이산 저산으로 뛰어 다녔고, 

소꼴을 먹이며 소가 좋아하는 풀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산뽕나무 잎을 베며 나무를 구별하고, 

나물을 꺾으며 풀들의 어린 순과 꽃들을 알았어요. 숲은 삶이였지요.”


한-몽골 그린벨트 조성사업 자문을 위해 몽골을 방문한 장준근 대표
사진=장준근

 
 나무 이름을 몰라도 그 나무의 식생을 모조리 알고 있던 터라 대학에서의 성적은 월등했다. 

가장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3학년 때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등록금과 등록금만큼의 생활비도 지원 받아 졸업 때까지는 생활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졸업 후에 강원대 학술림을 경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숲에서 일을 하니 신명났어요. 

게다가 학장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일을 하며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강원대는 산림특성화대학이에요. 

단과대학이 별도로 있어 수십 명의 교수진과 연구환경도 최고였지요. 

그래서 넓고 깊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기술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어 사업도 해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이 있었지만 

아내의 만류로 학술림에서 나무를 양묘·육성하고 숲을 가꾸고 연구하며 정년을 조금 당겨 2013년 퇴직했다.
 
 “저는 생태마을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인위적으로 숲을 가꾸고 보를 만드는 등 인간 중심으로 자연환경을 건드려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 되었어요. 

맑은 물은 흐르지만 물고기는 없어요. 

죽은 물이지요. 

댐과 보는 물을 가로 막고 물고기가 다닐 수 없게 만들었지요. 

사방댐은 제 기능을 하고 나면 허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해요.” 
 
 계곡엔 미생물과 수생곤충과 수생식물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간섭이 없이도 생명이 살 수 있다. 

산의 나무들도 환자투성이다. 

스스로 경쟁에서 이겨내고 자라야 한다. 

숲 가꾸기를 한다고 가지치기를 하고 간벌을 하면 병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활엽수를 가지치기 한 나무는 5년만 지나면 감염되거나 벌레가가 먹어 썩거나 병들기 쉽고, 

간벌을 하면 갑작스런 햇빛에 나무의 수형이 변하고 좋은 목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양묘장에서 옮겨 심은 나무는 스스로 발아한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하다. 
 
 “종자에서 발아될 수 있게 돕고, 

가지치기와 간벌을 하지 않고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가꾸기가 필요해요. 

잘 기른 느티나무나 졸참나무는 후손에게 큰 재산을 남겨주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코이카 자문위원으로서 몽골 칭길테산 소나무 숲에서 일행들에게 숲 해설을 하는 장면. 

사진=장준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분들과 생태마을을 만들 장소를 탐색 중이라고 했다. 

숲을 가꾸고 산에서 소득을 얻고 계곡에는 생명이 살 수 있도록 해 

생태계 먹이사슬이 균형을 이루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꿈이 꼭 이루어져서 생태마을의 본보기가 되어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확산되길 바래본다. 

그는 올해 춘천생명의숲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20여 년 전 설립된 춘천생명의숲은 전국 생명의 숲의 시초가 되었다. 

발기인으로 처음부터 생명의 숲에 관여한 장준근 대표는 특히 올해는 생명의 숲 회원들과 하고픈 일이 있다고 했다.
 
 “생명의 숲에서는 숲 해설 강사를 양성하고, 숲 체험과 숲 가꾸기, 숲 문화운동을 하고 있어요. 

숲 가꾸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하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숲 체험도 하지만, 

회원들과의 숲에서의 접촉은 부족했어요. 

대부분 숲에 관심이 많기는 해도 그들이 숲에서 공감하는 부분을 극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을 정상체험(peak experience)이라 하는데 자아실현의 최고 경지이지요. 

숲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가슴이 열리고 오감이 행복감으로 충만한 순간을 체험하게 하고 싶어요.”
 
 국제봉사단체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우리나라 산이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한다. 

너무나 커서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위압적인 산도 아니며, 

얼음에 뒤덮이거나 메마르지도 않고, 열대우림의 숲처럼 무섭지도 않다.
 
 “흙냄새를 맡아보면 알아요. 

적절한 수분과 양분, 미생물이 생명을 잘 품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지요. 

다만 숲을 제대로 가꾸고 계곡과 강을 살리는 생태복원의 노력이 필요해요.”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삶의 고단함을 풀어놓기도 하며 

자연에 기대어 그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며 생명을 길러내 왔다.

 생태계의 복원이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준근 대표는 어느 마을의 생태계 수문장이 되어 줄 한 그루 느티나무 같았다.


김예진 시민기자    


출처 : 부천산수원산악회
글쓴이 : 사명대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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