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야기

아열대 기후가 한국인 삶을 바꾼다

tkaudeotk 2011. 5. 24. 15:39

커버스토리]아열대기후가 한국인 삶을 바꾼다

2070년에 이르면 한반도 남녘에서 겨울이 사라진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74도 올랐지만 한반도는 이보다 2배 가량인 1.5도나 상승했다. 지금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고산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녘 대부분이 아열대기후로 변한다는 게 기상청의 보고다. 최근의 스콜을 연상시키는 국지성 집중호우와 아열대성 고온다습 역시 그 징후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당신의 자녀들이 노인이 되는 즈음에 동남아와 비슷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를 불러 온다. 사계절에 길들여 있던 의식주와 체질의 변화는 물론이고 슈퍼폭풍, 집중호우와 이상가뭄, 물부족사태 등에 직면할 것으로 예견된다. 더 나아가 절기에 따른 세시풍속 등 전통문화와 단절되어 민족성마저 바뀔지 모른다. 게다가 없는 사람들에겐 아열대는 큰 고난이다. 폭염과 각종 질병에 심각하게 노출되는 것. 아열대기후가 불러올 우리 삶의 변화, 그 불편한 내일을 미리 내다봤다.

 

 

 

                                   한반도가 아열대기후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8월 연일 폭염이 내리쬐는 가운데

                                서울 신문로에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 도로에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피어오르고 있다. |남호진 기자

크리스마스에 눈을 본 지 오래다. 남부지방은 물론이고 북부 산간에서도 눈 소식은 없다. 일부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영화 속에서나 본 눈을 구경하러 부모를 따라 북유럽이나 러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서민과 중산층들은 오랜만에 물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 한강둔치나 잠수교에서 불꽃놀이로 크리스마스의 흥분을 대신할 뿐이다. 빙어축제, 눈꽃축제는 ‘화보’에만 존재하고, 아이들은 닌텐도 등 게임기 속에서 눈싸움을 즐긴다.

짧지만 그래도 겨울은 소중하다. 지난 여름 내내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계속됐다. 도심 곳곳은 비둘기 사체와 음식쓰레기 악취 탓에 고통의 나날이었다. 점심식사를 겸한 하루 두 시간 정도의 오침이 없었다면 업무도, 학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더운 게 낫다”는 말은 이제 서민들에게 욕이나 마찬가지다. 극심한 폭염은 노인, 노숙자와 빈민 등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에 따라 ‘전력 복지’ ‘폭염 무상의료’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명태 없는 명태 축제’ 늘어난다


동남아 어느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2070년 아열대 기후에 접어든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지나친 상상력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기상청 보고에 따르면 2020년부터 남부지방, 2070년이면 한반도 남녘 전체가 아열대기후에 편입된다. 곧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풍경인 것이다.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가 내놓은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에 따르면 21세기 말(2071∼2099년) 한반도 기온은 현재의 연평균(6.4∼16.2도)보다 4도 상승하고 강수량도 현재 연평균(972.2∼1850.7㎜)보다 17%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한 마디로 겨울과 얼음, 눈 따위가 사라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관과 식생(植生)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통 아열대는 1년 월평균 기온이 6도를 넘고, 20도 이상인 달이 4∼11개월인 지역을 말한다. 기상정보서비스업체인 케이웨더의 반기성 630예보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온 상승과 함께 습기가 많은 아열대습윤기후에 해당할 것”이라며 “특히 기온상승률이 세계 평균 기온상승률보다 2배 정도여서 예상보다 빨리 아열대기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한반도 기후의 아열대화는 이미 진행형이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80년간 겨울철은 지역에 따라 약 22∼49일 짧아졌고, 반대로 봄철은 6∼16일, 여름철은 13∼17일 길어졌다. 이 같은 추세라면 서울의 경우 2090년엔 여름이 5월 초순에서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늘어나고, 12월 말에 시작한 겨울은 2월 중순이면 봄바람에 밀려갈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에서 먼저 감지되고 있다. 주요 작물의 재배지가 점차 북상하고 있는 것. 농촌진흥청이 공개한 지난 10년간 주요 농작물의 재배면적 변화 추이에 따르면 제주 특산품이던 감귤의 재배지가 전남 완도, 여수, 경남 거창으로 북상했으며, 한라봉도 서귀포에서 전남 보성, 담양, 순천, 나주로 재배면적이 내륙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과의 경우도 겨울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주재배지는 대구에서 예산으로, 안동 및 충주에서 강원도 평창, 정선, 영월로 북상했다. 바다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명태가 사라진 동해바다에는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대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희귀한 아열대성 생물들이 종종 출현하고 있다. 전 바다에서 대표적 온수성 어종인 고등어와 멸치의 어획량도 증가 추세다.

지역 특산품의 이동은 지역축제의 존망을 좌우한다. 제주 눈꽃축제는 적은 강설량 탓에 이미 문을 닫았고, 1999년부터 매년 4월에 열리던 강원 원주의 치악산 복사꽃축제는 복숭아 나무가 줄고 개화시기를 맞추기 힘들어 지난 2008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개도 명태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태의 주산지로 알려진 강원 고성군은 ‘명태 없는 명태축제’를 개최한 지 벌써 수년째이고, 강원도 지역의 빙어축제는 안전을 보장할 만한 얼음 두께가 만들어지지 않아 매년 고려 대상이다. 반면 기후 온난화를 이용해 새로운 축제를 유치하는 곳도 있다. 제주를 대표했던 유채꽃 축제는 온난화로 인해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스키장 감소, 황사마스크는 기본
아열대로의 기후변화는 우리 삶의 패턴도 변화시킬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남향주택을 선호했지만 한반도가 아열대에 편입되면 북향을 선호할 것으로 보이고, 겨울철이 따뜻해지면 해충과 바이러스가 죽지 않아 전염병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높다. 식목일의 경우 현재도 열흘 이상을 당긴 3월 하순 초반이 알맞다는 주장이 많으며, 2070년대 즈음엔 모피가게는 짐을 싸고 빙과가게 앞엔 줄을 서는 풍경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겨울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학생들의 방학도 조정 대상이다. 지금도 부산시의 경우 겨울에도 1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수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추운 날이 거의 없다. 반면 여름에는 방학 전부터 더위가 시작되거나 방학이 끝난 뒤에도 혹서와 태풍 등으로 교육청과 일선학교 간에 휴교 여부를 두고 혼란을 겪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현재는 과도기적 단계로 학교장 재량에 맡기고 있지만 향후 우리 지역에 맞게 방학 일정을 조정해 학생의 불편을 덜어 주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온도 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야는 패션업계. 특히 모피는 겨울 온도의 리트머스로, 따뜻한 겨울에 모피가 잘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까지 중부지방 도시에는 모피옷 상설할인매장이 존재하지만 부산 등 남부지방의 도시에선 상설매장은 물론, 백화점에서도 모피옷 코너들이 거의 철수했다.

전자제품 업계도 ‘아열대형’으로 바뀌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가전업계에서는 높은 습도로 눅눅해진 집안의 습기를 제거하고 세균 번식의 우려를 막기 위한 다양한 웰빙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뽀송뽀송’ 가전제품이 등장하는 것. 향후 제습기, 에어컨, 스팀청소기, 유아용품 살균 건조기, 공기청정기, 음식물처리기 등에서 상당한 제품 개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가전업계의 전망이다.

겨울철에는 오히려 온난화로 인해 야외활동이 증가할 것이지만 반대로 여름엔 폭염 발생 빈도가 늘면서 야외활동이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반기성 센터장은 “최근 몇해 동안 국토대장정 등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올해 상당수의 행사가 취소됐다”며 “폭염 빈도가 높아질수록 사망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한여름 야외활동은 상당히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온난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고상백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에 따르면 36.5도에서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사망률은 28.4% 증가하고, 폭염이 7일 이상 지속될 때는 사망률이 9% 이상 증가한다.

폭염은 레저나 스포츠에 있어 실내 활동을 증가시킬 전망이다. 유럽에서는 지구온난화 등으로 스키장 운영기간이 줄어들자 아예 두바이 등지에 실내스키장을 만들어 스키마니아들을 유치하는 방안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 스키장의 경우에도 인공설 운영비가 부담이 되는 곳부터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이나 물썰매장으로의 시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민에게 더욱 뜨거운 아열대, 빈자의 고통
강수량의 증가는 주거환경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제습기능의 가전제품 구비는 물론이고 습기가 많이 올라오는 1층은 필로티 등으로 대부분 비워둘 것이다. 또한 고지대에 부촌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는데, 습기가 많은 홍콩의 경우 지대가 높은 쪽에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경우 강의 범람과 주택 침수 등이 잦아지면 일본이나 네덜란드처럼 부양주택이 등장할 수도 있다. 옥상정원 등 에너지 절감형 주택문화는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 사막화에 의한 황사, 미세먼지 발생이 심각해 이에 대한 생활상의 대비도 큰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사로 인한 개인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에 취약한 IT 등 산업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의 경우 황사가 불면 불량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밀장비 또한 미세먼지에 취약하다. 반기성 센터장은 “황사마스크의 발달을 보면 향후 아열대기후에 대한 위생 대책을 보는 것 같다”며 “봄철 레저활동에 있어 황사 대책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후변화는 특히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폭염일수 빈도와 강도의 증가에 의한 사망자 발생이 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프랑스 파리의 경우 8월 초에 40도를 넘는 폭염이 발생하자 노인과 병약자 등에서 사망자 수가 1만5000명에 이르렀다. 미국의 경우 매년 평균 240명 이상이 폭염과 관련하여 사망하고 있다. 고상백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기온과 사망의 관계를 연구한 역학연구에 의하면 기온과 사망은 U, J자 형태를 보인다”며 “일반적으로 17~25도 사이에는 사망률이 낮고 이보다 기온이 높거나 낮을 경우 사망률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매개곤충과 미생물 등으로 인한 감염성 질병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 교수는 “기온, 강수량, 습도의 변화는 원인 병원체와 매개동물,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며 “특히 모기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과 설치류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고 말했다.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장재연 교수팀이 강수량·최고 기온·습도와 질병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쓰쓰가무시증·말라리아·신증후군출혈열·렙토스피라증·세균성이질·비브리오패혈증이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대부분의 질병 발생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쓰쓰가무시증은 2001~2005년 10월에 정점에 이른 뒤 11월에는 뚝 떨어졌으나 2006~2007년에는 11월에도 환자가 10월만큼 발생했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열대·아열대지방 풍토병인 ‘뎅기열’을 전파시키는 ‘흰줄숲모기’ 유충이 발견되기도 했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가진 흰줄숲모기에 물리면 발열,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출혈과 순환장애 등 증상이 악화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뎅기열은 지난 1991년부터 4년 동안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휩쓸어 35만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바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질병에 노인이나 노숙자, 빈민 등 사회적 소외계층, 약자들이 심각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폭염이 와도 돈 있는 사람들은 냉방시설과 의료기관의 힘으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지만, 없는 사람은 기온 상승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이 상당히 올라간다면 중산층까지도 냉방에 부담을 느낄 것이고, 이들 또한 폭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엔 쪽방촌의 방 온도가 바깥보다 5도 높고 한낮 습도는 72%까지 오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자작업장학교가 7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 돈의동 쪽방촌의 65세 이상(평균 연령 73세) 고령 가구 20곳의 실내기온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실내 권고 기준치인 26~28도보다 4~5도 높은 31~32도로 조사됐다. 단열 시설이 전무한 노후 건물에 미로처럼 작은 방들이 붙어 있어, 마치 집열판 같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모아진 열기가 밤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높은 습도는 더 큰 골칫거리. 볕이 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어 퀴퀴한 방안은 불쾌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들 가구 내 습도는 오전에는 실외와 차이가 없지만 오후에는 평균 72%로 실외보다 12% 가량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여름철 습도(60%)보다 매우 높은 수치다.

때문에 노인들의 체온도 그만큼 빨리 올라가고, 이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실제 조사 결과, 조사 대상 노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30분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의 노인이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고령인 이들은 대부분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관절염·호흡기질환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폭염에 그대로 방치할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수치놀음 아닌 현장 경험으로 대비해야
2070년 아열대기후 편입 전망에 대해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는 피할 수 없으므로 긍정적·부정적 요소가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여 건강이나 사회변화 문제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반기성 센터장은 “총리실 산하에 기후대책자문회의를 마련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상당하지만 여전히 국내 기후변화 분석과 예측 분야는 척박하다”며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다보니 현장의 경험들이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후 관련 부처 요직에 기상·기후 전문가 대신 경영학이나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며 “연구실 안의 토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오는 경험들을 대책으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치놀음에 국가 예산을 넣지 말라”는 주장이다.

현재 기후변화에 대처하면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내의 화두는 녹색성장. 그러나 정부가 표방하는 ‘녹색성장’의 개념 정리와 진행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사업계획서에 ‘녹색’만 넣으면 정부 자금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 기후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개발정책 등에 기후정책을 통합함으로써 해당 정책을 이행하고 장애요소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기오염 저감정책과 온실가스 완화정책의 통합은 두 정책을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효과적이고 건강, 에너지, 안보 등 부수적 편익도 크게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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