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했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 동안의 변화를 알지 못했는데 새로 찾아보니 지금은 산에서 내려와 있다는군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가 이 사람이 쓴 책의 제목인데
여기서 저는 <눕는다>를 단순한 신체적 운동의 정지로,
그리고 <걷는다>를 단순하게 <산길을 걸음>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니란 걸 다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신도 역시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이든 몸이든 매 한 가지로 부지런한 움직임을 요구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좋은 삶은 불가피하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끊임없는 움직임과 모색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거듭 새롭게 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산은 사람을 살린다”
“산 에 있을 때는 인터뷰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도회지에 살다보니 내키기 않네요.”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내뱉은 말이다. 현재는 산을 떠나 도심지에 있기에 산과 관련된 얘기를 하기에 부끄럽다는 말이다.
화타 김영길은 강원도 오지 방태산에서 14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다 98년에 경기도 일산 국립 암센터 앞에 개원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도심보다 산을 더 가까이 접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화타 한약방은 일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오전에만 진료하며 한주에 12시간만을 근무한다. 그리고 쉬는 날은 어김없이 10년 넘게 터전이었던 방태산을 찾고, 백두대간을 오르며 심마니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83년 무약면(無藥面)의 시책으로 마지막으로 시행된 한약사 시험을 합격한 정통 한약사다. 그런 그가 38살 때 약초를 얻을 수 있는 오지를 찾기 위해 지도책을 펴들고 설악산과 오대산의 중간을 택해 들어간 곳이 강원도 인제군 상남마을이다. 그곳은 당시 자동차 한대 없고 전기가 들어온 지 겨우 1년도 채 되지 않은 곳이다. 한약사가 되기 전까지 적지 않은 돈벌이를 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먹고 살기 힘든 그런 오지마을을 택해 한약방을 개업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불치병을 낫게 하는 화타의 처방 처음에 화타선생이 들어선 길은 대학시절 전공한 천문학이었다. 졸업한 후에는 발명에 매달리다 40여 가지에 이르는 특허를 낸 발명가로 거듭난다, 대기업의 스카웃으로 사업가로도 활동을 해왔다. 또한 70년대에는 ‘백범사상연구소’를 이끌면서 재야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둘 있었으니, 그것이 병 고치는 의원하고 책 쓰는 글쟁이였다. 그러나 결국 어떤 운명인지 원하지 않았던 두 가지가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인생이란 절반은 노력이고 절반은 숙명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살아온 얘기를 자세히 듣고자 하니 환갑이 다 되어 세속적인 얘기가 창피하다며 회피한다. 단지 이것저것 못하고 회사 기웃하다 돈벌이를 그만두고 집안에서 옛날부터 해오던 일을 도와 하는 것이 현재의 본업이라고 한다. 인생유전이란 말이 딱하고 들어맞을 만한 다양한 이력이다. 또한 현업이 단지 집안일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직업의 구별이나 귀속은 단지 삶을 살아가는 한 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화타선생이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가 떠난 곳은 14년 동안이나 터를 잡고 살았던 방태산 아래 상남마을이다. 처음 내려갈 당시 땅값이라고는 한 평당 백원밖에 안되었고, 장작개비를 사용하여 불을 지피던 오지마을이었다. 그러나 책을 출판하게 된 이후, 전국에서 수백 명의 불치병 환자들이 찾아왔다. 한계를 넘어선 환자들은 그의 능력 밖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돌려 말하면 돈벌이를 버리고 상경한 것이다. 이제는 상남마을도 어쭙잖은 문명 흉내를 내게 되어, 예전의 진정한 사람살이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한다. 너무도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비록 머리와 수염은 하얗지만 얼굴은 윤기가 흐르고 작은 주름살 하나 없다. 잔잔하며 맑고 깊은 눈동자다. “이 나라에는 제도권(병원)에서 손놓은 불치병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듯 나라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니 환자들이 갈 곳은 기도원밖에 없지요.” 제도권의 약은 불치병을 고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사용하는 약도 서로의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들여온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가 쓰고 차가워 염증성 질환에는 들어맞지만, 간질환이나 암에는 그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타 김영길 선생이 치료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양약으로 못 고치고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더 이상 찾아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그가 불치병환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한약재란 것은 사람의 몸을 가열 순환시킬 수 있는 재료들이다.
자신감이 병을 이기는 비결 “무엇보다도 처방이란 그 사람 몸의 효율에 맞게끔 해야 합니다”라며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무조건 약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방구들이 따뜻하려면 연료를 많이 넣는다고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를 잘 설치하여야 되는 것이고, 디젤엔진에 휘발유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그리고 자동차 수리는 돈만으로도 치료가 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밥만 잘 먹어도 병을 고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필요한 곳을 고치기 때문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혜초 역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실크로드를 통해 천축을 가게 되고, 고행 도중 희노애락을 겪으며 도통하게 되었다. 마음이 치유가 되니 육체도 건강해진 것이다. 개구리 한 마리를 먹어도 그냥 파는 것을 먹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개구리를 잡기 위해 직접 얼음을 부숴 보기도 하고, 물에 들어가서 돌을 들어올리며 정성을 들여야 먹는 효과가 나타난다. 때문에 한약재라는 것도 화타 선생에게는 환자를 위한 보조적인 치료제에 불과하다. 바로 링에서 부딪치며 싸우며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삶이란 세계와 나의 부대낌 속에서 발견되며 마음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 개념으로 절대적인 양 서로 비교하고 추구하면 오히려 해결은 안되고 불행하게 된다. 위와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의 근본이 걷는 일이다. “나이가 몇 살이건 간에 대청봉에 올라갈 수 있어야 살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엠파이어 빌딩을 줘도,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미국 대통령도 모두 소용없어”라며 산골마을 심마니를 예로 든다. 그들은 80살이 넘어도 동네 품앗이를 하며, 늙어 줄을 때까지 부부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그런 생활이 오히려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움직이는 것만이 사는 것이고,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모습인 것이다. 그들이 산삼을 찾아 산을 오를 때는 길 없는 곳으로 다닌다. 산정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비탈을 빙글빙글 돌며 목표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닌다. 비록 산 사면을 딛는 발이 아프지만 그러한 고통도 습관이 되면 엄마 품처럼 된다. 몇 날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산에서 내려오면 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반가워지고, 거리에 넘쳐나는 차도 미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군인이 휴가 나와 할머니를 보고도 예쁘게 생각하듯이, 자기 마누라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들의 정력 비결이라고 화타선생은 말한다.
산을 걷는 것만으로 모든 만병을 낫게 한다 인간은 태초에 산을 걸으며 진화해 왔다. 걷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 구조가 태초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다. 산에 가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산이 있는 지역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화타선행은 얘기한다. 물이 있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로 가야 피로가 풀린다. 정크족들은 육지 오면 멀미한다. 또한 얼음에서 난 사람은 그곳이 고향이다. 춥고 컴컴한 그런 집이 보금자리 인 것이다. 우리 선조는 모두 산에서 태어났고 70년대는 국민 80%가 농민이었다.
농부란 산에서 나무를 하는 산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산을 떠나 걷지 않고, 앉아만 있게 되어 병이 생겼다. 병이란 것은 기가 정체되고 순환이 안되어 생기는 것이다. 기가 쌓이는 에너지의 장기는 바로 간이다. 간이 약화되면 피로가 쌓인다. 현대인은 모두 간이 약화되어 있다. 균형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정체된 기를 잡는 첫 번째가 바로 걷기이다. 그래야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걷는 것도 효율적으로 해야 합니다” “악을 쓰지 말고 기분 좋게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참선하듯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게 2시간 정도 걷다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무념상태가 된다. 곧 걸음은 참선이고 무아의 경지에 진입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우선은 걷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10km 정도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을 찾기 어려우면 빌딩 사이라도 걸어야 한다며 강조한다. 한두 시간 걷다 보면 그 자체가 관성이 붙어 즐거워진다. 그러나 산에서 걸어야 더욱 효율적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은 100도에서 끊듯이 인간은 산에서 걸어야 해요.” “산에서 걸으면 지치지 않아요. 나무며 꽃이며 이쁜 것들이 눈에 띄지요. 비록 값싼 것이어도 삶의 질과는 관계가 없어요.” 이렇게 기본이 앞서고 난 다음에야 의서에 의한 알맞은 처방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비법이니 녹용이니 하는 다른 수단은 부차적인 것이다. 화타선생은 많은 얘기를 하면서도 가열순환제니, 진통제니 하는 비법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자연 속에 어우러져 존재하며 부대낌 속에 사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말한다. 위암 말기에 접어든 한 사채업자를 치료한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런 사람에게 산삼을 처방하면 돈 벌려는 수단이라고 의심을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소용없지요. 그래서 돈 벌 생각 않고 처방했어요.” 그래서 환자에게 살아오며 평소 신세진 사람들을 인사동에서 대접하라고 하였다. 단 조건은 집이 있는 구파발에서 정릉을 거쳐 인사동으로 매일 10km 넘게, 오가며 걷게 한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어하였으나, 이력이 붙자 시한부 육 개월 동안 빠짐없이 신세진 사람에게 대접하였다. 그리고 나서 병원에 가보니 안 죽었냐고 되묻더란다.
그래서 화타선행은 6개월 더 밥 사줘라하고 처방하니 6개월이 지난 후 낫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화타 선생의 처방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베푸는 즐거움이 가장 좋은 것이지요.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과 산에 걷는 다는 것이 합일되어야 합니다.” “평소 백신을 많이 맞아 두세요. 평소에 많이 걸어 둬야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화타선생이 말하는 백신이란 다름 아닌 걷는 것이다. 그러나 걷는 것에 있어서는 치료기간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걷는 것은 만병을 다스리고 천수를 누리며 죽을 때까지 사는 건강 비법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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