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송담스님의 탈종, 그리고 조계종단과 총무원

tkaudeotk 2015. 6. 30. 11:45

"도법 스님이 종정 스님에게 던진 질문과 다르지 않다"




송담스님의 탈종, 그리고 조계종단과 총무원


     --재가불자 우희종--


1. 종교집단으로서의 조계종단은 누구인가? 

지난 2011년 12월 7일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인 도법스님은 

종정예경실장에 보내는 형태로 종정스님에게 공개질의를 했다. 

그 중 일부만 발췌하면, 

- 정법의 깃발을 남루하게 만들고 불교 종단의 위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선거풍토, 계파정치, 종회의원 폭력 등의 문제들이 

  종지정신과 예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따끔하게 짚지 않는 것인지, 그 본의를 묻습니다. 

- 종지실현의 길인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정신을 함부로 취급함으로써 출가 수행자를 불신과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비민주적인 종단과 사찰운영, 비인격적인 언행, 불투명한 재정, 무절제한 고급 승용차, 

  비불교 수행자적인 물질적 풍요와 편리추구 등의 문제들이 

  종지정신과 예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야단치지 않는 것인지, 그 본의를 묻습니다. 

- 불교종단과 수행자를 국가권력의 종속화, 세속화의 늪으로 빠뜨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의 대형불사를 위해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재정을 만드는 등의 문제들이 

  종지정신과 예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나무라지 않고 계시는 것인지, 그 본의를 묻습니다. 

- 한국불교 제일의 총림이요, 종정예하께서 주석하시는 해인사에서 일어난 일련의 문제들이 

  종지정신과 예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바람 잘날 없이 계속되도록 놔두는 것인지, 

  그 본의를 묻습니다. 

- 부처님의 유언인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의 정신으로 볼 때 어떤 인물, 어떤 직위보다도 더 위대한 근본은 법이기 때문에 

  마땅히 종헌종법 정신으로 종단과 사찰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높고 힘 있는 직위의 스님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허용되고 인정받는 문제들이 

  종지정신과 예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묵연히 지켜보고 계시는 것인지, 그 본의를 묻습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부처님의 출현목적, 불교와 종단의 존재이유인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종헌 종지를 제대로 배우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불조의 본의와 종지의 정신이 지켜지고 실현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총무원장을 위시로 한 모든 종도들이 종지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겸허히 배우고 토론하고 대화하도록 파사현정의 죽비로 내려치십시오.’라고 청했다. 

이제 4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을 다시 던지고자 한다. 

한국의 대표적 불교 종단이자 살불살조의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조계종단에서 위에 던진 날선 정신은 실천되고, 

또 그 파사현정의 죽비는 살아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최근 발생한 한국불교의 상징적 수행승인 송담스님의 

‘수행가풍이 다르기에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조계종 탈종 선언에서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10년 묵언을 포함해 평생 참선수행 외에는 한 눈을 판 적 없이 이미 90세에 가깝고 

그동안 종단 스님들의 수행과 복지 시설, 대장경 사업등, 종단 발전을 위해 몇 십억씩 내놓은 송담스님이자, 

최근엔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들의 교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참선수행에 전념하던 상좌스님을 여러 대학 불교동아리 지도법사로 활동하도록 전폭 지원하고 

또 일반대중을 위한 교계 매체 활동을 허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송담스님은 조계종 탈종이라는 처방외엔 희망이 없다고 한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송담스님 탈종의 계기는 분명 용화문중의 용주사 주지선거는 분명하다. 

그 여파로 법인등록에 대한 거부와 탈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표면 모습이 불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는 조계종단에 희망은 없다. 

이 글에서 송담 문중 제자들 사이에서의 주지직 갈등이나 

멀리는 이에 연계된 연주암, 수원사, 신륵사 등등의 들리는 이야기는 굳이 언급할 필요 없지만, 

그 이면에서 작동한 총무원 실세의 모습은 4년전 도법스님이 종정스님에게 던진 질문과 결코 다르지 않고, 

오히려 당시보다 더욱 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이를 접한 총무원 일부 스님들이 법인법이나 주지직 때문에 저런다고 몰아가는 매우 수준 낮은 프레임 씌우기를 자행하고, 

심지어 총무원의 한 유명스님은 송담스님에 대하여 부적절하고 망신스럽다면서 ‘

주지 선거는 자신의 상좌들을 시켜 지도력을 발휘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말하면 주지 선거도 세속과 같이 정치적이어야 했는데 그렇게 정치적이지 못하고, 

단지 선거에 있어서는 문중의 전통에 따르라고 간략히 뜻을 밝힌 송담스님에 대한 비판이기에 

이는 현 종단이 어떻게 주지나 종회의원 선거 등에 임하고 있는 지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심지어 그동안 조계종 밥을 먹었는데 탈종이라니 하면서 전형적인 조폭 집단의 논리도 들려왔다. 

2. 조계 종단을 대표하는 현 총무원은 누구인가? 

어느 종교집단이건 종교인 개인의 비리와 부패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언제고 반성과 참회로 거듭 태어날 수 있기에 자정을 위한 지적과 비판도 적정 수준에서 이뤄지고, 

그러한 몇몇 개인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개선을 촉구하며 어느 정도 기다리는 자세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몇몇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뼛속까지 체질화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동안 현 총무원의 비리와 부패 모습은 일반 세속 집단보다 다양한 형태로 유명했다. 

각각의 사안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또 앞으로 이어질 이후의 세미나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생각하기에 언급은 생략하지만 

이 바탕에는 총무원장에게 종단권력이 집중된 체제와 더불어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판으로 변질된 총무원이 있다. 

사찰에 따라서는 몇 십억 돈이 쉽게 들어오는 본사 주지 임명권과 막대한 국가 보조금을 관리하는 총무원장의 권력은 

총무원으로 하여금 종지 선양과 종도들의 바람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적 계파 모임과 국가 권력에 야합하는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돈에 뒷받침되는 총무원장의 권력은 금권선거로 잘 알려진 연임 과정을 통해 

이제는 용주사나 동화사 주지 임명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종정스님이나 송담스님을 위시해 

그 어느 누구도 거칠 것 없는 안하무인이자 무소불위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번 종회의원 선거에 대한 개입과 금권 선거는 물론 

그 후 이어진 세속적 논공행상에 있어서 보여준 왜곡된 사적인 인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총무원에 좋은 뜻을 지닌 스님들이 자리잡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 총무원장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생명생태 파괴 사업이었던 사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동시에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면서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에 대한 말살행위는 한국 불교계에 영원히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명존중과 고통 속 중생 구제라는 대한 한국불교의 살아있는 정신을 보여줌으로서 

한국 불교계의 한 획을 그은 소신공양은 종단장을 위해 서울로 오던 문수스님의 유체를 

당시 사대강 사업 추진에 혈안이던 정부의 연락 하나로 중간에 차단되어 소리없이 지역 작은 사찰에서 마무리한 것은 

이미 사회 자정집단이자, 사표로서의 역할을 저버린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조계종단이 권력과 돈에 눈 먼 총무원으로 말미암아 선종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종교장사 집단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총무원의 조계종단 왜곡 행태는 결국 구성 스님들의 정체성 혼란과도 이어진다. 

불가에는 다양한 좋은 수행법이 많지만, 조계종단이 표방하는 선종의 대표적 수행 방식은 참선수행이자 간화선이다. 

불가의 훌륭한 여러 수행법을 무시하면서 오직 간화선만이라고 독선에 참 무지한 입장도 문제지만, 

요즘 부쩍 조계종 승려이면서 굳이 간화선을 폄훼하면서 다른 수행법을 강조하는 스님이 눈에 뜨인다. 

종단이 표명하는 바와 다른 입장이라면 조계종 아닌 다른 종단으로 가 승려활동하면 될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이 종단 내에서 쉽게 보인다는 것은 종단내 스님 자체가 종단의 정체성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수행과 포교보다는 돈과 권력에 몰두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총무원장의 권력은 총무원장의 말 바꾸기와 금권 선거로 점철된 연임 반대와 송담스님 탈종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전국수좌회의 의견이 무시당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조계종단에서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전국수좌희의 어려운 의견 제시마저 연이어 무시당하는 현 상황에 있어서 

총무원의 행태에 침묵하는 것은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불자라면 온당하지 않다. 

폭력적이고 왜곡된 상황이나 행태에 대한 침묵은 그에 대한 동참이기 때문이다. 

특히 총무원장의 권력은 종도들로부터 위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행집단에 대한 정체성 왜곡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는 총무원 체제와 구성인원들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국가권력과 연계되어 철저히 통제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 위해 국가 보조금에 목매고 있는 총무원 자신들처럼 종단 단체를 지원금이라는 형태로 관리하고 있는 현황이다. 

3. 탈종, 그리고 방향 

과거 조선으로부터 대한제국이 되면서 만들어진 한국불교의 ‘조선 원종’이 일제 통치 후 보여준 정치적 행보와 

당시 권력인 조선총독부에 야합한 행태는 잘 알여져 있다. 

원종 종정인 이회광 스님이 이처럼 한국불교의 전통과 정체성을 훼손하자 

용성 스님은 조선원종으로부터 새로운 ‘조선 임제종’을 만들어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온 역사를 기억한다. 

당시 용성스님은 그런 스님 집단을 향하여 

“저 승려들은 그 종교의 정신을 잃고서 세속의 이익과 흐름만을 따라 무종(無宗)의 상태에 빠졌다”라고 질타하였다. 


비구니 종회의원과 연관되어 표출된 열린 비구니 모임에서도 볼 수 있지만, 

단지 종단의 정체가 아니라 왜곡된 종교집단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전락했다. 

1962년에 출범한 조계종단이 1994년 종단개혁불사를 거치면서 우리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없다. 

현 총무원으로 대표되는 조계종단은 1994년과 다름없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야합한 부정부패 및 정체성 왜곡이라는 점에서 1910년대로 퇴행한 것으로 보인다. 

용성스님의 결단과 입장이 송담 스님의 결정과 중첩되어 보이는 이유이다. 

한편, 본 발제의 주제와 성격이 달라 간단히 언급한다면, 

송담스님이 탈종으로 상징되는 종단 현 상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종단 내외의 건강성 회복이고 이를 위해서 종단의 제대로 된 강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종단개혁 2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조계종단의 미래와 과제’라는 현응스님의 문제의식에서 잘 지적되어 있다. 

지적된 사찰의 주지 인사과정과 특정 문중과 개인의 연고권 분리, 불투명한 현금재원의 해당사찰 사용을 개선하여 

사찰 재정 투명화하고 전국 대형 사찰의 분담금이 현실화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한 종단의 제대로 된 제제 정비와 재원 마련이다. 

이와 더불어 총무원의 진정한 자정과 쇄신이다. 문제가 있는 집단의 자정은 내부 반성과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무원 내에도 자정과 쇄신을 내세운 결사본부가 있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권력형 결사본부다보니 정작 치열하게 다뤄야 할 내부 자정보다는 외부로 드러나는 형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런 내용이라면 많은 부분이 총무원의 다른 부서에서 수행해도 무방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형 결사본부의 한계로 인한 실질적인 자정과 쇄신을 이루지 못한 것의 한 증빙으로서 이제 쇄신위원회의 한 분과로 자리잡은 듯하다. 

선종이라면서 일반 재가신도들에게 선종에서의 진정한 삼귀의와 사홍서원의 의미도 가르치지 않는 

조계종승단을 제대로 바로 잡을 때 사부대중의 청락이 이뤄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승가의 기반은 승려의 권위이고, 이 권위는 승려의 청정성과 성스러움에서 나온다. 

청정성은 승려의 생활이 실제로 얼마나 바르게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행생활을 함에 있어, 항상 반성하고 죄를 지었으면 참회하여 청정성을 유지해 나가게 하는 조직상의 기능이 필요하다. 

자자와 포살이라는 의례를 종단 내에 자리잡기를 바라며, 

이럴 때 재가자들도 승가와 힘을 합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편, 도를 넘은 총무원장 권력 행위에 대한 신도들의 자정 노력에 대하여 

소위 평소 입장이 반대인 스님들도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인지 같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렇게 여야로 나뉘어 야에 속해 현 총무원의 비리를 지적하는 스님들 중에는 

권력이 있을 때에 현 총무원장과 다르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들도 인해 종도들의 자정운동이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만, 

주장하는 내용이 옳다면 앞으로 그들의 입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경청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입장을 떠나 그 누가 이야기하도라도 옳은 말이나 지적을 한다면 그 지적된 내용에 대해서는 옳다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이지 

세속 정치꾼들처럼 말한 사람을 비난하면서 그 내용마저 그릇된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된다. 

또한 이런 불자들이 문제제기가 지적하는 조계종단 총무원의 부패상에 대한 진정한 자정과 쇄신은 

최종적으로 내부 스님들의 자발적 운동이 없는 한 이뤄질 수 없다. 

특정 집단의 변화란 자체 변화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외부의 지적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본 발제도 수행과 포교에 힘쓰며 생활하는 종단 내부의 많은 진지한 스님들의 의견이 

종단에 구체적으로 개진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고 대안을 제시해 드리는 것까지일 것으로 본다. 

종단의 고질병이 깊어 그래도 안된다면, 송담스님 말씀처럼 수행체제가 다른, 

추구하는 가치가 전혀 다른 조계종단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기에 

종도들은 종단을 떠나 제대로 수행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단이나 집단으로 그 소속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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