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119
“아들아! 아버지에게 뭔 일이 난 모양이다.” 전화기 너머 로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께서 분명히 집 안에 계시는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초인 종을 울려도 인기척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디지털 도어 장치가 고장 났고, 그날 따라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어머니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 르며 나에게 전화를 거신 것이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불과 1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 진 곳에 사시는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날 오 후 아버지와 함께 상가(喪家)를 방문하기로 하셨는데,
아 버지는 ‘속이 좋지 않다’시며 집에 머무셨다.
어머니만 상 가를 방문하고 몇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이 토록 집 안에서 반응이 없으신 걸 보면,
분명 아버지에게 무슨 변고(變故)가 생긴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아파트 경비원에게 열쇠 전문점에 서둘러 연락을 취 하도록 부탁했으나 1시간 후에나 도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급히 차를 몰아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끼려고 아파트 1층 현관에서부터 8층까지 냅다 뛰어올라 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긴급 전화로 119소방대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다.
10분이 지나지 않 아 여러 소방대원이 도착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윗층으로 올라가 로프를 타고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는 팀이 도착하는데 조금 더 기다릴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현관문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갈 것인지를 물었다.
집안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실 아버지 생각에 “지체할 것 없이 문 손잡이를 부수고 들어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다 문득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계신 어머니를 비상 계단에 “잠시 앉아 계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고는 “어머 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씀 잘 들으세요.
이렇게 밖에 서 큰 소리로 부르고, 소란스럽게 해도 안에서는 전혀 기척이 없으니 분명 큰일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 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고 놀라지 마시라”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도록 하였다.
현관문 손잡이를 부수자 문이 개방되었다.
신발을 신은 채, 제일 먼저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러자 안방 침대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께서 그제서야 놀란 토끼마냥 크게 눈을 뜨시고,
“무슨 일이냐?”라며 일 어나 앉으셨다.
상기된 표정으로 안방에 들이닥쳤던 나와 소방관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는 저녁 녘이 되어도 여전히 속히 불편해, 약을 드시고 잠
에 취해 곤히 주무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별고 없이 잘 계셔서 하나의 해프 닝으로 끝났지만,
조금 전만 해도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 겼음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내가
소름 끼치도록 침착하고 냉정하게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보 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어떻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내 마음이 당황스럽지 않고 그처 럼 평온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평소 아버 지께서는 품위 있는 마무리를 위한 암시를 내게 수차례 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살아계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이 우리네 정서로는 터부(taboo) 시 여기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 아버지께서는 후회 없는 삶을 사셨다고 입버릇처 럼 말씀하셨고,
종종 어린 손자손녀들 앞에서도 스스럼 없이 준비된 죽음, 행복한 죽음(?)에 대해 언급하시곤 하셨다.
게다가 신앙을 통해 <영생의 소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으셨기에
나도 모르게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의 연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여러 연구들을 통해, 생의 끝자락에서 죽음 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자세로 죽 음을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가이드라인으로서 <품위 있는 마무리>를 소개하곤 한다.
이번 해프닝으로 인해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아버지께서 품위 있는 마무리에 대하여
의식하셨든, 의식하지 않으셨든 간에 평소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셨고,
신앙인의 한 사 람으로서 가지셨던 내세에 대한 확신이 아버지의 마음에 참평안을 안겨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호스피스 의사이며 크리스천인 가시와기 데쓰오 박사도
40년 넘게 생애 말기 환자 2,500여 명의 임종을 지키며 느낀 소중한 깨달음을 그의 책 <살아 있음>에 서 풀어 소개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지는 평안’이 한 사람의 삶을 이끌 때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노년에 이른 많은 사람이 치매 등 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돌
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준
비되지 못한 인생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삶의 철학
치매라는 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츠하이머 (Alzheimer) 박사가
50대의 한 젊은 부인이 기억력 장애, 언어 기능의 저하, 초조 행동, 수면 장애, 인지 기능의 이상 등을 보이다 사망하게 되자,
그녀를 부검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고령의 노인이라 할지라도 힘닿는 대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인생의 품위 있는 마무리를 위해 준비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스웨덴의 예테보리 대학교 레나 요한슨 박사 연구 팀 은 38년 동안 약 800명의 여성을 상대로 추적 조사를 벌였다.
연구 참여 여성들의 나이는 46세 이상이었고, 연구 시작 단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억력 테스트와 함께
신 경증적 기질, 외향성, 내향성 등을 따지는 성격 테스트를 실시했다.
아울러 그들이 얼마나 스트레스와 공포, 긴장, 신경 과민, 수면 장애를 겪는지를 조사했다.
이 연구를 통 해 얻은 결과는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여성이 치매 에 걸릴 위험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노인 여성보다 2배 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마음의 평화가 노년에 치매 에 걸릴 위험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얻어 낸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사고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음의 평안을 누 리는 일은 삶의 품위 있는 마무리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다 윗은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였고,
여러 차례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높은 삶을 살았었다.
그는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 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시편 38편 8절).
“내 영혼 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시편 42편 5 절)라는 탄식을 했다.
또한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사무엘상 20장 3절)라며 죽음에 직면하여 절 박한 고백을 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는 결정적으로
그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낙심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여 마음의 참평안을 얻었다.
품위 있는 마무리는 죽음에 직면한 임종의 한 순간이라기보다
노년기의 노인들이 평소 간직해야 할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삶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2017년 월간 가정과 건강 2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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