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어머니의 손맛이 있는 곳, 어머니의 재료가 있는 곳,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곳입니다.
부엌은 사랑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부엌의 추억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엌은 수많은 애환을 담은 아녀자들의 특별하게 구별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엌은 음식을 준비하고 아궁이를 통해 난방 기능을 담당하던 필수 공간이었습니다.
즉 먹거리를 제공하여 건강을 챙겼고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던 곳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온갖 추억이 서린 부뚜막, 아궁이, 굴뚝, 가마솥 같은 정감 어린 말들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엌은 어머니의 손맛이 있는 곳, 어머니의 재료가 있는 곳,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곳입니다.
부엌은 사랑의 추억이 있는 곳 입니다.
예로부터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기 위하여 불을 다루는 곳이었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화상의 위험이나 화재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지금도 남쪽 지방에 가면 재래식 부엌 문지방이나 부엌문 안쪽에
‘해수(海水)’라는 한자를 부적처럼 써서 ‘거꾸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을 다루는 아낙이 자칫 부주의하여 부지깽이에 튄 불똥이 화재의 원인이 되어
불이라도 난다면 바닷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듯 불을 꺼 달라는 소원을 담아 붙여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엌은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음식물을 다루므로 가족의 건강과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은 가정생활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몇 가지 금기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부엌을 향해서 꾸짖으면 나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종종 가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5명의 주부가 동일한 재료와 동일한 양의 양념으로 ‘야채 겉절이’ 요리를 만들었는데 맛이 모두 달랐습니다.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의 겉절이는 풀이 죽어있었으며, 출연자들의 맛에 대한 평가도 떨어졌습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의 손에 의해 무쳐진 겉절이는 재료의 신선도가 여전히 살아 있었으며
양념과도 매우 잘 어우러져 보기에도 좋았고 맛도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더군요.
이렇듯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기분은 음식의 맛과 질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홍만선은 “부엌 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해야 먹을 복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엌 바닥에는 크고 작은 흙덩이가 깔려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이사를 갈 때에 이 흙덩이를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엌 바닥이 평평하면 바람이 불때 흙먼지가 일기 쉬운 데다가
평평한 흙바닥에 물이라도 군데 군데 고인다면 미끄러지기 쉬워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부엌의 변화
안방과 벽을 두고 집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했던 부엌이 거실 옆으로 옮겨 오면서
냉장고, 전기밥솥, 석유곤로, 수도 시설등을 갖춘 현대식 부엌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 40년 전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은 더 이상 부엌으로 물을 길어 오지 않아도 되었고
부엌에서 난방 기능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거나 연탄을 가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부엌의 구조가 바뀌어 수고가 덜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부엌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어머니의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학교 가기 전, 이른 시간에 눈을 떴을 때 들리는 도마 소리, 고소한 밥 짓는 냄새,
도시락 싸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하여 말해 주는 듯하여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밥을 먹기전인데도 무엇인가 내 몸을 가득 차게 했던 그 느낌은 정서적인 배고픔을 채워 주던 마음의 밥이었습니다.
지금은 주방이라고 부르는 우리 집 부엌에 들어설 때면 때때로 소담스레 정 담은 어머니의 냄새가 아련히 스며드는 듯합니다.
종종 아내와 함께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를 찾습니다.
식품 매장에 가 보면 다양한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게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이 보입니다.
그 종류도 없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나 마트 문 닫을 시간을 앞두고 싼값에 나오는 조리된 음식이나 밑반찬은
재료를 사서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도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보다 길거리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가정에서도 음식을 시켜 먹거나 밖에 나가서 사 먹는 외식 문화가 점점 늘어 가고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일이 있을 때에도 집이 아닌 음식점으로 초대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아시아 사람들보다 외식을 덜하며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외식을 하게 되면 그 비용이 몇 배나 많이 들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
집에서 차려 먹는 것이나 외식하며 지출하는 비용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동양에서 외식 문화가 크게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부엌의 실종
2013년 초,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대만 사람들의 생활상을 소개받던 중 아침 식탁 문화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만 사람들은 집에서 아침밥을 조리하지 않고 출근길이나 등굣길에 작은 식당에 들러
다양한 수프와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한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부엌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져 아예 부엌이 없는 집도 늘어 가는 추세라고 합니다.
과연 아침 일찍 시내에 나가 보니 묵었던 호텔 주변 곳곳의 식당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분주히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점심은 직장이나 직장 인근 식당에서 또는 학교에서 해결하고
저녁 식사 역시 각종 모임이나 외식으로 밖에서 먹기 때문에 부엌이 조리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가 점점 사회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 까닭은 가족 간에 대면의 시간이 점차 사라지면서
가족 간에 대화도 줄어들고 실제로 부부 사이도 멀어지게 되어 이혼율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남의 나라 일 같지 않게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 같은 부엌의 실종은 식탁의 실종을 가져왔고 사랑과 정감이 넘치던 관계와 소통의 장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밥상머리 교육의 기회조차 그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부엌과 식탁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정겨운 대화의 시간들이 점점 턱없이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엌은 단지 주부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곳이기보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전해지는 공간입니다.
부엌은 가족이 함께 모여 안락한 쉼을 누리고 소통과 교육이 있는 정감 넘치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아버지는 일찍 집으로 귀가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고,
자녀들도 학업 경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이 마련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부엌은 덩그러니 주부만의 썰렁한 일터로 남게 될 것입니다.
수잔나 웨슬리의 부엌
18세기 수잔나 웨슬리라는 영국 여성은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수잔나는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을 때면 부엌에 서서 머리에 앞치마를 뒤집어썼습니다.
딸아이가 부엌에 들어와 물었습니다.
“엄마, 뭐해?”
그녀는 지저분한 접시들에 둘러싸여 머리에 앞치마를 뒤집어 쓴 채 대답했습니다.
“기도하고 있어.”
희한한 기도법처럼 보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나님과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 하나하나와 매주 30분씩 만났으며,
집 안의 유일한 교과서인 성경으로 글 읽기를 가르쳤습니다.
자녀 중에 찰스 웨슬리와 존 웨슬리가 18세기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 선 것은 어머니의 이와 같은 특별한 교육법 덕분이었습니다.
영국이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난 피의 혁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을 영적 대각성 운동에서 찾는 역사학자가 많습니다.
수잔나의 자녀는 말 그대로 국가의 방향을 돌렸고, 수많은 인생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올바른 자녀 교육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한 여인, 수잔나 웨슬리의 부엌에서입니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부엌에 서서 머리에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를 보면 뭘 하느냐고 묻지 말아 달라.
세상을 바꾸고 있는 중이니까!”(잭 캔필드의 <사랑한다 내 딸아> 중에서)
어머니의 공간, 부엌! 어머니의 기도처, 부엌! 온 가족을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낌없는 정성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부엌이 돌아오고 식탁 주변에 가족들이 모여들고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건강한 음식이 식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부모로서 가정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밥을 먹기 직전, ‘상에 둘러앉은 자식’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의 시편을 쓴 기자는 이처럼 정겹고 행복한 식탁을 상상하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편 128편 3절).
부엌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기척을 따스한 마음의 밥으로 먼저 먹었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박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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