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누룩 명맥 잇는 '진주곡자' 이진형 대표
전통누룩 제조업체인 ‘진주곡자(子·누룩)’ 이진형 대표(44)는 서울탁주에서 불만사항이 접수될 때마다 머리를 싸매야 했다.
서울탁주는 자사의 인기제품 장수막걸리에 누룩향을 넣기 위해 진주곡자의 전통누룩을 구입한다.
서울탁주는 진주곡자의 최대 거래처다. “이달에 납품한 누룩은 왜 이렇게 향이 진해요?”
“이번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맛이 이상하게 나옵니다.”
“누룩 질이 이렇게 일정치 않으면 어떡합니까.”
누룩이 잘 안 나온 날이면 마음이 더 무거웠다.
누룩방 온도가 누룩의 발효열로 갑자기 높아지면 쓴맛을 내는 흑국균(검은색 누룩곰팡이)이 피어났다.
“아버지, 더 이상 연탄보일러로는 안됩니다.”
이 대표는 아버지를 설득해 누룩방에 사용하던 연탄보일러를 2009년 최신 온도조절 장치로 교체했다.
누룩방 관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양조장들의 불만사항은 점차 들어갔다.
진주곡자에서 균일한 품질의 누룩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 대표가 200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누룩공장을 도운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양조장들의 요구에 따라 누룩향이 기존 제품보다 크게 줄어든 전통누룩 개발에도 성공했다.
일본의 한 주류업체는 진주곡자와 함께 전통누룩 연구를 시작했다.
3대째 이어오는 전통누룩 제조 업체인 ‘진주곡자공업연구소’의 이진형 대표가
나무 선반에 가득 쌓여 있는 누룩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달 27일 경남 진주의 ‘진주곡자공업연구소(진주곡자)’를 가보니 공장 한쪽에 수북하게 쌓인 50㎏짜리 밀포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쌀을 찐 뒤 흩트려 누룩(산국·散麴)을 만드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밀을 빻아 반죽해 누룩(병국·餠麴)을 만든다.
밀반죽을 원반 모양 등으로 성형한 뒤 누룩방에서 발효시키면 질 좋은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이 붙어 자라게 된다.
막걸리를 만들 때 이 누룩을 잘게 부숴 넣으면 누룩 속 곰팡이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들고,
효모는 누룩곰팡이가 만든 포도당을 알코올로 분해시킨다. 술이 완성되는 것이다.
외조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진주곡자를 운영하고 있는 이 대표의 안내를 받아 누룩방에 들어섰다.
발효가 이뤄지는 18개 누룩방에는 자동온도조절기가 설치됐다.
그는 “좋은 누룩을 띄우려면 30~35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누룩을 넣은 지 일주일 된 제6누룩방은 34.6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룩방 문을 열자 열기가 훅 끼쳐왔고, 밀가루 냄새도 밀려왔다.
높이 3m쯤 되는 나무 선반 층층마다 하얀 누룩이 놓여 있었다.
누룩방 한 곳에 보관된 누룩 개수만 3500개에 이른다.
높이 3m쯤 되는 나무 선반 층층마다 하얀 누룩이 놓여 있다.
누룩방 한 곳에 보관된 누룩 개수만 3500개에 이른다.
‘진주곡자’에서는 자동온도조절기가 설치된 18개 누룩방에서 누룩을 발효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진주곡자의 자랑은 3대에 걸쳐 이어져온 ‘누룩곰팡이’이다.
아버지가 1984년 누룩공장을 진주 계동에서 현재의 상평동으로 이전하면서 계동 공장 누룩방에 있던 오래된 나무 선반도 그대로 옮겼다.
이 대표는 “외할아버지 시절부터 누룩방 실내와 선반에 붙어 살아온 누룩곰팡이를 새 누룩방에도 들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외조부 때부터 사용해온 나무 선반은 버리지 않는다.
새로 나무 선반을 놓을 때는 누룩곰팡이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존 누룩방에 새 선반을 오랜 시간 두어 누룩곰팡이가 붙게 한다.
이 대표는 “대학교수들도 우리 회사의 누룩에 황국균(황색 누룩곰팡이)이 많다고 인정해주셨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경상대 합동연구팀에 따르면 진주곡자 누룩에서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라는 황국균이 주로 발견됐다.
누룩곰팡이 수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광주에서 전통누룩을 제조하는 ‘송학곡자’의 누룩에도 ‘리조푸스 오리제(Rhizopus oryzae)’라는 좋은 누룩곰팡이가 많았다.
송학곡자는 효모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노현수 경상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누룩곰팡이는 배양실 공기, 누룩 받침목 등에서 옮겨가는 것으로 생각되고,
효모는 누룩 제조에 사용되는 곡물에 서식하다가 자연스럽게 누룩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며
“진주곡자와 송학곡자 누룩 모두 특색 있는 전통누룩”이라며 “지역마다 누룩마다 생기는 균이 다르고
이러한 균의 다양성이 막걸리의 지역적 다양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의 전통누룩은 ‘발효제’라는 본디 누룩의 역할을 잃었다”고 말했다.
전분을 분해해 알코올로 만드는 용도로 사용돼야 할 전통누룩이 지금은 막걸리에 누룩향을 내기 위한 ‘첨가제’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막걸리 업체들은 전통누룩이 아닌, 일본식 입국(粒麴)을 발효제로 사용한다.
입국은 쌀을 찐 뒤 잘 펴서 그 위에 황국균이나 백국균을 한 종류만 뿌려 인공적으로 배양시킨 것이다.
단일 균을 사용하면 술의 맛과 향이 단순해지지만, 항상 균일한 품질의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다.
또 일본식 입국은 전통누룩보다 전분을 포도당으로 바꾸는 능력이 강해 술의 양이 많이 나온다.
양조장들이 일본식 입국을 고집하다보니 진주곡자도 한때 문닫을 위기에 처했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혼자 운영할 때는 한 달에 공장을 가동하는 시간이 보통 일주일, 길어야 보름이었다”며
“누룩공장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아버지가 부업으로 공장 앞에 자동차 정비소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누룩공장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인근 대학원에 진학해 미생물학 석사 학위를 땄다.
우리밀로 만든 누룩도 개발했다.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생산되는 금강밀과 앉은뱅이 밀을 재료로 누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수입밀로 만든 누룩은 10㎏당 3000원, 우리밀로 만든 누룩은 10㎏당 5000~6000원 선에 판매한다.
이 대표는
“전통누룩으로는 술을 만들 수 없다고 하는 양조장들의 편견을 깨줘야 할 때”라며
“진주곡자 누룩의 깊은 맛과 향이 일정하게 나올 수 있도록 공정을 기계화하고 설비를 현대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버선발로 직접 밟아 모양을 만들어줬던 누룩 성형을 기계로 눌러 찍어내는 방식으로 바꾸고,
발효실 연탄보일러를 현대식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통누룩을 생산하던 경북 상주의 ‘상주곡자’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제 한국에서 전통 누룩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곳은 진주곡자와 송학곡자뿐이다.
<진주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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